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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왱알앵알] 추억의 음식 ‘밥스틱’을 찾다!

2016.08.05(Fri) 11:16:32

페이스북 지인이 기사 하나를 공유했다. 

“내일 날씨도 폭염·열대야 계속.” 

   
‘지금은 사라진 듯한 길거리음식’에 대한 글이 발단이었다. 출처=쭉빵카페 캡처

절망적인 날씨 소식을 듣고도 떠나야 했다. 보통 세상의 문제가 그렇듯, 이 일도 시작은 아무 생각 없는 행동으로 인해 발생했다. 당연히 망할 줄 알았던 기사가 의외의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공짜 쉑쉑버거를 먹고 싶다는 욕망에 가벼운 마음으로 쓴 기사에 조회수가 불 붙어버렸다. 당연히 망하리란 생각에 ‘다음은 없다’며 룰루랄라하고 있다가 다음 편도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신기한데, 보통 인간은 이런 압박감 속에서 오히려 초연해진다. 심지어 놀기까지 한다. 시험기간일 때 보는 가 제일 재미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보통 인간처럼 다음 아이템 구상 대신 누워서 카카오톡에서 제공하는 ‘톡채널’s PICK’을 보기 시작했다. 무념무상으로 깔깔대며 보던 게시글에 ‘너로 정했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은평구 예일여고 앞에 있다는 글을 실마리 삼아 무작정 예일여고 앞으로 고.

‘지금은 사라진 듯한 나름 신선했던 길거리음식’이라는 제목의 글은 2004년부터 2009년쯤 보였던 밥스틱이 그립다는 내용이었다. 글 말미에 “서울 은평구 예일여고 앞에 2016년 5월 글에 있다는 거 찾았는데 지금도 있나ㅠㅠ”라는 글쓴이의 궁금증에 ‘이거다’ 싶었다. 그리고 밥스틱을 찾아서 보여주면 좋겠다는 마음에 기획안을 올렸고, 어이없이 통과되고, 날씨는 절망적인 폭염이고, 몸은 예일여고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일사천리가 따로 없구나.

밥스틱을 찾는 힌트는 두 가지. 하나는 예일여고 앞에 있다는 글쓴이의 소개와 사진 한 장이었다. 사진은 노란 차량(통칭 붕붕이)으로 이뤄진 가게가 보였는데 이 점이 아주 중요한 포인트였다. 글쓴이는 명동에서도 밥스틱을 판다는 제보가 있지만 가게가 ‘붕붕이’가 아니어서 탈락시켰다. 예일여고 앞 밥스틱에 붕붕이가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붕붕이라….

   
예일여고 주변을 헤매는 동안 날씨는 절망적인 폭염. ‘여긴 어디? 난 누구?’
   
빙고, 드디어 찾았다! 노란 붕붕이!

하여간 붕붕이를 찾으러 간 모험은 찌는 더위 속에 난관에 봉착했다. 도대체 예일여고 ‘앞’이 어딜까.

“뜨거운 태양을 가르며 너에게 가고 있어.” 맘대로 개사한 <슬램덩크> 주제가를 부르며 불볕더위 속을 두리번댔다. 누가 보면 미친놈으로 오인하기 좋게 여고 앞을 어슬렁댔다. 사진을 다시 잘 들여다봤다. 작은 골목길 앞 붕붕이가 보였다. ‘구산역 대로변은 아니겠구나’ 하고 코너를 돌자마자 저 멀리 사진 속 핑크빛 간판이 보였다. ‘뭐야. 바로 찾았네.’ 지나가는 사람이 들릴 정도로 큰 소리를 냈다. ‘사진만 보고 찾다니….’ 혼잣말을 중얼대며 스스로에게 소름 돋은 채 달려갔다.

밥스틱 앞에 도착하니 사진 속 붕붕이가 보였다. 일단 맛을 여러 개 봐야 하기 때문에 5개를 주문했다. 치츠를 추가해서 먹으면 더 맛있다고 하셨다. 추천대로 치즈 추가를 했음에도 5개에 7500원이었다. 더위에 갈증이 나 500원에 귀여운 제티도 샀다. 오후 2시에 도착했기 때문에 손님은 나 말곤 아무도 없었다. 조심스럽게 주인 아주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다음은 갑작스러운 일문일답.

   
밥스틱을 만드는 틀. 10년 동안 장사하셨다는데, 한눈에도 오래돼 보였다.
   
“밥스틱 남아 있는 곳이 여기밖에 없을 거야”라고….

―밥스틱을 한동안 못 봤는데 여기서 보네요.

“내가 알기로는 밥스틱 남아 있는 곳이 여기밖에 없을 거야.”

―하신 지 몇 년 되셨어요? 다른 곳은 접었는데 계속 운영하시는 이유가 따로 있으세요?

“10년 됐지. 10년 동안 장사하다보니까 학생들도 많이 오고 또 예전에 자주 먹었던 학생들이 또 그립다고 찾아오고 그러다보니까 계속하게 되더라고. 어제도 직장인이 된 예일여고 다니던 아가씨가 마침 휴가여서 한번 다시 와보고 싶었던 참에 왔다고 해서 반갑더라고. 그런 일 때문에 계속해오게 된 것 같아. 

   
가격은 여전히 1000원대. 처음에 200원을 올린 뒤 지금까지 그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고.
   
폭염에 지친 목은 500원짜리 제티로 달래고.

―(아주 오래돼 보이는 메뉴판, 가격도 1200원인 게 눈에 띄었다) 가격이 1200원이네요. 가격은 올리지 않으셨나요?

“시작하고 1년 뒤에 200원 올리고 단 한 번도 올리지 않았어. 임대료, 재료비, 하다못해 가스비, 전기료 다 올랐는데 남는 게 이제 거의 없긴 하지. 그래도 학생은 100원, 200원에 힘들거든. 성인 되면 1000원, 2000원도 중요하지 않아. 하지만 학생은 동전 하나에도 고민하게 돼. 동전 없이 1000원 한장에도 먹을 수 있게 컵밥 메뉴 하나는 1000원에서 일부러 안 올려. 

   
주머니가 아쉬운 학생들에겐 이만한 간식도 드물 것이다. 1번 메뉴 치즈피자.
   
치즈피자 외에 4개를 추가로 더 시켰다. 스팸, 돈가스, 김치참치, 떡갈비. 다 합쳐도 겨우 7500원.

―1200원에 팔면 남긴 하나요?

“아주 조금 남지. 영리 생각만 했으면 진작 올렸을 텐데. 이제 그런 건 별로 신경 안 쓰니까 유지할 수 있는 거지. 또 이제 프랜차이즈 회사에서 재료를 받는 게 아니라 알아서 재료를 준비하니까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거고. 재료도 좋은 것만 쓰려고 그러는데 학생들이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네.(웃음) 

―그럼 앞으로도 가격을 올리실 생각이 없으신 건가요?

“사실 며칠 전 이 가게를 내놓아서 앞으로 내가 운영할 때까지는 가격을 올릴 이유가 없지. 가게가 나가면 이 밥스틱을 같이 했으면 좋겠는데, 이 가격에 팔면서 누가 뜨거운 불판 앞에서 일하려고 할까. 사실 인건비 생각하면 남는 게 없다고 봐도 되니까. 

―이제 그럼 그만두시는 건가요?

“내가 나이가 많아서 더는 못할 것 같아. 그래도 여기마저 없어지면 밥스틱은 없어지는 거니까. 가끔 이 맛이 생각난다며 오는 예전 학생들이나 여고 학생들 생각하면 누군가 계속 운영했으면 싶은데 이 자리에서 다른 가게 한다고 하면 끝이지. 이것저것 묻는 거 보니 오랜만에 생각나서 온 건가 보네. 저 위쪽 고등학교 다녔겠네.

   
며칠 전 가게를 내놓았다니, 어쩌면 밥스틱은 조만간 없어질지도 모른다.
   
추억이 서린 낙서. 졸지에 나도 인근 고교 졸업생이 되어버렸다. 가게를 나와 여러 번 뒤돌아봤다.

―아…. 네 그 고등학교 나왔어요(갑자기 자신도 모르는 새에 거짓말이 나와버렸다).

“오랜만에 생각나서 왔다니 나도 참 반갑네(웃음). 찾아줘서 고마워.”

문 닫기 전에 꼭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밖으로 향했다. 구산역 인근 고등학교 출신으로 갑작스런 둔갑을 했기 때문인지 기분이 이상해졌다. 밥스틱을 먹어본 것은 처음이지만 사장님 말씀을 듣다보니 아련한 추억에 잠겼다.

우연히 방문하게 됐지만 많은 사람들의 추억, 기억이 묻은 상품의 마지막을 목격했기 때문인가. 잊혀지는 것들에 대한 생각 탓인지, 가게를 나선 후에도 여러 번 뒤를 돌아보게 됐다.

김태현 기자 toyo@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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