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그 내막을 더욱 자세히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알쓸비법)’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경영권 분쟁에서 ‘비장의 카드’로 거론되는 수단 중 하나가 임원에 대한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이다. 이는 임시 지위를 정하기 위한 가처분의 일종으로, 신청이 인용되면 본안판결에 앞서 대상 대표이사·임원(채무자)을 직무집행 일체에서 배제하는 강력한 효과가 발생한다.
그만큼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은 다른 분쟁 수단에 비해 상당히 과격한 조치로 평가된다. 인용될 경우 회사에 미치는 충격과 파급효과 또한 매우 크다. 법원 역시 임원에 대한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을 인용할 경우 본안판결 전에 지위 박탈이라는 중대한 현상 변경을 초래하고, 채무자가 본안에서 승소하더라도 원상회복이 곤란하다는 점을 들어, 피보전권리와 보전의 필요성에 관해 고도의 소명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의외로 실무상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은 빈번하게 활용된다. ① 비상장 중소기업에서의 동업자 간 분쟁 ② 스타트업에서의 창업자와 투자자 간 대표권 분쟁 ③ 상장회사에서의 행동주의 펀드와 기존 경영진 간 분쟁 등 다양한 유형의 경영권 분쟁에서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이 제기되고 있다.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언제 인정되나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이 인용되기 위해서는 ① 피보전권리 ② 보전의 필요성이라는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양자는 서로 독립된 요건이므로 어느 하나라도 소명하지 않으면 신청은 기각된다.
가처분 사건에서 피보전권리란 ‘잠정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는, 다툼 있는 권리관계’를 의미한다.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사건에서는 본안에서 다투게 될 임원 지위의 존부, 즉 선임·해임 결의의 효력, 해임청구권이나 지위 부존재 확인청구권의 존부 등이 주된 심리 대상이 된다.
채권자가 피보전권리로 주장하는 전형적인 유형은 다음과 같다. ① 대표자 선임 결의에 부존재·무효·취소 사유가 있어 현재의 대표자에게 적법한 자격이 없다는 주장 ② 대표자가 횡령·배임 등 부정행위를 저질러 해임청구의 대상이 된다는 주장 ③ 임기 만료·사임 등으로 임원 지위가 이미 끝났음에도 영향력을 이용해 종전 권한을 계속 행사하고 있어 지위 부존재 확인청구의 대상이 된다는 주장 등이다.
실무상으로는 채무자의 위법행위나 비위 사실을 소명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에 임원의 비위를 이유로 한 해임청구권을 피보전권리로 삼는 유형(해임 청구권형)보다는, 임원을 선임한 주주총회·이사회 결의의 하자를 다투는 유형(선임 결의 하자형)이 압도적으로 많다.
가처분에서 보전의 필요성이란, 본안 판결로 권리관계가 확정되기를 기다리는 사이에 채권자에게 발생할 ‘현저한 손해를 피하거나 급박한 위험을 막기 위해 또는 그 밖의 필요한 이유’를 의미한다. 결국 채권자로서는 본안 청구의 인용 가능성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왜 지금 법원이 잠정적으로나마 지위를 변경해야 하는가’라는 점까지 소명해야 한다.
법원은 ① 가처분의 인용 또는 기각에 따른 당사자 쌍방의 이해득실 관계 ② 본안 소송에서의 장래 승패 예상 ③ 그 밖의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전의 필요성을 판단한다. 보전의 필요성이 인정돼야 한다는 채권자의 전형적인 주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 회사에 손해를 야기하는 처분행위, 계약 체결·자금 집행·대외 공표 등이 임박해 있는데 기존 임원이 직무를 계속 수행해 위와 같은 행위를 실행해 버리면 사후에 그 결과를 되돌리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예컨대 채무자가 회사 부동산을 처분하거나 그 위에 근저당권을 설정해 자금을 차용함으로써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야기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둘째, 위법·부당한 운영행위가 반복적으로 계속된다는 주장이다. 채무자가 구성원 폭행, 건물 사용 방해, 방만한 자금 지출, 위법한 총회 소집 등을 자행함으로써 회사에 현저한 손해 내지 급박한 위험이 현재 진행형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채무자 측은 ① 채권자가 주장하는 위험이 추상적·관념적 수준에 그친다거나 ② 설령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사후에 금전으로 배상할 수 있다거나 ③ 채권자가 해당 사정을 알면서도 장기간 방치했다거나 ④ 감사에 의한 감독, 소수주주권 행사 등 대안적 통제 수단이 존재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보전의 필요성을 다투는 것이 일반적이다.
경영권 분쟁의 승부수지만 인용 문턱은 높다
이상의 논의를 토대로 최근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된 대표적인 사례를 살펴본다. 서울고등법원 2025. 3. 18.자 2025라2023 결정은 채무자가 이사의 직무에 관한 부정행위 또는 중대한 법령 위반행위를 했다고 보아, 대표이사 직무집행정지를 명할 피보전권리와 보전의 필요성을 모두 소명했다고 판단해 신청을 인용했다. 구체적 사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채무자가 외부감사인과 임시 감사의 적법한 자료 제출 요구에 반복적으로 불응해 회계감사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었고, 그 결과 회사가 감사 의견 거절로 상장폐지 결정을 받기에 이르렀다.
둘째, 대표이사인 채무자가 회사 비서를 업무상 위력으로 강제추행해 벌금형이 확정됐다. 이는 회사의 명예와 조직 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한 것으로서 직무상 부정행위에 견줄 정도의 중대한 법령 위반에 해당한다.
셋째, 채무자가 자본시장법·금융실명법 위반, 특정경제범죄법상 배임 등 혐의로 구속기소돼 범죄 사실이 상당한 정도로 소명됐고, 현재 수감 중이어서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불가능하며, 이로 인해 회사에 경영상 혼란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은 그 파장이 큰 만큼 개별 요건을 모두 소명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일단 인용되면 회사의 경영권이 사실상 이전되는 것과 다름없는 효과가 발생하고, 신청 그 자체만으로도 상대방에게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하므로 경영권 분쟁의 국면에서 승부수, 즉 ‘비장의 카드’로서 전략적 활용 가치가 있는 수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