[비즈한국] SK하이닉스의 미국 상장은 흥행에 성공했다. 미국주식예탁증서(ADR)는 공모가 149달러보다 약 13% 오른 가격에 첫 거래를 마쳤다. 공모 물량을 크게 웃도는 주문이 들어왔고, 미국 투자자의 관심이 강하다는 점도 확인됐다.
다만 국내 투자자가 이 수치를 그대로 원주의 상승 여력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ADR 가격에는 하이닉스의 실적 전망과 HBM 경쟁력뿐 아니라 미국 시장에서 곧바로 거래할 수 있다는 편의성, 상장 초기의 제한된 유통 물량, 환율과 거래시간 차이까지 함께 반영되기 때문이다.

첫 거래 이후 차이는 더 벌어졌다. ADR은 168.49달러로 거래를 마쳤고, 13일 국내 증시에서 원주는 장중 9% 넘게 하락해 190만 원대까지 밀렸다. 첫 거래일 뉴욕 종가를 원주 한 주 기준으로 환산하면 직전 서울 종가보다 두 자릿수 높은 수준이었다. 이어 13일 국내 증시에서 원주 가격이 하락하면서 서로 다른 시점의 가격을 단순 비교한 괴리는 장중 20%대로 확대됐다.
물론 이를 같은 시각의 정확한 프리미엄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국내 증시는 뉴욕 거래가 시작되기 전에 문을 닫았고, 그사이 미국 기술주와 반도체주 움직임, 환율 변화가 추가로 반영됐다. 그럼에도 뉴욕의 상승률이 곧바로 서울 원주의 목표수익률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여기서 구분해야 할 것은 미국 투자자의 강한 수요와 기업가치의 상승이다. 미국에서 하이닉스를 사고 싶어 하는 투자자가 많다는 사실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ADR이 공모가보다 올랐다고 해서 하이닉스의 적정 기업가치가 하루 만에 그만큼 높아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상승분 가운데 일부는 미국에서 바로 거래할 수 있는 증서에 붙은 접근성 프리미엄일 수 있다.
같은 회사를 기초로 한 두 증권의 가격 차이가 커지면 일반적으로 차익거래가 이를 줄인다. 싼 시장에서 사고 비싼 시장에서 파는 거래가 반복되면서 가격이 가까워지는 원리다. 다만 하이닉스 원주와 ADR 사이에서는 이 과정이 즉각적이고 무제한으로 작동하기 어렵다.
ADR을 취소해 국내 원주로 바꾸는 절차는 가능하다. 반대로 국내 원주를 새로 예탁해 ADR을 추가 발행하려면 회사의 사전 동의가 필요하고, 관련 법이 요구하는 경우 당국의 승인이나 신고 절차도 거쳐야 한다. 기존에 발행된 ADR이 원주로 전환됐다가 다시 ADR로 돌아가는 물량은 예외지만, 뉴욕 시장의 ADR 총량을 새로 늘리는 데에는 조건이 붙는다.
이 때문에 ADR 수요가 급증하더라도 국내 원주가 즉시 미국 시장으로 이동해 공급을 늘리기는 어렵다. 한 외국계 투자은행은 전환 가능 물량에 여유가 부족할 경우 하이닉스 ADR이 원주보다 지속적으로 높은 가격에 거래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TSMC의 ADR이 대만 현지 주식보다 두 자릿수 프리미엄을 받아온 사례도 이런 가능성을 보여준다.
개인투자자가 이 차이를 직접 수익으로 연결하기도 쉽지 않다. 원주의 ADR 전환이 개인에게 법적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일반 주식 매매처럼 증권사 앱에서 바로 처리할 수 있는 업무는 아니다. 국내 증권사와 한국예탁결제원, 예탁은행을 거쳐야 하며 해당 증권사가 개인 고객의 전환 업무를 실제로 지원하는지도 따로 확인해야 한다. 소액 투자자가 단기 가격 차이를 보고 즉시 차익거래에 나서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ADR의 단기 변동성을 키울 수 있는 변수는 하나 더 있다. 미국 운용사 여러 곳이 13일부터 하이닉스 ADR 연계 레버리지·인버스 ETF를 순차적으로 내놓을 예정이다. 이들 상품은 목표 배율을 유지하기 위해 파생상품 포지션을 매일 조정한다. 관련 상품에 자금이 많이 몰릴 경우 ADR의 단기 수급과 원주 대비 가격 차이가 이전보다 민감하게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다만 출시 초기 운용자산과 거래량이 작다면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기 때문에 ETF 출시만으로 변동성 확대를 단정할 단계는 아니다.
이에 따라 개인투자자에게 중요한 질문은 가격 차이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보다 어느 시장에서 얼마를 주고 살 것인가에 가깝다. ADR을 매수하면 미국 장 시간에 거래할 수 있고 달러 자산으로 보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환전 비용과 원·달러 변동 위험을 부담해야 한다. 여기에 원주보다 높은 프리미엄까지 붙어 있다면 같은 회사의 경제적 지분을 국내보다 비싸게 사는 결과가 된다.
기존 원주 보유자도 ADR의 첫날 상승률을 국내 주가의 목표가처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가격 차이는 원주가 오르면서 좁혀질 수도 있지만, ADR이 내려오면서 해소될 수도 있다. 어느 방향으로 수렴할지는 미국 투자자의 수요, 국내 외국인 수급, 반도체 업황과 환율에 따라 달라진다.
당분간 확인해야 할 지표도 늘었다. ADR 10장의 원화 환산 가격과 국내 원주 가격, 원·달러 환율, 양 시장의 거래량에 더해 미국 레버리지 ETF의 거래 규모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다만 서로 다른 시간대의 종가를 단순 비교한 수치를 곧바로 정확한 프리미엄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피해야 한다. 국내 증시가 마감된 뒤 새로 반영된 미국 시장 정보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이번 상장의 가장 큰 의미는 미국 투자자에게 하이닉스를 살 수 있는 통로가 새로 열렸다는 데 있다. 하지만 접근성이 높아졌다는 사실과 기업의 내재가치가 그만큼 상승했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ADR 급등을 국내 원주의 확정된 상승 신호로 옮겨 적기보다 그 가격 안에 기업가치와 접근성 프리미엄이 각각 얼마나 반영돼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ADR의 상승률을 국내 원주의 목표수익률처럼 받아들이는 일은 피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