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SNS에서 재밌는 이미지를 봤다. 계속 줌인을 하면서 그림 중심으로 쭉 들어가다보면 어느샌가 다시 원래의 그림으로 돌아온다. 무한히 줌인을 하면서 계속 같은 그림들이 반복되는 놀라운 그림이다. 초현실주의 화가 에셔의 작품 ‘천사와 악마’를 떠올리게 한다. 분명 그림의 면적은 유한하다. 하지만 그 속에서 천사와 악마의 형상은 무한히 반복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우주의 역사가 이 그림들처럼 끝없이 반복된다면 어떨까? 알고 보니 지금의 우주는 인생 1회 차, 아니 빅뱅 1회 차가 아니라 이미 앞서 몇 회 차의 삶을 반복한 상태라면?
2020년 블랙홀의 특이점을 수학적으로 규명한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물리학자 로저 펜로즈는 놀랍게도 우주의 역사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이것을 등각 순환 우주론(CCC, Conformal cyclic cosmology)이라고 부른다. CCC 가설은 관측으로 입증이 불가능한 그저 재밌는 가설 중 하나로 여겨졌다.
그런데 최근 천문학자들이 북두칠성 옆에서 우주의 거대 구조를 발견했다. 이 거대 구조는 펜로즈가 제안한 순환하는 우주의 증거가 될지도 모른다!
빅뱅과 우주의 역사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소개한다.
오늘의 이야기는 아주 중요하지만 조금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우선 이야기의 순서를 먼저 정리해보겠다. △지금까지 발견된 우주의 거대 구조는 어떤 것이 있나 △거대 구조의 존재가 왜 문제가 될까 △이번 발견을 통해 펜로즈의 CCC 가설이 어떻게 입증될 가능성이 있는가.
#지금까지 발견된 우주의 거대 구조는 어떤 것이 있나
우주에서 수억 광년 규모의 거대 구조가 발견된 게 처음은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은하와 퀘이사들이 모여 있는 거대한 규모의 구조들이 여럿 발견되었다.
하늘 전역의 대대적인 은하 분포 지도를 그려나간 슬로안 전천 탐사 프로젝트를 통해 발견된 슬로안 장성(Sloan Great Wall)이 있다. 이름 그대로 우주에 있는 은하들로 이어진 거대한 만리장성이다. 약 10억 광년 거리에 떨어진 은하들이 13.8억 광년 길이로 길게 이어져 분포한다. 이는 관측 가능한 우주 전체 크기의 60분의 1에 달한다.
2013년 또 다른 연구팀이 슬로안 서베이가 발견한 우주 끝자락 퀘이사들의 분포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사자자리 방향에 있는 먼 퀘이사 73개가 거대한 갈고리 모양으로 이어지는데, 전체 길이만 40억 광년에 달한다. 슬로안 장성보다도 네 배나 길다!
지금까지 발견한 거대 구조 중 가장 큰 것은 2013년에 연이어 발견된 헤라클레스자리-북쪽왕관자리 장성(Hercules–Corona Borealis Great Wall)이다. 우주 끝자락에서 강력한 감마선 에너지를 토해내고 있는 감마선 폭발 천체들의 분포를 지도로 그리던 중, 천문학자들은 유독 우주의 특정 영역에서 감마선 폭발 천체들이 높은 밀도로 모인 곳을 발견했다. 그 전체 규모만 무려 100억 광년. 사실상 관측 가능한 우주 전체 지름의 9분의 1에 달하는 규모다!
2021년 또 다른 거대 구조가 발견되었다. 천문학자들은 비교적 먼 은하들의 거리를 파악하기 위해 그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는 배경 퀘이사들을 활용했다. 우주 끝자락 퀘이사의 빛이 우리를 향해 날아오는 동안 그 사이에 있는 다른 은하들을 통과하게 된다. 퀘이사의 빛 일부는 그 은하의 가스 분자 구름에 흡수된다. 스펙트럼을 통해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면, 그 은하가 배경 퀘이사에 비해서 얼마나 가까운 거리에 있는지를 유추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천문학자들은 북두칠성의 국자 손잡이 아래, 목동자리 사이 영역에서 은하들이 거대한 호를 이루며 이어진 거대 구조 ‘자이언트 아크’를 발견했다. 은하들이 이어진 전체 규모만 33억 광년에 달한다.
그런데 그 팀이 올해 또 새로운 발견을 발표했다. 며칠 전 개최된 미국천문학회(AAS)에서 연구팀은 자이언트 아크 바로 옆에 있는 또 다른 거대 구조의 존재를 공개했다. 북두칠성 국자 손잡이 부근에 은하들이 둥글게 거대한 고리 모양을 이루고 있다. ‘빅 링’이라고 불리는 이 거대 고리의 지름은 13억 광년에 달한다. 이 역시 어마어마한 규모다!
이처럼 천문학자들이 우주 전역의 은하, 퀘이사들의 분포 지도를 더 정밀하게 채워나가면서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수십억 광년 스케일의 거대한 구조들이 새롭게 발견되었다.
#거대 구조의 존재가 왜 문제가 될까
우주는 어쨌든 엄청 크다. 그런 거대한 우주에 걸맞은 이런 거대한 구조가 있는데, 그게 왜 문제가 될까? 빅뱅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거대 구조의 존재가 왜 모순인지 이해하기 위해 138억 년 전 우주가 탄생한 직후로 잠시 돌아가보자. 태초의 순간 원자보다 작은 우주가 있었다. 그 속에는 양자역학의 혼란스러운 법칙만이 존재했다. 곳곳에서 무작위로 새로운 에너지가 생성되었다가 곧바로 사라지는 혼돈 그 자체였다. (이 혼돈을 물리학자들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라고 부른다. 물리학에서는 혼돈조차 일관된 ‘법칙’이 있다.)
양자 스케일에서의 미세한 요동은 시시각각 작은 우주 시공간 전역에 미세한 밀도의 차이를 만든다. 하지만 아직 우주 자체가 워낙 작기 때문에 그 요동의 스케일도 굉장히 미미하다. 그런데 우주가 탄생하고 10^-35초밖에 안 되는 시간이 지났을 때 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우주가 갑자기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시공간이 급격하게 팽창한 초기 우주의 인플레이션이다.
인플레이션은 초기 우주에 존재하던 미세한 양자 요동의 스케일도 같은 비율로 확장시켰다. 원래는 무시할 정도로 작던 미세한 밀도의 차이가 훨씬 거대한 규모의 밀도 차이로 성장했다. 우주의 어떤 영역은 주변보다 밀도가 살짝 높거나 낮아졌다. 어디가 밀도가 더 높고 낮을지는 순전히 양자역학적으로 랜덤하게 결정된 결과다.
이렇게 우연히 밀도가 높아진 영역은 주변의 물질을 더 강한 중력으로 끌어당긴다. 반면 우연히 밀도가 작아진 영역은 사방의 다른 영역으로 물질을 빼앗긴다. 밀도가 높은 영역을 중심으로 은하, 은하단이 반죽되고, 밀도가 텅 빈 영역은 은하가 거의 없는 텅 빈 보이드가 된다. 이렇게 오늘날 그물처럼 은하들이 얽힌 우주 거대 구조가 완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이 있다. 초기 우주 양자 스케일에서의 미미한 밀도 요동은 순전히 랜덤하게 분포한다는 점이다. 즉 미시적으로 보면 미세한 요동이 있지만 꺼시적으로 보면 우주는 고르게 분포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거대한 카펫과 같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카펫 천의 까슬까슬한 질감을 볼 수 있지만, 크게 보면 카펫은 전반적으로 평탄하고 매끈해 보인다.
이것은 빅뱅 우주론의 우주에서도 마찬가지다. 국지적으로는 은하들이 높은 밀도로 모인 은하단도 있고, 은하가 거의 없는 텅 빈 보이드도 있다. 하지만 은하단 규모를 벗어나 수십억 광년의 거시적 스케일로 보면 우주 어디를 봐도 거의 비슷하게 보인다. 또 어느 방향을 봐도 우주는 다 비슷하게 보인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균일하며 등방하다고 이야기한다. 우주의 등방성과 균일성은 빅뱅 우주론의 가장 근간이 되는 ‘우주 원리’다.
모델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평균 12억 광년 이상의 거시적 규모에서 우주는 거의 균일하게 보여야 한다. 그 이하 규모에서는 물질의 분포 밀도나 형태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연이어 발견된 거대 구조는 12억 광년 스케일을 훨씬 넘는다. 이번에 발견된 빅 링의 지름만 13억 광년이다. 앞서 발견한 자이언트 아크의 길이는 33억 광년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거대한 은하들의 장성인 헤라클레스자리-북쪽왕관자리 장성은 전체 길이가 무려 100억 광년에 달한다. 즉 12억 광년을 훨씬 넘는 거시적인 스케일에서도 우주가 마냥 균일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거대 구조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 빅뱅 우주론의 근간, ‘우주 원리’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이번 발견을 통해 펜로즈의 CCC 가설이 어떻게 입증될 가능성이 있는가
그렇다면 이번에 발견된 빅 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기존 빅뱅 이론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한 가지 가능성은 초기 우주에 함께 엮여 있던 빛과 물질이 처음 분리되면서 우주에 각인된 흔적, 바리온 음향 진동(BAO)다. 초기 우주에 밀도가 높았던 밀도 요동의 씨앗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음파가 퍼져나가듯 밀도파가 퍼져나갔고, 주변에 둥글게 밀도가 살짝 더 높은 영역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실제로 우주 전역의 지도를 그려보면 은하들이 유독 특정한 거리를 두고 둥글게 분포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다만 보통 바리온 음향 진동의 스케일은 5억 광년밖에 안 된다. 이번에 발견된 거대 고리, 빅 링은 바리온 음향 진동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일부 천문학자들은 빅 링에서 오래전 펜로즈가 제안했던 CCC 가설의 가능성을 본다. 현재의 빅뱅 이론은 초기에 엔트로피가 아주 낮았던 우주를 시작으로 계속 끝없이 엔트로피가 증가하며 팽창하는 우주의 진화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우주가 최대로 팽창하게 되면 결국 다시 넓게 확장된 시공간 속 미세한 양자 요동만 가득한 세계가 된다.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게 되는 셈이다. 펜로즈는 끝없이 팽창한 우주의 상태가 수학적으로 빅뱅 순간의 우주의 상태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는 아주 재밌는 가설을 제안했다. 우주가 끝없이 팽창하다보면 다시 그 속에서 새로운 빅뱅이 발생하며, 우주의 역사는 지금껏 수없이 반복되어 왔다는 것이다.
우주가 단순히 수축과 팽창을 반복할 것이라는 빅크런치 가설과는 조금 다르다. 펜로즈의 CCC 가설에는 수축하는 우주는 없다. 우주는 항상 언제나 팽창만 한다. 다만 끝없이 팽창한 우주 속에서 다시 새로운 빅뱅이 시작되며 그다음 시대의 우주 역사가 반복될 뿐이다.
펜로즈는 CCC 가설을 관측으로 입증할 한 가지 방법론을 제시한다. 우주가 끝없이 팽창하다보면 결국 종국에는 모든 별과 은하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주에는 높은 밀도로 반죽된 별들의 시체, 블랙홀만 남게 된다. 그런데 스티븐 호킹의 가설에 따르면 블랙홀도 영원히 존재하지 못한다. ‘호킹 복사’의 형태로 블랙홀은 조금씩 에너지를 방출한다. 호킹 복사의 효율은 블랙홀이 가벼워질수록 더 거세진다. 처음에 블랙홀이 아주 무거웠을 때는 호킹 복사가 적지만, 블랙홀이 점점 가벼워지고 사라지면서 그 정도는 더 거세진다. 최후의 순간 블랙홀이 모두 다 증발해버리면 아주 막대한 에너지가 사방으로 방출된다. 이는 우주 시공간에 둥글게 퍼져나가는 중력파의 떨림을 일으킬 수 있다.
블랙홀의 증발은 이전 시대의 우주가 종말하기 직전 벌어질 것이다. 그 직후 다음 시대의 빅뱅이 시작되고 새로운 우주 팽창으로 이어진다면, 직전에 벌어진 막강한 블랙홀의 증발 사건이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블랙홀이 사라진 포인트를 중심으로 둥글게 퍼져나간 중력파의 여운이 뒤이은 시대의 우주에 그대로 각인될 수 있다. 이전 시대 우주에서 블랙홀이 사라진 포인트를 호킹 포인트라고 부른다. 다음 시대 우주에는 사라진 블랙홀의 여운이 거대하게, 호킹 포인트를 중심으로 둥근 고리 형태로 퍼져나가며 남게 될 수 있다. 정확히 이번에 발견된 거대 고리 빅 링처럼!
펜로즈의 CCC 가설은 그동안 물리학과 천문학이 답할 수 없었던 ‘우리 우주의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매력적인 가설이다. 게다가 그것을 관측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방법론까지 제시한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굉장히 현실적인 가설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지금까지는 빅뱅 직후의 열기가 우주 전역에 퍼지면서 남은 우주배경복사에서 호킹 포인트의 둥근 여운을 찾았는데, 별다른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은하들의 분포 지도를 더 정교하게 그릴 수 있게 되면서, 우주배경복사가 아니라 은하들의 분포에서 호킹 포인트의 둥근 여운을 찾게 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물론 이번에 발견한 구조가 CCC 가설의 직접적인 증거라고는 할 수 없다. 이제 겨우 둥근 고리 하나가 발견됐을 뿐이다.
마침 작년 말, 100억 광년 이내 은하들의 더 정교한 분포 지도를 그리기 위한 유클리드 우주 망원경이 궤도에 올랐다. 이미 시범 관측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탐사를 진행하고 있다. 기존의 슬로안 전천 탐사를 뛰어넘는 더 거대한 영역, 그리고 더 세밀한 분해능의 우주 지도를 제공해줄 것이다.
만약 유클리드를 통해 완성한 고해상도 우주 지도 곳곳에서 둥글게 퍼진 크고 작은 둥근 여운이 여럿 발견된다면? 비록 지금의 우리 우주가 몇 회 차 빅뱅으로 생성된 우주인지는 알 수 없다 해도, 적어도 우리 이전에 또 다른 빅뱅이, 또 다른 우주가 수없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참고
https://academic.oup.com/mnras/article/516/2/1557/6657809?login=false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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