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이렇게 다 죽인다고?” 어제(7월 10일) ‘마당이 있는 집’ 7화와 이어진 8화 예고편을 보고 난 시청자들은 그야말로 ‘입틀막’ 하며 이렇게 외치지 않았을까 싶다. 그동안 악취는 나지만 그 실체를 파악하기까지를 둔중한 속도로 보여주던 이 드라마가 이렇게 시청자의 뒤통수를 갈길 수 있나 놀라울 듯하다. 마치 후반부 폭발하는 이때를 위해 지금껏 숨죽여 예열한 듯한 모양새다. 7월 11일인 오늘, 마지막 방영을 앞둔 ‘마당이 있는 집’을 초반부에 포기했다면, 이제라도 다시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예전에 인기를 끌었던 미드 ‘위기의 주부들’의 핵심 메시지는 “누구나 더러운 빨랫감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다”였다. ENA채널에서 방영하는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 집에나 마당에 묻힌 시체 한 구쯤은 있다”로 빗대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시체가 누군가 죽인 것이든, 나 스스로를 꼬장꼬장하게 말라 비틀어 죽여가는 것이든 간에. 어쨌거나 이 드라마에는 사람이 둘이나 죽었고, 그들의 죽음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살던 두 여자를 만나게 하는 매개가 된다.
문주란(김태희)은 드넓은 마당을 지닌 타운하우스 ‘코넬리아’에서 소아과병원 원장인 남편 박재호(김성오)와 중학생 아들 승재(차성제)와 함께 산다. 중년의 나이에도 여전한 아름다움에, 자상하게 자신을 챙기는 남편과 공부 잘하고 모범적으로 보이는 아들로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완벽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주란은 내내 불안한 모습이다. 결혼 전 자신의 자취방에서 끔찍하게 살해당한 언니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인 듯 싶지만, 실은 얼마 전부터 나는 지독한 악취 때문이다. 분명 마당에서 뭔가 악취가 나는데, 남편은 자꾸 천연 비료의 냄새일 거라며 별 냄새가 나지 않는 듯 행동한다.
추상은(임지연)의 외적 상황은 문주란과 극과 극처럼 보인다. 낡디 낡은 복도식 아파트에 사는 그는 허구한 날 남편에게 지독한 폭행을 당한다. 심지어 임신 5개월째인데도 불구하고. 누구도 상은을 도와줄 수 없으니 상은은 스스로를 보살펴야 한다. 이혼하고자 착실하게 폭행의 증거를 모으고 있는 와중, 남편은 뜬금없이 큰돈이 생길 거라며 상은과 함께 부티가 나는 어느 타운하우스를 찾아간다. 거기서 고급 스카프를 머리끈으로 쓰는 우아한 여자 주란을 본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 죽은 사람은 둘이다. 한 명은 추상은의 남편이자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주란의 남편 박재호와 모종의 관계가 있는 김윤범(최재림). 윤범은 큰돈이 생길 것이라 희희낙락하며 주란의 남편 박재호와 낚시터 저수지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지만, 그 약속의 밤에 저수지에 빠져 죽는다. 또 한 명의 사망자는 가출한 여중생 이수민(윤가이). 나중에 밝혀지지만 주란의 마당에서 악취를 풍겼던 실체가 바로 이수민의 시체였다. 김윤범과 이수민, 도무지 접점이 없어 보이는 이 둘의 죽음은 주란과 상은의 접점과 묘한 연대를 가능케 한다.
‘마당이 있는 집’은 주란과 상은처럼 함께 있는 그림이 상상되지 않았던 두 배우의 조합 때문에 초반부터 눈길을 끌었던 드라마이기도 하다. ‘태쁘’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시대의 미녀 김태희와 ‘더 글로리’의 “멋지다, 연진아!”로 전국민에게 악녀로 자리잡은 임지연의 만남이 아니던가. 그 기대를 초반부터 멋지게 충족시킨 건 임지연이다.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듣고도 걸귀 들린 듯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는 상은의 ‘먹방 짤’로 화제를 모은 임지연의 연기는 시청자의 두 눈을 TV로 집중시키는 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 얼마나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던지 짜장면+탕수육+군만두+콜라 조합을 일컬어 ‘남편사망정식’이라 명명될 정도. 인생 다 포기한 듯 초점이 없는 눈빛이다가도, 남편의 장례식장을 찾은 주란에게 “당신 남편이 내 남편을 죽였어”라고 말할 땐 온 하관의 근육을 총동원한 입 모양과 희번덕거리는 눈빛으로 오싹함을 자아낸다.
그에 반해 김태희는 언니의 죽음으로 인한 트라우마와 친절하지만 정신적으로 가스라이팅을 하는 남편 덕에 시종일관 자신을 믿지 못하고 답답하게 구는 인물인 주란을 맡아, 덩달아 시청자에게 갑갑함을 안겼더랬다. 대사가 그리 많지 않은 드라마 중에서도 가장 절제된 대사를 부여 받은 주란은 인물의 심리를 오롯이 표정과 눈빛, 몸짓으로만 전달해야 하는 어려운 캐릭터. 때문에 그간 연기력으로 큰 칭찬을 받지 못했던 김태희에겐 다소 역부족이 아닌가 하는 시선도 분명 존재했다.
초반에는 누군가의 표현처럼 ‘겁먹은 송아지 눈의 김태희’만 보였는데,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점차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내더니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되는 6, 7화에 이르러서는 응축된 감정을 폭발적으로 끌어내고 서늘한 눈빛과 목소리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임지연에게 쏠렸던 시선을 끌어오는 데 성공한다.
서스펜스 드라마지만 다양한 엄마들의 다양한 모성(?)과 누가누가 더 나쁜 남편인지 비교해 보는 맛도 있다. 아이를 임신한 상은과 사춘기 아들을 둔 주란은 물론, 상은을 일평생 오빠의 뒷바라지를 시키는 존재로 써먹으면서도 상은의 비밀을 안고 있는 상은 엄마(차미경), 딸의 죽음 앞에서도 남은 딸을 자랑하며 앞날을 도모하는 기괴한 모습을 보이는 주란 엄마(백현주) 등을 보며 ‘나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상하고 친절하지만 나를 옥죄는 남편과 연민의 구석이 있지만 나를 피폐하게 만드는 남편 중 누가 더 나쁜지 비교해 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마당이 있는 집’은 한예종 영상원을 졸업하고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하는 원작자 김진영의 소설이 이미 영상화하기에 적합했던 데다,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너는 나의 봄’ ‘스물다섯 스물하나’ 등을 연출한 정지현 PD의 섬세한 연출이 더해져 시종일관 금방이라도 뭔가 일어날 듯한 긴장감을 잘 이끌어왔다. 이제 남은 마지막 화에서 그 긴장감이 얼마나 폭발할지, 그리고 그 감정이 잘 정리될 수 있을지 기대하는 중이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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