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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한국을 사랑한 이방인들의 '기쁜 마음의 궁전' 딜쿠샤

사업가·언론인 앨버트 테일러 부부의 집…일제 추방 후 방치됐다 서울시 문화재 지정돼 복원

2023.09.19(Tue) 15:10:41

[비즈한국] 딜쿠샤(Dilkusha).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란 뜻이란다. 일제강점기 서울에 살던 미국인 테일러 부부가 자신들의 서양식 집에 붙인 이름이다. 이들은 1919년 3·1운동 소식을 전 세계에 알렸다. 해방 이후 수십 년 동안 서민들의 집으로 이용된 딜쿠샤는 2021년 3·1절을 맞아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됐다.

 

딜쿠샤(Dilkusha)는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란 뜻으로 일제강점기 서울에 살던 미국인 테일러 부부가 자신들의 서양식 집에 붙인 이름이다. 사진=구완회 제공

 

#3·1운동을 세계에 알린 인물들​

 

딜쿠샤의 주인 테일러 부부는 1917년부터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미국 태생의 남편 앨버트는 광산기술자 아버지를 따라 일찍부터 서울에 살았고, 영국 출신 아내 메리는 연극배우로 세계 순회 공연을 하던 중 일본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한 후 서울로 오게 되었다. 

 

처음엔 그냥 외국이었던 식민지 조선이 특별해진 것은 3·1운동을 통해서다. 1919년 초 AP통신이 고종 황제의 죽음에 관해 취재하도록 앨버트를 특파원으로 임명했고, 그는 사업가이자 특파원으로 활약하며 3·1운동 소식을 전 세계에 알렸다. 당시 메리는 출산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일제의 눈을 피해 독립선언서를 갓 태어난 아이 침대에 숨겨 놓았다가 해외로 보냈다고 한다. 일제의 제암리 학살 만행을 세계에 알린 것도 앨버트였다. 

 

미국 태생의 남편 앨버트는 사업가이자 AP통신 특파원으로 3·1운동 소식을 전 세계에 알렸다. 연극배우 출신인 아내 메리는 일제의 눈을 피해 독립선언서를 갓 태어난 아들 침대에 숨겨 놓았다가 해외로 보냈다고 한다. 사진=구완회 제공

 

테일러 부부가 독립문 인근의 커다란 은행나무 옆에 서양식 살림집을 지은 건 1923년이었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의 명장 권율 장군의 집터이기도 했다. 여기다 딜쿠샤란 이름을 붙인 건 아내의 뜻이었다고 한다. 해외 공연 중 인도에서 본 딜쿠샤 궁전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이후 20년 가까이 이곳에 살던 테일러 부부는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자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됐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제2의 고향’ 한국과 딜쿠샤를 그리워했다. 1948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앨버트는 평소 바람대로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역에 묻혔다.

 

테일러 부부가 떠난 딜쿠샤는 한동안 어느 자유당 국회의원의 소유가 되었다가, 그가 부정축재자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국고에 환수되었다. 하지만 방치되다시피 한 탓에 수십 년 동안 집 없는 서민들이 이곳에 모여 살기도 했다. 그러다 서울특별시가 문화재로 지정하고, 이곳에 살던 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시킨 뒤 옛 모습 그대로 복원했다. 

 

딜쿠샤 옆에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서 있는데, 이곳은 권율 장군의 집터이기도 하다. 사진=구완회 제공

 

#대한매일신보 건물로 잘못 알려졌다 정초석 발견하고 바로잡아

 

약 3년간의 복원 기간을 거쳐 문을 연 딜쿠샤는 그 시절 모습 그대로다. 여기에는 테일러 부부의 아들 브루스가 제공한 옛날 사진이 큰 역할을 했다. 프랑스 방식으로 벽돌을 쌓았다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보아야 할 것이 있다. 이곳이 딜쿠샤임을 알리는 정초석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DILKUSHA 1923’이라는 글씨와 함께 성경 구절이 새겨져 있다. 1990년대에는 딜쿠샤가 대한매일신보 건물로 잘못 알려졌는데, 이를 바로잡는 데 정초석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단다.

 

‘DILKUSHA 1923’이 새겨진 딜쿠샤의 정초석. 대한매일신보 건물로 잘못 알려진 것을 바로잡는 데 정초석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진=구완회 제공

 

실내 공간은 당시 모습을 복원한 공간과 딜쿠샤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관으로 나누어 꾸몄다. 1, 2층 거실은 꼼꼼한 고증을 거쳐 복원했고, 나머지 방들은 테일러 부부의 한국 생활과 언론 활동을 알려주는 전시실로 구성했다.

 

딜쿠샤의 옛 모습이 담긴 사진들. 사진=구완회 제공

 

1층 거실은 테일러 부부가 지인을 초대해 파티를 여는 공간이었다. 벽면은 장마철을 대비해 벽지 대신 페인트로 칠했고, 뒤쪽에는 벽난로를 두었다. 계단 옆으로는 커다란 괘종시계가 거실 전체를 바라보고 있다. 2층 거실은 테일러 부부가 여가 시간의 대부분을 보낸 곳으로 딜쿠샤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었다. 벽난로 위에는 앨버트가 수집한 고려청자들이 놓여 있고, 한쪽에는 열 폭짜리 조선 병풍도 보인다. 당시 사진을 바탕으로 세계 각지에서 앤티크 가구를 직접 구입해 옛 모습 그대로 복원했다.

 

딜쿠샤가 복원된 후 테일러 부부의 손녀 제니퍼가 방문해 감회를 밝혔다. 그녀는 2016년 아버지 브루스가 사망하자 그의 유골함을 들고 조부모가 묻혀 있는 양화진 외국인묘지를 찾기도 했다. 테일러 일가와 한국의 인연은 3대째 이어지는 셈이다. 

 

1층(위)과 2층 거실. 1층 거실은 테일러 부부가 지인을 초대해 파티를 열던 공간, 2층 거실은 테일러 부부가 여가 시간의 대부분을 보낸 딜쿠샤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었다. 사진=구완회 제공

 

<여행정보>


딜쿠샤 

△위치: 서울시 종로구 사직로2길 17

△문의: 070-4126-8853

△관람 시간: 09:00~18:00, 월요일·1월 1일 휴관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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