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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도시인은 알 수 없는 친근한 고향 그려낸 '웰컴투 삼달리'

추락한 용도 일으켜 세우는 힐링 에너지 선사…첫사랑 잊지 못하는 '버거운 순정'도 인기 비결

2024.01.10(Wed) 16:14:17

[비즈한국] ‘웰컴투 삼달리’(JTBC)의 인기가 만만치 않다. 첫 회 시청률 5.2%로 시작하더니, 지난 12화엔 9.8%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웰컴투 삼달리’는 제주도의 작은 마을 삼달리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서 개천 용이 된 조삼달(신혜선)이 불의의 사건으로 곤두박질치고 삼달리로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성공을 꿈꾸던 도시에서 상처를 입고 고향(또는 고향 같은 곳)으로 돌아와 치유한다는 스토리는 ‘리틀 포레스트’나 ‘갯마을 차차차’ 등 여러 작품에서도 선보였고, 또 좋은 반응을 얻었다. 대관절 고향이 무엇이길래 그럴까?

 

스무 살이 된 조삼달은 태어나자마자 친구이자 인연인 조용필과 친구들과 함께 서울로 상경한다. 개천에서 난 용이 되는 것이 꿈인 조삼달은 18년간 육지 생활을 하면서 끝내 용이 되지만, 그 성공을 진심으로 함께 응원하는 ‘내 사람’을 얻는 데는 성공하지 못한다. 사진=JTBC 제공

 

어릴 적부터 여의주를 찾아 용이 될 거라는 포부를 지녔던 조삼달은 끝내 서울에서 개천 용이 되었다. 어릴 적부터 카메라를 붙잡고 제주 곳곳을 찍던 그는 서울에 상경해 대학과 유학과 혹독한 어시스턴트 세월을 겪고 국내 정상급 사진작가가 되어 세계적 명성의 해외 매거진 월드 투어전을 목전에 두게 된다. 그러나 어시스턴트 방은주(조윤서)가 삼달의 갑질과 언어폭력 때문에 투신 시도를 했다고 거짓 폭로하면서 한순간에 추락한다. 준비 중이었으나 갑질 논란으로 물거품이 된 삼달의 사진전 명칭이 ‘人: 내 사람’인 점은 실로 아이러니하다.

 

상경 18년, 사진작가 15년의 세월을 쌓으며 내 사람이라 생각했던 인맥들, 삼달과 함께 일하길 원했던 톱스타들과 매거진 에디터들, 기업체들은 논란이 불거지자마자 삼달과 빠른 ‘손절’에 급급하다. 누구도 삼달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 않고, 누구도 그에게 괜찮냐고 묻지 않았다. 도망치듯 돌아온 고향 삼달리에서, 더없이 쪽팔린 모습으로 마주친 조용필(지창욱) 외엔.

 

한날한시에 5분 간격으로 태어난 조용필과 조삼달. 용필의 엄마 부미자와 삼달의 엄마 고미자가 절친한 사이라 어릴 적부터 항상 함께였다. 그러나 8년 전, 둘은 누가 누구를 찼는지 헷갈릴 만큼 가슴 아픈 이별을 하며 떨어지게 된다. 사진=JTBC 제공

 

조삼달이 돌아온 개천은 제주도의 작은 마을 삼달리. 부모님이 있고, 어릴 적부터 ‘독수리 오형제’라 불렸던 친구들이 있고, 그리고 한날한시에 태어난 천생 인연이자 태어난 순간부터 삼달과 30년을 함께했던 전 남친 조용필이 있는 곳이다. 육지로 가서 여의주 찾아 용이 될 거라던 삼달과 달리 일평생 물질로 자식들을 키워온 엄마 고미자(김미경)와 아빠 조판식(서현철)은 삼달리를 지켜왔고, 친구들 또한 꿈을 품고 서울로 상경했으나 다시 돌아왔다. 어릴 적부터 엄마와 삼달이 자신의 꿈이라던 용필은 기상청 본청에서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내는 실력자 예보관으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자신과 삼달이 나고 자란 삼달리를 지키고 있다. 

 

논란으로 자신을 외면한 ‘가짜 내 사람’들이 주를 이루던 서울과 달리 삼달리에선 삼달을 해치려는 이들 앞에 스스럼없이 나서는 ‘내 편’들이 즐비하다. 12화에서 또 다시 삼달을 사이버 불링의 세계로 소환하며 끝까지 짓밟으려는 방은주를 향해 동네 사람들과 친구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엄마 고미자가 귤농사에 쓰이는 식초를 양동이 째로 끼얹는 모습을 보라. 그렇게 든든할 수 없다. 

 

자식들이 속에서 천불을 내게 만들어도, 그래서 서슴없이 자식들의 등짝에 스매싱을 날리더라도, 엄마 고미자의 모든 마음은 자식들을 향해 있다. 그리고 자신 때문에 일찍 엄마를 잃은 용필에게도 고미자는 항상 엄마였다. 사진=JTBC 제공

 

이쯤 되면 다시금 묻게 된다. 대관절 고향이란 뭘까. 서울이 고향인 나는 삼달과 같은 의미의 고향이 없다. 서대문구에서 태어나 강동구를 거쳤다 성인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 서초구에서 자랐지만 어느 지역 하나 고향이란 느낌은 없다. 서울에서 자라고 생활하니 당연히 서울에 대한 친근함은 있지만 삼달과 독수리 오형제처럼 망해서 돌아가도 언제든 자신을 품어줄 곳으로 여겨진 적은 없다. 오히려 서울 사람들은 망해서 서울 아닌 곳으로 가게 될까 무의식 중 두려워한다. 

 

‘인서울’ 대학에 못 가고 서울 안의 번듯한 회사에 들어가지 못하면 실패한 것처럼 여겨지는, 끄트머리일지언정 서울 안에 터전을 마련하면 나름 성공이라 간주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그러니 고향이란 단어에 공감하진 못하지만, 삼달의 고향에 살짝 부러움은 있다. 내가 망해서 돌아가도 품어줄 수 있는 공간, 그곳에서 한결 같은 사람들이라니. 고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조삼달처럼 고향이 마지막 보루이자 안식처일까? 아니면 이마저도 나처럼 정신적 고향이 없는 도시인들의 판타지를 투영해 만들어낸 로망일까. 아무려나 ‘웰컴투 삼달리’는 고향을 가지지 못한 도시인의 지친 마음을 사르르 달래준다. 

 

삼달리 독수리 오형제. 삼달이 용필과 헤어지고 난 뒤 8년간 연락을 끊었지만, 이들은 멀찍이나마 삼달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든든한 ‘내 편’이다. 사진=JTBC 제공

 

‘웰컴투 삼달리’의 모든 것에 수긍하는 것은 아니다. 자의 아닌 타의에 가깝게 헤어졌다지만 헤어지고 8년이란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 시간 동안 사람이 변해감에도 여전히 순정을 지키고 있는 조용필의 사랑은 그야말로 판타지 같다. 삼달과 용필의 관계를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던 부상도(신재원)의 순정, 20여 년 세월에도 떠나간 아내를 잊지 못하고 아내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 여기는 고미자를 미워하는 조상태(유오성)의 순정 등 이 드라마에 팽배한 ‘첫사랑 제일주의’도 버겁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개천 용과 함께 요즘 세상엔 소멸한 것으로 여겨지는 이 버거운 순정이 이 드라마의 인기 요인인 것도 같다. 소위 ‘급’이 맞는 상대를 찾아야 하고, 그 급에서 벗어난 만남은 욕심이거나 비양심으로 치부되는 각박한 세상이지 않나. 이런 세상에서 부모의 반대에 헤어질지언정 결코 서로를 잊을 수는 없는 안타까운 마음, 도파민 분비 촉발하는 막장 아닌 지고지순한 사랑을 말하는 드라마라니, 놀랍지 않은가. 

 

삼달과 용필 사이 가로막힌 벽은 용필의 아버지 조상태다. 평생 아내 부미자만을 바라봤던 상태는, 고미자가 아내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여 20년 넘게 외면하고 미워한다. 과연 용필과 삼달은 상태라는 크나큰 벽을 넘어설 수 있을까. 사진=JTBC 제공

 

‘웰컴투 삼달리’는 이제 4회분이 남았다. 인과응보의 논리에 따라 ‘빌런’ 방은주와 삼달의 전 남자친구 천충기(한은성)가 철저하게 몰락하고, 조삼달이 다시 개천 용으로 복귀하고 용필과 사랑의 결실을 맺고 내심 가고 싶었던 WMO(세계기상기구)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로 떠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여느 드라마의 후련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식의 해피엔딩을 맺든 ‘웰컴투 삼달리’는 이미 우리에게 위안을 주었다. 막장 드라마의 사이다 결말 대신, 당신의 상처는 괜찮냐고 물어봐주는 따스함을 안겨주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원하는 힐링이다.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이 해결되나 초조할 필요 없이, 그저 편안히 즐기면 된다. 아직 드라마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웰컴! 얼른 삼달리로 오시라.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해치고 무너뜨리는 데엔 큰 이유가 없을 때도 있다. 어시스턴트 방은주는 자신이 노력하기보다는 남이 가진 것이 부러워하는 데 더 큰 에너지를 쓴다. 굳이 해결사가 나서지 않더라도, 그런 사람의 말로는 명확해 보인다.

 

‘웰컴투 삼달리’는 서귀포 대정읍 뿔소라공원 전망대, 구좌읍 김녕 세기알해변 등 제주의 아름다운 스폿들을 담아내며 시각적 즐거움을 준다. 여기에 주인공의 이름이 조용필인 것답게, ‘단발머리’ ‘마도요’ ‘모나리자’ ‘창밖의 여자’ 등 가왕 조용필의 명곡과 리메이크곡을 곁들여 청각적 즐거움도 놓치지 않는다. 사진=JTBC 제공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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