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마음이 조금 서걱거리는 날엔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하 ‘세바시’)’이라는 강연 프로그램을 찾아본다.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딱 나를 위한 휴식 시간에 챙겨보면 그만인 힐링 되는 콘텐츠가 많아서다. 강연자들에게 15분의 강의 시간을 주고, 하나의 임팩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강연인 이 프로그램에는 유명한 학자, 연예인, 기업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들이 출연해 꽤 다양한 주제의 콘텐츠를 강연으로 보는 재미가 있다.
유튜브의 무서운 알고리즘이 인도한 이날의 ‘세바시’ 강연자는 가수 양희은이었다. 반백 년 이상을 가수로 방송인으로 살아온 양희은이 새로운 에세이 책 ‘그럴 수 있어’를 출간한 기념으로 나와 책에 담긴 그녀의 인생관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가수 양희은의 ‘세바시’는 이날 특별히 담당 피디와의 인터뷰 형식으로 이어졌는데, 그녀 특유의 거침 없으면서도 단단한 말들이 잔잔하게 이어져서 흥미롭게 보게 됐다. 관계와 소통에 관련한 이야기가 에세이 형식으로 담긴 신간이기에 담당 피디가 질문으로 “오랜 인연들과 좋은 관계를 오래가게 만드는 비결이 뭔가?”라는 질문을 던지자, 그녀는 특유의 담담하고도 또박또박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어 나갔다.
“저는 친한 사람 자주 안 만나요. 그쪽에서 (연락이) 오거나 또는 진짜 내 마음에서 걔 생각이 굉장히 난다고 할 때 그럴 때 연락해요. 친하다고 막 만나고, 맨날 만나서 어쩌고저쩌고하는 게 없으니까 오히려 그게 오래갈 수 있는 비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정말 좋은 인연과 관계를 오래가게 하는 게 자주 만나지 않는 것이라니. 양희은식의 남다름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과연 이게 뭘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마치 간파하듯 그녀가 질문에 대한 말을 다시 이어 나갔다.
“난 어떤 면에선 별과 별 사이처럼 바로 붙어 있는 별도 몇억 광년의 시간 차이가 나듯,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그렇게 긴밀하고 밀착된 거보다는 조금 바람이 통하는 관계? 선선한 바람이 지나가는 사이. 그런 게 있으면 좀 더 오래갈 수 있을 거 같아요. 우리 사이엔 이만한 거리가 있다고 인정하는 관계의 거리를 유지할 때, 좋은 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친한 사람과는 자주 보지 않는다’는 가수 양희은의 극한의 쿨함에 물음표 같은 의문을 가졌는데, 그 뒤로 이어지는 그녀의 말을 더 듣고 있노라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러고 보니 어떠한 대상을 너무 가까이에 두고 있으면 되레 잘 보이지 않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어야 그 대상의 형태가 제대로 포착돼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 상대가 제대로 보여야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고, 그 이해가 밑바탕이 되어야 상대를 오롯이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으니 말이다.
상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선선한 바람이 통하는 거리를 두는 사이. 가수 양희은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런 거리를 잘 유지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어” 라는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고 지지한다는 추임새를 진심으로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이런 양희은식의 선선한 인간관계의 거리를 수긍하게 되니, 한때 마음을 진심으로 주고받았다고 생각했는데, 홀연히 연락을 끊은 친구의 마음이 다는 아니어도 조금은 이해가 갔다. 저 사느라 그랬겠지. 상처 주고 싶어서 주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자기 속도 힘들고 궁지에 몰리니 그랬겠지. 백 퍼센트 상대의 입장을 이해할 수는 없어도 그렇게 상대의 입장에서 그의 처지나 입장에 대해 생각해 보면 “그럴 수 있어”라는 말이 주문처럼 흘러나온다.
혹시 당신도 나처럼 한때 가까웠으나 무척 서운했던 관계가 있다면 이렇게 상대에게 거리를 두고 상대를 대상화해 보길 바란다. 그 대상과 선선한 바람이 통하는 거리를 두고 앞에 마주하게 되면 아마 가수 양희은의 책 ‘그럴 수 있어”의 어느 챕터 속 마지막 문장 같은 말이 주문처럼 나올지 모른다. “괜찮아. 그러라 그래. 그럴 수 있어”
필자 김수연은?
영화전문지, 패션지, 라이프스타일지 등, 다양한 매거진에서 취재하고 인터뷰하며 글밥 먹고 살았다. 지금은 친환경 코스메틱&세제 브랜드 ‘베베스킨’ ‘뷰가닉’ ‘베베스킨 라이프’의 홍보 마케팅을 하며 생전 생각도 못했던 ‘에코 클린 라이프’ 마케팅을 하며 산다.
김수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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