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여러 명이 함께 왔는데 한 장씩 구입해야 해서 불편했어요.”
지난 6일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개찰구 앞. 친구들과 함께 한국에 온 20대 대만인 관광객 A 씨는 교통카드 키오스크 앞에서 여러 차례 화면을 눌렀다. 일행과 화면을 가리키며 결제 방법을 의논하던 A 씨는 해외 발급 카드를 꽂았지만 오류가 뜨자 처음 화면으로 돌아갔다. 이후 비접촉식 결제로 방식을 바꿔 다시 구매를 시도했다. 한 명의 결제가 끝나자 다음 일행도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이날 A 씨 일행이 모두 카드를 구매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7분이다.

카드 종류도 발매기도 제각각 “어떤 걸 사야 하죠?”
상반기 방한 외국인 관광객이 10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지만 이들이 지하철 이용 과정에서 겪는 불편은 여전하다. 해외에서 발급된 신용카드는 개찰구에서 바로 결제가 안 되는 데다, 승차권 종류에 따라 발매기도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기후동행카드는 한 장마다 선택과 결제 절차를 반복해야 해, 단체 관광객일수록 발권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이날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도 배낭을 멘 인도네시아인 관광객 일행이 개찰구 주변에서 한동안 머뭇거렸다. 이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지나가던 시민에게 승차권 발매기 위치를 물었다. 시민의 안내를 받아 발매기를 찾은 이들은 화면 앞에 모여 목적지와 결제 방법을 확인한 뒤 일회용 승차권을 구매했다.
40대 남성 B 씨는 “기후동행카드가 무엇인지 모른다”며 “승차권 메뉴가 보여 원하는 곳을 검색하고 티켓을 끊었다”고 전했다. 함께 있던 일행도 “교통카드 종류가 여러 개라 어떤 것을 사야 하는지 바로 알기 어렵다”며 “해외카드로 지하철을 바로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국내 대중교통 승차권을 사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편의점에서 티머니 등 선불형 교통카드를 사거나, 지하철을 탈 때마다 일회용 승차권을 끊거나, 기후동행카드를 발급받는 것이다. 다만 일회용 승차권은 지하철역 발매기에서 목적지를 선택해 구매해야 하고, 티머니 등 선불형 교통카드는 편의점이나 판매처에서 카드를 구입한 뒤 현금으로 별도 충전해야 한다. 서울을 단기간 여행하는 외국인을 위한 기후동행카드 단기권도 있지만 이 또한 실물카드를 구매해 충전해야 한다.

기후동행카드는 한 장씩 구매하고 충전해야
서울시는 지난 3월부터 서울 지하철 1~8호선 역사에 신형 교통카드 발매기를 설치하면서 해외 발급 신용·체크카드 결제를 지원하고 있다. 설치 직후 한 달간 이 발매기를 이용한 승객은 하루 평균 9000명에 달했다.
실제로 외국인 승하차 인원이 많은 서울역·강남역·광화문역·경복궁역·여의나루역을 둘러본 결과, 역사 안에 해외카드 결제가 가능한 신형 발매기가 한 대씩 설치돼 있었다. 다만 기능과 결제 방식이 다른 발매기도 주변에 함께 있어 외국인 관광객이 자신에게 맞는 기기를 곧바로 찾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새로 설치된 교통카드 키오스크 화면에는 △일회용 승차권 발매 △우대권 발매 △교통카드 충전 △교통카드 구매가 표시된다. 이때 교통카드 구매를 누르면 정기권과 티머니 교통카드, 기후동행카드 중 선택하게 된다. 해외카드 결제는 기후동행카드만 가능하지만, 구형 발매기에서는 구매가 불가능하다.
이때 이용자는 먼저 원하는 상품을 선택한 뒤 목적지나 이용 기간 등을 설정하고 결제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일회용 승차권은 여러 장을 한 번에 구매할 수 있지만 기후동행카드는 카드 한 장마다 구매와 결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여러 명이 함께 이동하는 경우 인원수만큼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 셈이다.

해외는 ‘내 카드’ 찍고 타는데…오픈루프 서비스 단계적 도입
해외 주요 도시에서는 이미 대중교통에 EMV 컨택트리스 기반 오픈루프 시스템이 도입된 상태다. 오픈루프는 별도의 교통카드나 승차권 없이 신용카드나 스마트폰을 개찰구에 대고 요금을 결제하는 방식이다. EMV는 비자, 마스터카드, 유로페이 등이 만든 근거리무선통신(NFC) 결제 표준이다.
반면 한국 지하철에서는 외국인 관광객이 해외 발급 신용카드로 개찰구를 통과할 수 없다. 국내 교통카드 기능을 하는 ‘RF칩’이 내국인들이 쓰는 카드에만 들어 있기 때문이다. 비자나 마스터 카드 로고가 있어도 국내 대중교통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하다.
이에 서울시는 외국인 관광객의 혼란을 줄이고자 2030년까지 오픈루프 교통결제 시스템을 단계적으로 도입한다. 다만 단말기 교체가 끝나더라도 곧바로 서비스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서울 대중교통이 경기·인천과 수도권 통합환승제로 묶여 있는 만큼 실제 오픈루프 서비스 개시를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경기도, 인천시, 코레일 등 관계 기관과의 협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울시 교통정책과 관계자는 “서울시의 단말기와 서버 등 인프라 구축은 기존 로드맵대로 하고 있다”며 “지하철 1~8호선도 기존 단말기의 내구연한에 맞춰 내년 12월까지 오픈루프 결제가 가능한 단말기로 교체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어 “서울시만 서비스를 먼저 시작하면 오히려 외국인 이용자의 혼란이 커질 수 있어 수도권 교통기관들이 함께 보조를 맞춰야 실행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