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국과 미국이 ‘방위산업의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불리는 국방상호조달협정(RDP-A)을 체결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우리 방산 기업의 미국 국방 조달 시장 진출 및 공동 마케팅 전략 수립의 기회가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국방부에 따르면 국가안보실은 인성환 2차장이 주재한 방산수출전략평가회의에서 올해 안에 미국과 RDP-A를 체결하기로 했다. 협정이 체결되면 국내 방산 업체가 미국에 무기를 수출할 때 가격 페널티나 세금 부과 등 불이익이 면제된다.
미국은 영국과 캐나다, 호주, 독일, 일본, 프랑스 등 세계 28개 동맹국과 RDP-MOU(양해각서)를 맺었다. 이를 통해 상호 공급망 협력과 방산 교역 확대, 첨단 군사 기술과 무기 체계의 공동 개발·생산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국내 방산 기업들은 세계 최대 미국 방산시장을 겨냥해 현지 기업을 인수하거나 미군 사업에 참가하며 진출에 시동을 걸고 있다. 대표적으로 LIG넥스원,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이 있다.
우선 LIG넥스원은 미국 로봇 개발·제조업체 ‘고스트로보틱스’ 지분을 인수할 예정이라고 공시했다. 이를 위해 1877억 원을 출자해 미국에 특수목적법인 LNGR(가칭)을 설립했다. 고스트로보틱스 최종 인수까지는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의 승인을 넘어야 한다. 지분을 취득할 경우 미국 시장의 매출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 현재 고스트로보틱스의 로봇 개는 미군에서 시범 운용하고 있다. 미군의 운용 성과를 바탕으로 미국과 군사동맹을 체결한 나라들도 로봇 개를 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KAI는 올해 미국 최대 방산기업인 록히드마틴과 협업해 미 공군과 해군의 고등·전술훈련기, 공군 전술훈련기 사업에 도전한다. 미 국방부는 올해 500대 이상의 차세대 훈련기를 도입하기 위해 예산을 책정했다. KAI와 록히드마틴의 훈련기가 미국에 진출하면 해외 고등훈련기 및 경전투기 시장에서 1300대 이상 판매하고 50% 이상 시장 지배력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KAI와 미 록히드마틴 컨소시엄의 FA-50은 지난 2018년 미 공군 차기고등훈련기(APT) 사업에서 보잉의 T-7에 패했는데, T-7이 기체결함 등으로 개발이 지연돼 논란이 일었다. FA-50이 미 해·공군의 차기 유력 훈련기 기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방상호조달협정이 없다면 관세 부과로 외산 제품보다 50%가량 가격이 높게 반영돼 현실적으로 미국 시장 진입이 요원해진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미국의 군용차량 개발업체인 오시코시 디펜스와 손잡은 ‘레드백’ 장갑차도 미국 진출 무기 후보군이다. 레드백은 한국군의 K21 보병전투차량의 핵심기술을 바탕으로 이스라엘, 호주, 캐나다 등 글로벌 방산기업과 협력해 개발한 5세대 궤도형 보병전투장갑차다. 험난한 지형도 쉽게 돌파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궤도형 장갑차로 적의 대전차 미사일 공격을 미리 감지하고 무력화할 수 있는 ‘능동방어 시스템’과 열상 위장막 등 혁신적 기술을 갖췄다.
K-방산이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주목받으면서 폴란드 등 동유럽에 이어 동남아, 호주 등 세계 각지로 수출을 늘리며 가격과 성능 모두 인정받고 있는 점도 미국 진출에 강점으로 작용한다. 방산 관계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방비를 지출하는 국가이자 최정상 글로벌 방산기업들이 즐비한 미국에 우리 무기체계를 수출한다면 매출뿐 아니라 성능도 인정받는 것이다. 다른 국가와 수출 협상 시에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협정이 체계기업(대기업)뿐만 아니라 협력기업(중소기업)에도 긍정적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복잡한 무기체계 교류가 활발해지면 중소 부품제작업체들도 성장하고 미국도 부품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확대할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협정 체결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RDP-A 체결을 이유로 ‘절충교역’을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절충교역이란 무기나 장비를 구매할 때 계약 상대로부터 관련 지식 또는 기술을 이전받거나, 국산 무기·장비·부품을 수출하는 등 일정한 반대급부를 받는 조건으로 교역하는 것이다. 국내 방산 기업들은 미국 방산 기업과 절충교역을 통해 성장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협정을 근거로 절충교역을 폐지하면 향후 우리 기업은 미국 정부와 직접 계약해 납품을 진행해야 한다. 문제는 미 정부와 직접 B2G 거래를 해본 국내 기업이 없다는 점이다.
한미 기업이 합작해 경쟁 입찰을 할 경우 ‘한국산 무기’로 판매하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에 경쟁입찰 시 한국산 무기로 판매하지 않을 가능성이 점쳐진다”면서 “T-50은 록히드마틴 제품, 레드백 장갑차는 오시코시 제품으로 미국산 제품으로 입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현건 기자
rimsclub@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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