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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인잡] 직장 내에서 정치 이야기는 무조건 금기여야 할까

성향 편가르기나 투표 강권이 아닌 성숙한 대화 이뤄져야…옳고 그름이 아닌 '다름'을 듣는 것

2024.04.05(Fri) 16:14:12

[비즈한국] 지난 3월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우리집 어린이가 학급회장 선거에 출마하겠다며 후보 등록서를 가지고 집에 돌아왔다. 2학년 학급발표회 때 댄스팀 팀장을 맡아 서로 다른 친구들의 의견을 잘 듣고 모아서 안무를 짜고 성공적으로 발표를 마쳤던 경험을 하면서 스스로 리더의 자질을 발견했다는 것이 출마의 변이었다.

 

후보 등록서에는 공약을 3가지 쓰도록 되어 있었는데, ‘매일 오고 싶은 학급을 만들겠다’, ‘도움이 필요한 친구를 위해 봉사하겠다’, ‘다툼과 폭력이 없도록 규칙을 잘 지키는 학급을 만들겠다’ 고 나름의 생각도 정리한 모양이었다.

 

대문자 T 성향인 나와 배우자는 ‘매일 오고 싶은 학급’이라는 공약이 너무 모호하니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지 좀 더 생각해 보라고 조언했다. 더불어 리더란 학급의 의견을 모으고 이끌어가는 역할도 하지만 친구들을 위해 봉사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는 책임지는 자세가 기본이기 때문에 임원이 되면 학교 생활이 여러모로 피곤해질 수 있다며 ‘꼰대스러운’​ 말도 덧붙였다.

 

직장 내에서 정치를 주제로 한 대화를 무조건 피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의견이나 입장을 경청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생성형 AI

 

아이는 며칠 동안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더니 자신이 실천할 수 있을만한 몇 가지 과제들을 추가로 만들어 출마했지만, 아쉽게 당선되지는 못했다. 다른 친구들이 더 재미있고 눈길을 끄는 공약을 많이 냈다며 다음에 다시 도전해 보겠다고 다짐도 했다.

 

회장에 당선된 친구는 매일 학교 수업이 끝나면 마지막까지 남아서 교실을 정리하고 떨어진 쓰레기가 없는지 살피느라 가장 늦게 집에 간다고 했다. 그것이 그 친구의 공약이었기 때문이다. 부회장이 된 다른 아이는 생일을 맞은 친구들이 간식을 하나씩 뽑을 수 있도록 간식 박스를 만들어 교실에 비치했다. 다른 반에서는 어떤 공약들이 나왔는지, 그리고 그 공약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등하굣길에 만나는 친구들과 종종 대화하는 모양이었다.

 

학교는 또 하나의 작은 사회다. 학급, 더 나아가 학교 임원 선거에 후보로 출마하는 아이들도, 누구를 뽑을지 고민하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친구들도 모두 하나같이 진지하다. 오로지 후보자의 공약과 자질을 바탕으로 투표하며 경쟁상대에 대한 비방이나 흑색선전, 금품 살포(간식 사주기 같은 금품을 동반한 선거운동은 금지된다)는 없다. 장난삼아 다른 이름을 적거나 이름을 적어 내지 않는 기권 표도 종종 있지만 투표율은 100%에 가깝다. 앞으로의 미래세대를 이끌어 갈 어린이들은 민주주의와 선거제도를 그렇게 배운다. 그리고 그 공약이 잘 지켜지는지 주의 깊게 살펴본다.

 

총선이 1주일 남은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4년간 어떤 과제를 중점으로 어떻게 실천할지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거나 제발 한번 살려달라고 하는 읍소, 경쟁 후보의 과거사와 개인사를 끌고 나와 깎아내리고 폄하하는 말이 난무한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하고자 출마한다고 말해도 모자랄 판에 ‘여기서 이러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살 사람인데 여러분을 위해 선거에 나온다’며 시혜적인 발언을 하기도 하고, 차량 유세 중에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수십 년간 발전이 없는 거다’라며 시민과 언쟁을 벌이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회사에서나 사적인 자리에서 총선이나 정치 이야기를 꺼내기 어렵다는 사람이 많다. 스몰토크로 적합한 주제가 아니기도 하지만 정치 자체를 혐오하는 이들이 많다 보니 말을 꺼내는 것 자체를 불편해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계속 입을 닫고 있으면 이번에는 ‘투표는 했느냐​, 무관심이 가장 무서운 것’​이라며 훈수를 둔다.

 

회사에서 종교, 정치, 연애나 사생활 이야기는 하면 안 된다고들 하지만 이럴 때만큼은 자신의 생각이나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정치‘인’이나 ‘정당’에 대한 욕이나 성향에 대한 편 가르기가 아니더라도, 대놓고 누구에게 투표하라고 강권하는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 성인들도 얼마든지 초등학생들만큼이나 성숙하게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나 생각을 밝힐 수 있다. 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이를테면 기혼여성으로서 아이 둘을 돌보며 인사업무를 하는 노동자인 나에게 중요한 의제는 ‘환경과 기후’ ‘돌봄과 노동’, 그리고 ‘성평등과 인권‘이다. 무엇이 옳고 그르고, 좋고 싫고, 맞고 틀리고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일인칭 시점의 내 삶과 생각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일 수 있다. 그리고 그 개인의 이야기는 80억 인구의 숫자만큼 다양하다.

 

서로의 다양성과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방을 평가하거나 섣불리 조언하기보다는 그냥 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귀 기울여 들어보면 그만이다. 그 와중에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문제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기도 하고 이해와 공감이 싹트기도 한다.

 

이는 직장 내에서 서로 다른 생각과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공동의 해결책을 찾거나 갈등을 종식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 부서의 위치에서 취할 수밖에 없는 입장과 할 수 있는 최선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누는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어야만 일이, 우리의 삶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필자 ​김진은? 정규직, 비정규직, 파견직을 합쳐 3000명에 달하는 기업의 인사팀장을 맡고 있다. 6년간 각종 인사 실무를 수행하면서 얻은 깨달음과 비법을 ‘알아두면 쓸데있는 인사 잡학사전’​을 통해 직장인들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김진 HR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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