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본문바로가기
비즈한국비즈한국

공급망 우회로
④ 러우 전쟁으로 주목받는 ‘중부회랑’, 새로운 실크로드 될까

시베리아 횡단철도 막히자 물동량 12배 급증…적은 물동량과 잦은 환적 등 한계

편집자 주
지정학적 갈등과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가 맞물리며 현대 글로벌 경제를 지탱해온 핵심 물류 운송 경로들이 연이어 차단되거나 이용에 심각한 제약을 받고 있다. 세계 무역의 주요 동맥으로 기능하던 해상 및 육상 통상로가 동시다발적인 위기에 처하면서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 비상등이 켜졌다. 이러한 복합적인 위기 상황은 전 세계 물류 업계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과거 글로벌 물류망의 최우선 가치가 물류비를 최소화하고 최단 시간에 목적지에 도달하는 ‘효율성’이었다면, 이제는 추가적인 비용과 시간이 발생하더라도 외부의 돌발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안전한 우회 경로’를 확보하는 것이 기업과 국가의 생존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기존 통상로를 대체하며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공급망 우회로의 현황과 그 거시경제적 의미를 심층적으로 짚어본다.

[비즈한국] 대한민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유럽으로 화물을 보낼 때 안정적으로 활용해 온 육상 경로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다. 러시아 영토를 수평으로 관통하는 이 노선은 해상 운송 대비 운송 시간을 50%가량 단축할 수 있어, 납기가 생명인 자동차 부품이나 가전제품 등 고부가가치 화물의 핵심 동맥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2022년 2월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기존의 물류 공식을 전면 수정하게 만들었다.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를 대상으로 강력한 금융 및 경제 제재를 부과함에 따라, 글로벌 화주와 수출 기업들은 러시아 영토를 경유하는 운송 계획에 리스크를 안게 되었다. 더욱이 대러시아 제재 여파로 전쟁 보험료가 급등하면서 TSR 이용에 제동이 걸렸다.

통계에 따르면 전쟁 이후 TSR의 화물 처리량은 전년 대비 50% 이상 급감하며 마비 상태에 이르렀다. 안전자산으로 꼽히던 북방 철길이 막히면서 무역 업계는 러시아를 거치지 않는 대체 공급망을 확보해야 하는 기로에 섰다.

러·우 전쟁으로 주목받는 중부회랑

북방 노선의 통행이 차단되고, 해상 운송마저 홍해 후티 반군의 선박 공격 등 지정학적 리스크로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지 못해 운임이 요동치자 물류 시장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우회 경로로 이동했다.

러시아의 남단인 중앙아시아와 카스피해를 관통해 유럽으로 향하는 ‘중부회랑(Middle Corridor)’이 사실상 유일한 육상 대안 노선으로 급부상한 이유다. 환적의 번거로움과 비효율성 탓에 주목받지 못했던 이 노선이 글로벌 공급망의 연쇄 붕괴를 막아줄 구원투수로 다시금 평가받기 시작했다. 과거 실크로드의 초원길이었던 이 경로가 전쟁의 화마 속에서 새로운 실크로드로 부활하게 된 것이다.

무역 기업들 사이에서는 단일 노선에만 의존하는 물류 방식은 위기 발생 시 즉각적인 셧다운으로 이어진다는 경각심이 확산됐다. 이에 따라 위험 분산과 안정적 납기 관리를 목적으로 러시아를 우회하는 중부회랑을 포트폴리오에 편입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중부회랑의 주요 경로를 표시한 지도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우회로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TITR 협회 웹사이트

중부회랑의 주요 노선은 ‘카스피해 횡단 국제 수송로(TITR)’다. 중국을 출발점으로 삼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내륙국을 지나 카스피해를 선박으로 건넌 뒤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튀르키예를 거쳐 유럽 대륙 본선으로 연결되는 대형 물류 경로다. 러시아라는 단일 국가의 단일 철도망만 통과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달리 중부회랑은 최소 5~6개 이상의 국경을 통과해야 한다.

특히 노선 중간에 위치한 거대 호수 카스피해를 건너야 하므로 철도 운송에서 해상 운송으로, 다시 해상 운송에서 철도 운송으로 컨테이너를 수시로 옮겨 실어야 한다. 이 때문에 중부회랑은 여러 운송 수단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복합운송 시스템의 효율적 작동 여부가 전체 노선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물동량 폭발적 증가…트라세카 통해 행정 원스톱화 추진

지정학적 위기가 상수가 되면서 중부회랑의 수송 지표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과거 연간 물동량이 35만 톤 수준에 불과해 미미한 대안에 머물렀던 중부회랑은 전쟁 이후 글로벌 화주들의 진입이 본격화되면서 2024년 기준 연간 약 450만 톤 규모로 12배 가까이 급증했다. 중앙아시아 내륙을 관통하는 화물열차 편성이 정례화됐고, 카스피해 연안 항구들의 접안 횟수도 증가했다. 서방과 아시아를 잇는 최단 우회로라는 입지가 굳어지면서 유라시아 대륙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화물이 이동하는 신흥 무역로로 자리 잡았다.

물동량이 임계치를 넘어서자 공급망 병목을 해결하기 위해 글로벌 자본과 제도적 투자가 집중되고 있다. 세계은행(World Bank)이 2023년에 내놓은 중부회랑 관련 리포트(Middle Trade and Transport Corridor—Policies and Investments to Triple Freight Volumes and Halve Travel Time by 2030)에 따르면 인프라 고도화가 지속될 경우 오는 2030년에는 연간 물동량이 1100만 톤 규모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하며 대규모 투자 필요성을 뒷받침했다. 

이러한 인프라 개선의 중심축은 ‘트라세카(TRACECA·유럽-코카서스-아시아 교통회랑)’ 협력 구조체다. 유럽연합(EU)과 흑해·카스피해 연안국들이 대거 참여하는 이 국제 협력체는 통과국 간의 상이한 관세 장벽을 낮추고 행정 절차를 원스톱화하는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최근 트라세카 회원국들은 국경 통관 서류의 전면 디지털화 및 전자화물추적 시스템 통합에 합의했으며, 주요 거점 항만의 준설 및 복선 철도화 사업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권오경 인하대 아태물류학부 교수는 “중부회랑은 국제 물류망의 병목이 막혔을 때를 대비해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비상운송 대체 경로로서 가치가 높다”며 “중부회랑 주변 국가들은 자원이 풍부하므로 단순히 길만 빌리는 것을 넘어 자원 및 제조업을 결합하는 공급망 관점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코레일이 2024년에 실시한 ‘국제복합운송 시범사업’의 열차. 오봉역에서 중국을 거쳐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까지 향하는 수출화물 열차를 운행했다. 사진=코레일 제공

글로벌 물류 지형의 대전환 속에서 코레일 역시 중부회랑의 전략적 가치를 포착하고 노선 선점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코레일은 국내 수출 기업들이 겪고 있는 대유럽·대중앙아시아 물류 적체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대륙철도망 연계 사업을 추진해 왔다.

코레일은 실제 비즈니스 모델로서의 실효성을 입증하기 위해 2024년 ‘한·중·카자흐·우즈베크 복합운송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이 시범사업은 경기도 의왕 오봉역에서 출발한 국내 화물을 부산항에서 선박에 적재해 중국 연운항으로 해상 수송한 뒤 중국횡단철도(TCR) 노선과 연계해 카자흐스탄 알마티와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까지 육로로 수송했다. 총 네 차례에 걸친 실증 테스트 결과, 기존 한 달 이상 지연되던 운송 기간을 최단 19일까지 단축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대안 되기엔 체급 차이 크다” 중부회랑의 한계점

그러나 중부회랑이 지닌 구조적 한계와 취약점 역시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단기적인 물동량 성장률은 가파르지만, 기존에 유라시아 화물의 핵심을 처리하던 시베리아횡단철도나 대형 컨테이너선 중심의 전면적인 해상 노선과 비교했을 때 경제성과 인프라의 절대적 용량 면에서 체급 차이가 여전히 뚜렷하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정식 무역 노선으로 완전히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걸림돌이 여전히 산적해 있다는 것이 물류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가장 치명적인 한계는 수송 능력의 총량 부족이다. 중부회랑의 연간 화물 처리량이 450만 톤 규모로 성장했다고는 하나, 이는 전쟁 전 시베리아횡단철도가 처리하던 연간 수천만 톤의 물량에 비해 확연히 적은 수치다. 노선 전체를 통틀어 단선 구간이 지나치게 많아 열차의 교행이 어렵고 화물을 견인할 기관차와 컨테이너를 실을 화차의 절대적 보유량이 부족하여 화주들의 수요가 일시에 몰릴 경우 이를 모두 소화해낼 수 있는 역량이 안 된다는 약점을 지닌다.

카스피해 횡단 구조에서 기인하는 복합 환적의 비효율성도 문제다. 열차에 실린 화물을 항구에서 배로 옮겨 싣고, 바다를 건넌 뒤 다시 배에서 열차로 내리는 환적 과정을 최소 2회 이상 거쳐야 하므로 물품의 파손 위험이 증가하고 시간 지연과 환적 보관료 등 추가 비용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여기에 구소련 권역의 광궤(1520mm) 체계와 유럽·중국의 표준궤(1435mm) 체계가 혼재되어 있어 국경역마다 화물을 재적재해야 하는 기술적 복잡성이 병목 현상을 가중시킨다.

통과국이 많다는 점도 행정적·지정학적 리스크 요인이다. 단일 국가 행정망 안에서 움직이던 시베리아 노선과 달리, 중부회랑은 중국,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터키 등 다국적 영토를 경유한다. 이는 화물이 국경을 넘을 때마다 세관 규정과 통관 절차, 관세율을 다르게 적용받음을 의미한다. 비록 트라세카 시스템을 통한 표준화가 추진 중이나, 어느 한 국가의 관료주의적 행정 지연이나 정치적 소요 사태, 혹은 국경 분쟁이 발생할 경우 전체 물류 체계가 도미노처럼 마비되는 취약한 구조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의 핵심 의사결정 기준이 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점에서도 중부회랑은 비판받는다. 급증하는 물동량을 소화하기 위해 카스피해 연안 항만을 무리하게 확장하고 철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인근 내륙해 생태계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환경 파괴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카스피해 고유의 수위 저하 현상과 맞물린 대규모 준설 작업은 해양 생물의 다양성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아울러 일부 통과국 내 인프라 건설 현장과 철도 운영 부문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 환경과 기본권 침해 사례를 기업과인권센터(BHRRC) 등에서 지적하고 있다. 중부회랑이 일시적 우회로를 넘어 지속 가능한 핵심 노선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러한 구조적 한계와 외부의 윤리적 지적을 해결해야 하는 장기 과제를 안고 있다.

김민호 기자

중화학공업·에너지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사회와 삶에 관심이 많습니다.

goldmino@bizhankook.com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형광펜 추가
✕ 형광펜 제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