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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덕] 스탬포드 브릿지, 무리뉴의 ‘모욕적’ 귀환 현장에 가다

2016.10.26(Wed) 10:29:30

“He is Back.”

 

주제 무리뉴 감독이 첼시의 홈구장 스탬포드 브릿지로 돌아왔다. 10개월여 만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첼시의 감독이 아닌, 라이벌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 돌아왔다. 이에 영국의 BBC와 하늘운동(스카이스포츠) 등 방송을 비롯해, 유력 신문들도 EPL 첼시와 맨유의 ‘무리뉴 더비’를 강조하며 비중 있게 다뤘다. ‘​비즈한국’​에서도 런던 스탬포드 브릿지의 관중석을 직접 찾아 그 생생한 분위기를 담아봤다.

 

첼시의 홈구장 스탬포드 브릿지.


스탬포드 브릿지는 영국 런던의 주택가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처음 첼시풋볼클럽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을 때는 건물들 사이에 숨어 있어 여느 경기장과 달리 한 번에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경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증명하듯, 23일(현지시각) 경기 시작 3시간 전부터 스탬포드 브릿지 주변에는 파란 물결의 시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도로는 이미 차량 통행이 제한돼 관중들은 도로에까지 나와 사진을 찍고 간식을 먹으며 오늘 경기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기자는 먼저 경기티켓을 수령하기 위해 스탬포드 브릿지 티켓오피스로 갔다. 사전에 받은 서류와 신분증을 보여주니 티켓을 건네줬다. 

 

기자가 영국으로 떠나기 전 한국의 구매대행 사이트를 통해 첼시와 맨유의 경기 티켓을 구매했을 때는 골대 뒤편 2층을 신청했다. 그런데 티켓을 보니 SHED석 ‘LOWER’라고 적혀 있었다. ‘Lower는 1층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며 경기장에 입장했다. 역시나 1층이었다. 1층에서도 10열 안쪽의 경기장에서 과하게 가까운 자리였다. 경기 전 몸을 풀고 있는 맨유의 골키퍼 다비드 데 헤아의 표정까지 다 읽을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데 헤아는 2시간 후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을까.) 한국의 지인들은 경기 중계화면에 골대 뒤 모습이 잡히는 게 아니냐고 기자를 찾기 시작했다.

 

경기 시작 전 몸을 풀고 있는 다비드 데 헤아를 비롯한 맨유 선수들.


문제는 기자가 앉은 SHED석의 2층 오른편이 맨유의 원정팬들의 좌석이라는 점이었다. 좌석 한편을 차지한 맨유 원정팬들은 맨유의 걸개를 걸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에 맞서 기자 주변의 첼시팬들은 2층 원정석을 향해 맞대응을 했다. 의도치 않게 첼시와 맨유 팬들의 응원전까지 지켜보게 된 것.

 

선수들이 입장하고 킥오프 준비에 들어갔다. 스탬포드 브릿지 관중들은 장내 아나운서의 선수콜을 따라 선수들의 이름을 외치고, 모두 일어나 첼시의 응원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응원가가 끝나고 킥오프를 하자 기자는 자리에 다시 앉으려했다. 그런데 주변 누구도 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혹시 여기 서포터석이라 스탠딩 관람하는 곳인가. 그럼 나도 같이 90분을 서서 봐야 하는 건가.’ 불안한 생각이 엄습했다. (불길한 예상은 적중했고 결국 기자는 90분간 서서 경기를 봐야 했다.)

 

앉을까 말까 주춤주춤하고 있는 사이 벼락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전반 30초 만에 페드로가 선제골을 터뜨리며 첼시가 앞서나간 것이다. 며칠 전 리버풀 안필드에서 90분 동안 듣지 못한 환호성을 스탬포드 브릿지에서는 경기 시작 30초 만에 듣게 된 것이다. ​반면 맨유 원정석은 시작과 동시에 조용해졌다. ​

 

 

 

첼시석의 환호성은 세 번이나 더 나왔다. 전반 20분 개리 케이힐, 후반 16분 에당 아자르, 후반 24분 은골로 캉테의 골이 연속으로 터지며 4 대 0으로 점수차가 벌어졌다. 이에 반해 맨유의 선수들은 골을 물론 경기력에서도 너무나도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첼시 선수들에 끌려다녔다.

 

 

 

경기가 첼시 쪽에 일방적으로 흐르자, 기자 주변의 SHED 1층 관중들은 2층 맨유팬들을 향해 몸을 틀더니 ‘주제 무리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골적인 조롱의 의미였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첼시와 함께 영광의 시간을 함께한 무리뉴에게, 팀을 떠나 맨유의 지휘봉을 잡았다고 어떻게 이렇게 쉽게 돌아설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심지어 스탬포드 브릿지 첼시 박물관 한켠에는 무리뉴 감독의 초상화와 함께 첼시 감독 시절 사용한 책상 등이 전시돼 있었다. 그만큼 첼시의 역사에서 무리뉴가 차지하는 역할은 적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탬포드 브릿지의 첼시 박물관에 전시된 무리뉴 감독의 초상화와 감독 당시 사용하던 책상 및 집기류.


무리뉴 노래뿐만 아니라 첼시팬들은 ‘FXXX 맨유’ ‘포그바는 돈 낭비’ 등의 야유를 담은 노래를 불렀다. 이에 질세라 맨유팬들은 2층 난간 철판을 두드리는 등 소음을 내며 첼시팬들에 맞대응했다. 4 대 0까지 점수가 벌어지면 실망한 팬들이 경기장을 떠날 법도 한데 끝까지 남아 첼시팬들과 응원전을 벌였다.

 

첼시팬들의 비난은 맨유만 향한 것이 아니었다. 전반 30초 영웅이었던 페드로가 후반 들어 잦은 실수를 하자 곧바로 “FXXX” 등 욕설을 퍼부었다. 반면 ‘에이스’ 에당 아자르나 ‘사고뭉치’ 디에고 코스타에게는 무한 애정을 보이는 모습이었다.

 

결국 경기는 4 대 0, 첼시의 완승으로 끝났다. 그러자 경기장에서는 갑자기 노래가 나왔고, 팬들은 서로 수고했다 격려하며 춤을 추는 등 댄스타임이 벌어졌다. 특이한 풍경이었다.

 

첼시팬과 맨유팬의 신경전은 경기가 끝나고도 이어졌다. 맨체스터에서 온 원정팬들이 대절한 관광버스를 타고 스탬포드 브릿지를 빠져나가자, 길을 걷고 있던 첼시팬들이 야유를 보내며 가운데 손가락으로 안부(?)를 전했다. 그러자 맨유팬들도 차창문을 통해 가운뎃손가락으로 화답했다. 어떤 첼시팬은 맨유 원정버스를 향해 피우고 있던 담배를 던지기도 했다.

 

첼시가 맨유를 4 대 0으로 대파하자, 경기가 끝난 후 첼시팬들이 경기장 인근 술집에 모여 자축하고 있다.


후기1.

지난 안필드 직관의 교훈으로 이번에는 경기장 앞에서 막연히 버스를 기다리지 않았다. 경기 내내 도로가 폐쇄됐던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벗어나 도심으로 걸어 나왔다. 런던 중심부여서 그런지 5분 정도 걸어나가자 차들이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기자는 첼시 기념품샵에서 구매한, 경기 내내 목에 메고 있던 첼시 머플러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일반 런던 시민들이​ ​기자를 향해 “첼시”를 외쳤다. 

 

맞은편에서 3명의 젊은 여성 일행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기자를 보더니 양손을 올려 한 손은 손가락 네 개를 펴고, 다른 한 손으로는 0을 만들었다. 첼시와 맨유 스코어 4 대 0을 표현한 것. 이어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 여성은 기자에게 ​갑자기 포옹을 하더니 볼에 뽀뽀를 했다. 그러곤 다시 한 번 “첼시”를 외치더니 유유히 갈 길을 갔다. 머플러를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후기2.

무리뉴 감독의 맨유가 첼시에 참패를 당하자 다음날, 영국의 모든 언론은 무리뉴 감독의 모습을 1면에 내며, 특유의 언어유희를 선보였다. 특히 경기 후 무리뉴 감독이 적장 안토니오 콘테 감독에게 귓속말로 건넸다고 전해지는 ‘humiliating(모욕적이다)’라는 단어는 모든 언론에서 헤드로 사용했다.

 

또한 ‘더 선’은 무리뉴 감독의 별명인 ‘Special one(스페셜 원)’을 변형한 ‘Special once(한때 특별했던)’을 써 조롱하기도 했다. 

 

첼시와 맨유의 경기가 있은 다음날인 10월 25일자 '더 선' 기사.


무리뉴 감독으로서는 잊고(fourget) 싶은 경기일 것이다.​ 

 

민웅기 기자 minwg08@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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