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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나들이]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사스레피나무(차나무과, 학명 Eurya japonica Thunb.)

2017.04.18(Tue) 09:36:37


[비즈한국] 앙상한 가지에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며, 꽃이 피고 메마른 땅에 새싹이 솟아나는 생명과 환희의 달, 4월이다. 흔히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도 한다. 4월은 세월호 침몰사건과 4·19 혁명을 비롯한 수많은 역사적 사건을 떠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잔인한 4월’의 유래를 보면 단어 자체만의 의미가 아니다. 메마른 대지에 봄비가 내려 새 생명이 돋아나 황량한 겨울은 가고 희망의 꽃이 피는 아름다운 봄을 역설적으로 찬미한 T. S. Eliot의 시 ‘황무지(The Waste Land)’에서 나온 말이다. 곱고 아름다운 새 생명과 꽃이 피어나기까지의 고통과 인내를 뜻하는 시인의 표현인 것이다.

 

4월에 피어나는 수많은 화려한 꽃과 새싹 들이 고통 없이 그냥 피고 돋아나겠는가? 엄동설한의 추위를 견디며 겉을 싸고 있는 단단한 꽃망울과 겨울눈의 막을 터뜨려야만 새싹이 트고 꽃이 피는 것이다. 식물도 하나의 생명체이거늘 그 고통이 오죽하겠는가? 곳곳에 피어나는 4월의 찬연한 꽃과 새싹을 보면 크든 작든, 곱든 아니 곱든 이들이 겪었을 고통과 인내가 눈물겹도록 곱고 장하다는 생각이 든다. 

 

온갖 꽃과 싹이 다투어 피어나고 벚꽃이 꽃우산처럼 활짝 펼쳐지는 4월에 해남 대흥사를 찾았다. 제주도를 제외하고 육지에서는 유일하게 자생하는 왕벚나무를 탐방하기 위해서다. 지나가는 길 옆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산들꽃과 눈 맞춤하면서 자생 왕벚나무를 찾아 오솔길을 한참 오르는데 어디선가 강한 향이 코를 자극한다. 향기라기보다는 강한 냄새라고 하는 것이 맞는다는 느낌이었다. 이게 무슨 냄새인가? 농촌의 두엄이나 퇴비 냄새는 아니고.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펴보니 새파란 상록 이파리에 싸인 좁쌀 같은 수많은 꽃을 매단 나무가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의문의 냄새를 풍기는 근원이 분명해졌다. 바로 사스레피나무였다. 

 

사스레피나무는 남부 지방 야산의 기름지고 반 그늘진 숲속, 바닷가에 주로 자란다. 무리 지어 자라는 상록관목이다. 잎은 어긋나고 광택이 있는 두껍고 긴 피침형이다. 잎의 가장자리에는 위를 향한 둔한 톱니가 있다. 꽃은 암수딴그루로 연한 노란빛을 띤 흰색으로 피는데 묵은 가지의 잎겨드랑이에 1∼2개씩 다닥다닥 붙어 달린다. 암꽃은 수술이 없고 수술은 10∼15개이다. 좁쌀만 한 크기의 꽃은 이파리에 가려 있고 볼품 있는 꽃도 아니라서 곁을 지나치면서도 눈여겨보지 않는 꽃이다.

 


사스레피나무 꽃눈은 메마른 가지에 눌어붙어 혹한의 겨울 고통을 이겨내면서 한겨울에 꽃망울을 부풀린다. 4월이 되면 힘겹게 딱딱한 꽃망울을 깨고 터뜨려 좁쌀만 한 하얀 꽃을 피운다. 목련처럼 큼지막한 꽃도 아니고 벚꽃처럼 화려한 꽃 무더기도 아니며 라일락처럼 향긋한 향기를 내뿜는 꽃도 아니다. 하지만 한 송이 꽃을 피워내는 과정은 크고 화려하고 향기 있는 꽃과 다름이 없다. 차디찬 한겨울 세찬 바람과 눈비 속에서 처절한 고통과 아픔을 겪으며 이겨내고서야 꽃이 피어나는 장하고 대견한 꽃이다. 약간 구릿한 지린내가 나서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맡다 보면 그 또한 자연의 향이라서 이내 친밀감이 들고 거부감이 사라진다. 

   

열매는 핵과로 둥글며 가을에 보랏빛 나는 검은색으로 익는다. 사철 잎이 푸르고 이식이 잘되며 수형이 정돈되어 있어 관상용 조경이나 생울타리로 심기도 한다. 또 푸른 잎이 적은 겨울철에는 꽃꽂이 소재나 꽃다발을 만드는 데 많이 사용한다. 가지와 잎을 태운 잿물은 염료로도 사용한다. 잎과 줄기를 겨울에 채취하여 햇볕에 말려서 류머티즘 치료제로 달여서 마시기도 한다.

   

비슷한 종으로는 잎에 톱니가 없는 섬사스레피나무, 잎이 넓고 두꺼우며 암술대가 떨어져 있고 마르면 노란색이 되는 떡사스레피나무, 잎끝이 우묵하게 파인 우묵사스레피나무가 있다.

박대문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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