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국 항공우주산업(KAI)이 차세대기동헬기 개발을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선다. 다만 막대한 개발비용, 부족한 개발기간, 형상 선택에 따른 리스크 등 여러 장애물을 극복해야 하는 상황이라 방위사업청과 육군이 얼마나 적극적인지가 관건이다.
활주로 없이 수직이착륙(VTOL)을 할 수 있는 헬리콥터는 민간 영역은 물론, 군사작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적인 무기체계다. 야전에서 병력 수송을 하는 강습 임무는 물론, 보급과 부상자 수송, 공격 임무까지 담당하는 군용 기동·공격헬기 역할은 지상전의 승패를 결정지을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육군 역시 헬기의 중요성을 잘 알고, 헬기 전력에 막대한 투자를 진행해 왔다. 세계 최초로 헬기를 군사적으로 이용한 것이 한국전쟁이었으며 헬리콥터의 역할이 산악지역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현재 한국 육군의 헬리콥터 전력은 세계에서도 5위 안에 드는 상당한 수준이다. 36기의 AH-64E 아파치 가디언 공격헬기, 69기의 AH-1S 코브라 공격헬기는 물론 32기의 CH-47 치누크 대형기동헬기, 110여 대의 UH-60 중형기동헬기, KUH-1 수리온 기동헬기 220대 등 충실한 전력을 갖추고 있으며 현재 소형 무장헬기 LAH의 실전 배치를 준비하고 있다.
# 기존 블랙호크보다 두 배 빠르고 멀리 비행
최근 미국 육군은 UH-60 기동헬기를 대체하기 위한 차세대기동헬기 프로젝트, FLRAA(Future Long-Range Assault Aircraft)를 진행했다. 미 육군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등을 거치면서 헬기의 항속거리와 속도 부족 문제를 느꼈다. 이에 블랙호크 헬기보다 두 배 빠르고 두 배 멀리 날아갈 수 있는 신형 헬기 개발을 업체에 요구했다.
미 육군의 요구사항을 만족하기 위해 미국의 대형 방위산업체들은 팀을 꾸려 기존의 헬기 성능을 아득히 뛰어넘는 차세대 헬기 기술을 개발했다. 치열한 경쟁과 연구 끝에 미국은 벨(Bell)과 록히드 마틴(Lockheed Martin)이 공동 개발한 ‘V-280 밸러(Valor)’를 채택했다.
밸러는 일명 ‘틸트 로터’(Tilt Rotor) 방식으로, 한 개의 주 로터와 한 개의 보조 로터가 있는 헬기와 달리 두 개의 대형 로터의 방향을 바꾸어 수직이착륙과 수평비행을 하는 방식으로 고안됐다. 이를 통해 블랙호크와 비슷한 화물이나 인원을 싣고도 두 배 빠른 속도로 두 배나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
미 육군이 UH-60을 새로운 헬기로 대체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국방부와 육군 역시 미 육군처럼 UH-60을 대체할 차세대 헬기를 만드는 계획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국내 학계 및 연구를 중심으로 UH-60의 대체 헬기에 차세대 추진방식 도입이 진지하게 검토됐고 이번에 공개된 구체적인 방안이 바로 ‘XUH’라 불리는 차세대기동헬기 개발계획이다.
XUH 계획은 이달 22일 한국항공우주학회가 개최한 ‘수직이착륙기 체계 부문위원회 동계 심포지엄’에서 그 전모가 처음 밝혀졌다. KAI는 ‘차세대기동헬기 성공적 개발을 위한 준비’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이 상세 내용을 공개했는데,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XUH 계획은 한국 육군이 운용 중인 UH-60을 대체하기 위한 고속 중형기동헬기를 개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미국 육군과의 공동작전을 중요시하고, 세계 최고 성능을 요구하는 한국 육군의 요구사항에 맞는 헬기를 국내 연구개발로 획득한다는 내용이다.
XUH 계획은 과거의 한국형 헬기 개발계획보다 훨씬 도전적이고 야심차다. 현재 생산 중인 국산 기동헬기, KUH-1 수리온의 경우 에어버스 헬리콥터의 H215 헬기를 기반으로 새로운 엔진과 로터를 달았는데, 개발비용과 시간을 절감하기 위해서 동체의 단면적을 H215와 유사하게 만드는 등 보수적인 개조 개발을 했다. 현재 개발을 끝낸 LAH 소형 무장헬기의 경우에는 에어버스 헬리콥터의 H155 헬기와 같은 동체와 엔진을 만들어 개발기간을 단축하는 등 국산 헬리콥터이지만 이미 개발돼 수십 년째 운용 중인 헬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반면 XUH 고속 중형기동헬기는 미국조차 이제 한창 체계개발 중인 차세대 헬기와 동등한 성능의 헬기를 새로 만드는 것으로, XUH 사업이 성공하면 한국은 미국과 같은 헬기 선진국보다 20년 이상 차이 나는 기술격차를 10여 년 이내로 줄이는 ‘퀀텀 점프’가 가능해진다.
KAI는 이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육군이 요구할 차세대기동헬기의 성능 목표를 FLRAA와 동등할 것으로 가정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XUH는 FLRAA와 거의 비슷한 성능을 갖추기 위해 8명에서 12명 내외의 전투 병력을 싣고, 기존 블랙호크보다 두 배 빠르고 두 배 멀리 날아갈 능력을 갖출 예정이다. K-MOSA로 불리는 한국형 차세대 개방형 구조를 채용해서 기존에 운용 중인 헬기보다 항공전자 장비의 업그레이드가 더욱 쉽고, 다른 기체 간 호환성 역시 강화할 방침이다.
#요구 비행성능 확보하려면 구조 변경이 필수
XUH의 핵심 요구 기술 중 가장 어렵고 도전적인 것은 역시 비행 성능이다. 기존 헬기보다 두 배 빠르고 두 배 더 멀리 가기 위해서 XUH는 KAI가 지금까지 개발한 헬기와 전혀 다른 구조를 가져야 하는데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동축반전/푸셔 방식이다. 헬기는 원래 하나의 주 로터와 하나의 보조 로터로 되어 있다. 주 로터를 한 쌍으로 붙여서 만드는 헬기를 동축반전(Coaxial) 로터라고 한다. 산림청과 공군에서 쓰이는 러시아제 KA-32 헬기가 이 방식을 쓴다. 여기에 속도를 높이기 위해 꼬리 부분에 추진력을 만드는 프로펠러(Pusher)가 더해진다.
두 번째는 복합형이다. 동축반전/푸셔와 같이 꼬리 부분에 추진력을 주는 프로펠러는 동일하지만, 하나가 아닌 두 개의 프로펠러가 추가된다. 대신에 주 로터는 일반 헬기와 마찬가지로 1개만 장착한다. 기존 헬기의 보조 프로펠러가 균형을 잡는 역할을 이 두 개의 꼬리 프로펠러가 수행한다.
마지막은 앞서 설명한 적이 있는 틸트로터형이다. 큰 두 개의 주 로터를 날개 끝에 배치하는 이 방식은 과거에는 방향을 바꾸기 위해 엔진 전체를 수평 모드와 수직 모드로 변환했는데, 최신 기술은 엔진은 그대로 두고 프로펠러의 방향만 바꾸는 것으로 안정성을 높이고 중량을 줄이는 추세다.
KAI는 현재까지 ‘세 가지 모두’를 준비하고 있다. KAI는 이를 위해 동축반전/푸셔 방식을 만든 적 있는 시콜스키(Sikorsky-Lockheed Martin), 틸트로터를 만든 적 있는 벨(Bell), 복합형을 만든 적 있는 에어버스 헬리콥터(Airbus Helicopters)와 모두 협업해 국제 공동 선행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KAI의 목표는 현재 연구 중인 기초연구를 발전시켜, 2026년까지 기술시범기(Technology Demonstrator) 개발을 시작해 2031년에 체계개발을 진행하는 것이다. KAI의 계획이 과거와 달리 현재 선진국들도 개발 중인 기술인만큼, 바로 시작할 수 없어 기술을 검증하기 위해 실제 중형기동헬기보다 작은 모형을 먼저 만들 계획이다.
다만 모형이라고 해서 장난감이나 소형 드론은 아닌, 2.5톤(5,000lb) 내외의 무인 헬기다. 시험 비행 시 안전 문제를 감안하여 무인 비행도 함께 도입된다. 이 기술시범기를 통해 실제로 기존 헬기보다 두 배 빠른 속도를 내고 두 배 멀리 나간다는 핵심기술을 검증할 예정이다.
차질 없이 과정이 완료된다면 2031년에 개발을 시작해 2040년도에는 한국 육군에 배치할 XUH가 실체를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2040년이라고 하면 지나치게 먼 시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개발 일정이 너무 빠듯해 실현될지 현재로서는 불확실하다. 그만큼 기술 수준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예컨대 KUH-1 수리온의 경우 2001년 8월 처음 사업이 진행됐으나, 개발 방향성을 잡는 데 5년이 걸려 2006년에서야 개발을 시작했으며 2013년 완료됐다. 2013년 기준에서 수리온은 서구 선진국들이 1990년대에 이룬 수준을 따라잡은 정도다.
하지만 XUH의 경우 2031년에 개발을 시작하여 2040년에 완료될 경우, 현재 기준에서 미국의 V-280을 포함한 몇 개 기종만 XUH와 동등한 성능을 갖추게 되고, 미국이 2030년 달성한 능력을 따라잡게 된다. 30년 뒤처진 격차가 10년 이내로 줄어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막대한 개발비용 확보 및 구체적 개발 로드맵 정해져야
다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세 가지 있다. 첫 번째로는 막대한 개발비용이다. KAI 관계자는 정확한 개발비 산출이 지금으로서는 정보가 부족하다고 하지만, 적어도 KF-21과 동등한 수준, 즉 8조 원보다 많거나 적어도 비슷할 것으로 인정했다. XUH 개발을 위해서는 단군 이래 가장 큰 금액인 국방 연구·개발 사업인 KF-21 개발비와 비슷한 금액을 또다시 마련해야 하기에 정해진 재원 마련이 쉽지 않다.
두 번째 문제는 개발기간이 짧다는 점이다. 무기는 만들자고 결정하기 전에 필요한 절차와 규칙이 너무 많다. KUH-1 수리온이 앞서 말했든 이 기간이 5년 걸렸지만, KF-21의 경우 사업이 처음 시작되고 본격적으로 개발을 시작하기까지 무려 13년이나 걸렸다. 기술과 돈에 리스크가 있는 만큼 논란이 길어지면 개발 착수에 걸리는 기간도 길어지고, 이것이 자칫하면 XUH 헬기가 2040년대 이후에 완성되어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를 메우는 데 실패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문제는 형상, XUH의 구성이 확정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듯 기존 헬기보다 빠른 차세대 헬기를 만드는 방법이 세 가지가 있는데, 현재 KAI는 세 가지 방법에 관한 기술을 보유한 세 곳의 기업과 모두 접촉하는 중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세 가지 기술을 동시에 개발할 인력도, 시간도, 자본도 없는 실정이다, 결국 하나를 빨리 선택해야 한다. 이 선택은 KAI가 아닌 국방부와 육군이 해야 하는데, 이 결정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지 아직 알 수 없어 사업 추진이 어려운 상황이다.
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는, 올해 안에 육군이 선택하되, 틸트로터 기술 확보에 모든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본다. 틸트로터 기술은 비행 성능이 세 방식 중 가장 우수하며, 미국이 V-280 헬기를 이미 구매한 이상 미국 차세대 헬기와 같은 방식을 채용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한 틸트로터 기술은 이미 우리가 연구한 전례가 있다. 과거에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이 1000억 원의 개발비를 들여 TR-100 틸트로터 무인항공기가 그것. KAI 역시 차세대 사단급 무인기 NI-500VT에서 하이브리드 틸트로터 방식을 채용하기도 했다.
문제는 핵심기술을 미국 벨 사로부터 구할 수 있는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미국 벨 사 입장에서 당연히 한국 시장에 V-280을 수출하고 싶어 하기에, 과거 KF-21 사업에서 그랬던 것처럼 틸트로터 기술이전을 거부하고 V-280 직도입, 혹은 V-280 개조 개발을 제안할 가능성이 크다.
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는, XUH 개발을 위해 미국 벨 사와 기술협력을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우리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2단계 기술 실증 전략’을 제안해 볼 만하다. 즉 KAI가 제안한 5000파운드(약 2.5톤)급 기술실증기 제작 전에, 2000파운드(약 1톤)급 기술실증기를 만들어 두 단계로 국내 틸트로터 기술을 발전시키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서 만드는 소형 기술실증기는 과거 항공우주연구원(KARI)이 개발한 TR-100 무인기와 KAI가 개발 중인 차기 군단 무인기(CUAV-II) 사이의 크기로 설계한 다음, 국산화가 예정인 차기 군단급 무인기용 200마력 왕복엔진 2기를 사용하여 XUH에 적용될 주 로터 구동 구조(Tilting Drivetrain)를 적용하여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두 개의 크기가 다른 프로토타입을 만들 경우, 인력과 비용이 좀 더 들겠지만 같은 시간 안에 더 많은 비행시험이 가능하고, 가격이 비싼 5000 파운드급 기술시범기를 개발하기 전 기술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또한 소형 기술시범기를 기반으로 한 소형 무인공격기로 확장하여 미래에 XUH의 호위 임무를 주거나, 단독 공격 임무를 맡길 수 있다.
XUH 사업은 그 규모와 기술적 도전의 수준이 그야말로 ‘한국 항공우주산업의 다음 20년’을 책임질 대형 사업이라 할 만하다. 다만 기술적 어려움이 크고 국제 공동개발이 순탄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리라고 예상되는 만큼, 철저한 준비가 수반돼야 한다.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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