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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위민원트] 파자마 입는 남자

아무것도 걸치지 않거나, 아무거나 걸치고 자는 남자들에게

2016.10.04(Tue) 11:55:52

남자의 패션에 대해 얘기하려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 아는 남자, 남편 얘기부터 시작해야겠다. 최근 남편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옷 좀 입어’다. 22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폭염은 내 남편을 열대 기후의 남자들처럼 ‘헐벗게’ 만들었다. 단언컨대, 검정색 트레이닝 팬츠(거의 모든 연령대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바로 그것)만 입은 채 누런 속살을 드러내고 앉아 있는 남자 입에서 나오는 말은 어떤 권위도 가지지 못한다. 내 남편처럼 말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신혼이 끝나가고 있음을 직감하게 되는 순간, 나는 남편의 손을 끌고 쇼핑을 나섰다. 그리고 그에게 반듯한 체크 무늬 파자마 세트를 선물했다. 아직도 뭐 이런 걸 입고 자느냐고 투덜거리지만 파자마를 남편에게 선물한 건 단순히 헐벗고 다니는 모습이 싫어서만은 아니다. 

 

파자마를 입은 권력자들의 대화. 사진=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캡처


제아무리 밖에서는 공작 뺨치게 꾸미고 다니는 남자면 뭐하겠는가, 집에서는 다 늘어진 옷을 입고 세상 후줄근한데. 패션은 습관이자 태도다. 잘 입고, 잘 못 입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 삶의 태도에 대한 표현 방법이라는 말이다. 

 

파자마의 기원은 9세기 중반 아랍 지역에서 찾을 수 있다. 다리를 뜻하는 파이와 옷을 뜻하는 자마의 합성어로 스트링이 달린 편안한 스타일의 팬츠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오스만 제국 시대에는 빈곤층을 무시하는 말로 ‘잠옷도 없는 주제에’라는 관용어가 있을 정도로 잠옷은 부의 상징이었다. 

 

반면, 패션 왕국으로 불리는 유럽에서는 16세기 전만해도 잠을 잘 때 아무것도 걸치지 않거나 속옷만 입거나, 혹은 낮에 입은 옷을 그대로 입고 잤었다. 잘 때만 입는 옷의 개념이 당시에는 없었던 것. 알다시피 그 당시 유럽의 위생상태는 심각하게 좋지 않았다. 귀족의 침대조차 이와 벼룩이 들끓었는데 이때 시원하게 긁을 수 있도록 벗고 자거나 속옷만 입고 잔 것이라고 전해진다. 멋에 관해선 지구 최강이라 불리는 이탈리아의 부자들조차 잘 때는 알몸에 침대 시트만 감고 잤을 정도였다. 

 

그러던 중 당시 아랍 지역에 주둔하던 영국 병사들로부터 파자마가 전해지면서 유럽인들은 잠잘 때 파자마를 입기 시작했다. 실제로 서민들이 파자마를 입기 시작한 건 20세기에 접어들어서의 일이니, 의외로 파자마의 역사는 짧다. 

 

파자마는 사람들의 가치관 변화와도 흐름을 같이 한다. 단순히 ‘파자마를 입고 잔다’라는 의미를 뛰어넘어 남에서 나에게로 관심의 촉이 돌아가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나이가 들면 쇼핑 패턴이 바뀌게 돼요. 이번 달에는 잘 빠진 일인용 소파와 웬만한 여자보다 더 보드라운 실크 파자마에 지갑을 열었죠. 집 밖보다, 집 안에서의 생활에 더 관심이 많아졌어요.” 

 

파자마를 입는다는 건 남보다 나, 보이는 것보다 느끼는 것에 신경을 쓴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진=Gentleman’s Gazette


40대 중반의 그야말로 ‘영포티(Young Forty)’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모 브랜드 관계자의 말이다. 20대는 누구보다 남의 시선을 의식했고, 30대에는 패션이 취미이자 특기였다는 이 남자는 40대가 되어서는 남보다는 나, 보이는 것보다 느끼는 것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삶의 어느 구석에도 소홀함이 느껴지지 않는 이 남자의 실내복은 트레이닝 복이나 속옷이 아니었다. 퇴근 후 자신의 시간을 즐길 때는 영국 출장길에 사왔다는 스트라이프 패턴의 남색 파자마를 입는다고 한다.

 

일생의 1/3을 보내는 침대 위. 그 시간에도 당신을 귀하게 여기자. 고작 파자마 하나가 당신의 삶을, 가치관을 어떻게 바꿔 놓을 지는 직접 해봐야만 알 수 있다. 

 

 

*필자는 〈아레나 옴므 플러스〉, 〈슈어〉, 〈그라치아〉에서 패션 에디터로 일하였으며 현재는 프리랜서 에디터로 활동 중이다. 

김민정 칼럼니스트 bizhk@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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