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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망 우회로
③ 호르무즈 봉쇄가 바꾼 해상 물류지도

희망봉 우회, 원유 파이프라인,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등 주목

편집자 주
[비즈한국] 지정학적 갈등과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가 맞물리며 현대 글로벌 경제를 지탱해온 핵심 물류 운송 경로들이 연이어 차단되거나 이용에 심각한 제약을 받고 있다. 세계 무역의 주요 동맥으로 기능하던 해상 및 육상 통상로가 동시다발적인 위기에 처하면서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 비상등이 켜졌다. 이러한 복합적인 위기 상황은 전 세계 물류 업계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과거 글로벌 물류망의 최우선 가치가 물류비를 최소화하고 최단 시간에 목적지에 도달하는 ‘효율성’이었다면, 이제는 추가적인 비용과 시간이 발생하더라도 외부의 돌발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안전한 우회 경로’를 확보하는 것이 기업과 국가의 생존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기존 통상로를 대체하며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공급망 우회로의 현황과 그 거시경제적 의미를 심층적으로 짚어본다.

중동전쟁 이후 호르무즈 해협에 갇혀 있던 한국 선박 중 처음으로 해협을 빠져나온 HMM의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유니버설 위너’호. 사진=연합뉴스

글로벌 해상 교역의 핵심 심장부이자 전 세계 에너지 수송의 가장 취약한 병목 지점인 중동의 호르무즈 해협이 마침내 바닷길을 다시 열었다. 미국과 이란 양국이 스위스에서 극적으로 호르무즈 해협의 전면 재개방을 골자로 한 종전 합의안에 서명하면서, 페르시아만 일대를 덮쳤던 전쟁의 포화는 일단 멈춰 서게 되었다. 합의 발표 이후 주간 누적 통항 선박 수가 168% 이상 증가하고, 굳게 닫혀 있던 해협을 통한 원유 수송량이 전주 대비 1218.8% 급등하는 등 해상 물류망이 빠르게 온기를 되찾는 모양새다.

그러나 이번 전쟁 과정에서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초크포인트(해상 병목 지점)가 한순간에 마비될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한 세계 해운 선사와 주요국들은 해협 재개방 이후에도 페르시아만 내부로 올인하던 기존 물류 구조를 탈피하고 있다. 대란 기간 전 세계를 강타한 호르무즈 봉쇄의 충격파에 대응하기 위해 짜인 아프리카 희망봉 우회 항로, 중동 육상 파이프라인, 인도발 대체 환적 네트워크 등 다각적인 우회로 모색 움직임이 글로벌 물류 지도를 재편하며 이어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이라크, 카타르 등 페르시아만 연안 산유국들이 글로벌 시장으로 에너지를 수출하는 해상 관문이다. 해협의 물리적 구조를 살펴보면 가장 좁은 수로의 폭이 약 39km에 불과하며, 초대형 유조선(VLCC)이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는 실제 항로는 폭 3.2km 수준의 협소한 구역으로 제한되어 있다.

이 때문에 지정학적 충격이 발생할 때마다 통항 저지 리스크가 극대화되는 세계 최대의 해상 병목 지점으로 분류된다.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약 25~34%와 LNG 교역량의 약 20%가 이 해협을 통과한다는 사실은 이 지역의 불안정이 곧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의 중단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역사적으로도 호르무즈 해협은 국제 정치·경제적 분쟁의 중심지였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양국이 상호 산유 시설과 유조선을 무차별 타격한 이른바 ‘유조선 전쟁’ 기간에는 해협의 통항 위험도가 극도로 높아져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세계 교역량이 위축되는 충격을 낳았다.

이번 미국·이란 전쟁에 따른 봉쇄 역시 과거의 공급 충격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개전 직후 군사적 위험성으로 인해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 수가 평시 대비 90~95% 급감하며 일평균 1척 수준으로 내려앉았고, 중동의 핵심 물류 허브인 UAE 제벨알리항의 처리 물동량이 45.9% 폭락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비록 종전 합의로 통항 자체는 재개 국면에 접어들었으나, 봉쇄 기간 중 두바이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 등 국제 유가가 종가 기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며 폭등했고, 이는 국내 정유(23.5%), 전력·가스(20.2%) 업종 등 에너지 다소비 산업의 원가 상승 압박을 극대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호르무즈 해협 대신 희망봉 우회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홍해 해협의 연쇄적 불안정 속에서 글로벌 선사들이 택한 가장 확실한 해상 대안은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 우회 항로였다. MSC, 머스크, 하팍로이드, CMA CGM 등 세계 해운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초대형 선사들은 페르시아만 진입의 위험 부담을 피하기 위해 기존 수에즈 운하 통과 노선 대신 희망봉 항로를 정기선 운항 전략의 항로로 공식 채택했다.

그러나 이 우회 경로는 막대한 거리적·시간적 손실을 동반한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노선을 기준으로 할 때 운항 거리가 최대 1만 1000해리(약 2만 372km) 이상 증가하며, 소요 기간 역시 평시보다 평균 10일에서 20일, 기상 악화 시에는 최대 한 달까지 추가로 늘어나 물류의 지연을 유발했다.

운항 거리의 급증은 선박들의 연료 소모량을 폭증시켰고, 해운 시장에서 화물량과 운송 거리를 곱한 개념인 ‘톤마일(Ton-mile)’ 수요를 자극해 선복(선박 적재 공간) 부족 현상을 심화시켰다. 선사들은 급증한 연료비와 운항 비용을 보전하기 위해 컨테이너당 최대 1500달러에서 2000달러 수준의 전쟁위험할증료 및 긴급유류할증료(EFS)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런던 로이즈 등 글로벌 보험업계가 페르시아만 수역에 대한 전쟁보험 보장을 취소하거나 선체 보험료율을 단기적으로 기존 대비 12배 수준인 3%로 인상하면서 해상 운송 비용 부담은 전방위로 확산되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전(위)과 이후 바뀐 물류 흐름. 사진=이언경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운물류·해사연구본부장 제공

이와 같은 장거리 우회 노선의 상시화는 해상 급유(벙커링) 시장의 판도도 바꿨다. 중동의 핵심 벙커링 기지였던 UAE 푸자이라항의 기능이 약화되자 우회 선박들은 아프리카 연안으로 몰렸고, 이에 따라 모리셔스의 포트루이스, 나미비아의 월비스베이, 가나의 테마항 등이 새로운 급유 및 선박 정비 거점으로 급부상하며 공급망의 새로운 반사 이익을 누리고 있다.

육상 수송관 가동의 손익, 중동 파이프라인의 우회 능력과 약점

해상 수송의 마비에 대응해 중동 산유국들이 보유한 육상 원유 파이프라인망도 핵심 우회 경로로 동원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인프라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가 소유한 ‘동-서 파이프라인’이다. 이 수송관은 호르무즈 해협 내부인 사우디 동부 유전 지대에서 출발해 대륙을 가로질러 해협 경계선 바깥인 홍해 연안의 얀부 터미널까지 하루 최대 500만 배럴의 원유를 이송할 수 있다.

또 다른 경로는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 원유 파이프라인(ADCOP)으로, 내륙 유전의 원유를 호르무즈 해협 외부의 오만만 연안 푸자이라항으로 직접 연결해 하루 150만 배럴의 수송 능력을 제공한다. 해상로가 막히면서 대체로를 찾는 수요가 폭증해 얀부항의 경우 사태 이전 약 127만 톤 수준이던 물동량이 지난 6월 421만 톤까지 치솟는 등 우회 송유관을 최대한 가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파이프라인은 해상 물동량을 온전히 대체하기에 용량 한계가 뚜렷하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수송되던 기존 원유 물동량이 하루 평균 2000만 배럴에 달하는 반면, 사우디와 UAE의 파이프라인을 최대 가동해 우회할 수 있는 총용량은 결합 시 일일 350만에서 550만 배럴 수준에 불과하다. 해협 전체 물량의 4분의 1 수준만 소화할 수 있어 구조적인 공급 부족을 완벽히 메우기는 불가능하다.

더욱이 가장 큰 우회 용량을 보유한 사우디 얀부 터미널의 경우 최종 목적지가 홍해 연안에 위치해 있어 예멘 후티 반군의 드론 및 미사일 공격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보안상 취약점을 지니고 있다. 이는 육상 우회로 역시 또 다른 지정학적 리스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언경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운물류·해사연구본부장은 “UAE는 ADCOP의 용량을 기존 150만 배럴에서 2027년까지 300만 배럴로 늘릴 계획이며, 이라크-튀르키예 파이프라인 역시 기존 20만 배럴에서 80만 배럴로 증설을 추진하는 등 원유를 수출해야 하는 중동 산유국들은 자구책으로 송유관 신규 증설에 나서고 있다”며 “그러나 LNG(액화천연가스)나 일반 컨테이너 화물은 송유관을 통해 운송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한계점이 있다”고 말했다.

허브 항만의 마비와 물동량 전이, 인도의 부상과 IMEC

전쟁으로 인해 페르시아만 내 허브 항만인 UAE 제벨알리항의 직항 정기선 기항이 제한되자 선사들은 위협 수역 바깥의 대체 항만을 활용한 환적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선사들은 오만의 소하르와 살랄라, UAE의 코르파칸,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항 등을 우회 하역 거점으로 삼고 피더선(소형 연안선)과 육상 트럭 운송을 결합한 복합 물류 체계를 가동했다.

중동 내 주요 항만의 적체와 위험성 확산은 인근 아시아 지역 항만으로의 물동량 전이 현상을 촉발했다. 아시아발 중동·유럽행 화물이 인도의 서부 관문인 나바셰바와 문드라 항만으로 긴급 우회 유입되면서 이들 항만의 체선(선박 입항 대기) 일수가 급증하고 내륙 물류의 병목 현상이 심화되는 부작용이 관찰되었다.

인도 정부는 이러한 물동량 전이 상황을 자국 항만 인프라 확장의 계기로 삼고 있다. 남부 지역에 위치한 비진잠항 등을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기항할 수 있는 신흥 대체 환적 허브로 집중 육성하려는 중장기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이러한 해상 노선 다변화 조치와 함께 공급망 리스크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대안으로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IMEC)’의 개척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IMEC는 인도 서부 항만에서 해로로 UAE에 연결된 뒤 사우디, 요르단, 이스라엘을 관통하는 내륙 철도망을 거쳐 다시 해로로 유럽까지 잇는 대규모 복합 운송 네트워크다. 호르무즈 해협과 수에즈 운하라는 해상 초크포인트를 동시에 회피할 수 있어 향후 유사한 지정학적 리스크가 재발하더라도 유라시아 교역의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장기적인 우회 카드로 주목받고 있다.

이언경 본부장은 “물동량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인도의 문드라항, 스리랑카의 콜롬보항,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항, 이스라엘의 하이파항 등 IMEC 선상에 있는 항만들의 물동량이 사태 이후 유의미하게 늘어난 것을 확인했다”며 “이는 위기 상황에서 IMEC이 우회 수요를 흡수하는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김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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