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2월 서울시가 공공장소에서 음주를 금지하는 조례를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전문가와 시민의 의견 수렴을 통해 특정 장소나 특정 시간대 음주 행위를 일부 제한하는 방식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겠다고만 밝혔다. 이는 한강공원 등 야외 공공장소에서 음주를 선호하는 시민들을 의식한 조처로 보이지만 WHO에서 권고하는 기준 등 국제 표준에 뒤떨어진 늦장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뤄진 금주 정책, 엇갈린 여론
한강공원 음주 금지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다. 2016년 6월 서울시는 과도한 음주로 인한 여러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해 ‘음주 폐해 예방 추진계획’을 수립하려고 했다. 실효성은 없었다. 당시 상위법인 국민건강증진법에 공공장소에서 음주를 하거나 주류를 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할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2021년 6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금주 구역에서 술을 마시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지자체가 음주를 단속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법 개정 두 달 전인 2021년 4월에는 의대생 고 손정민 씨가 한강공원에서 술을 마신 상태에서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한강공원에서 음주를 금지해야 한다는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22년 3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서울시는 다시 관련 정책을 추진했다. 당시 서울시는 “입법예고를 거쳐 시의회 의결 등을 통해 7월 중 조례가 공포될 예정이며 6개월 이후 시행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계획은 진행되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 2월 서울시가 한강공원과 송파나루 공원 등을 금주 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건전한 음주문화 조성에 관한 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을 입법예고했다. 조례가 통과되면 도시공원, 하천이나 강 인근 구역, 지자체 청사, 공공도서관, 어린이집, 유치원 등 공공장소를 금주 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고 금주 규정을 어기면 과태료 10만 원을 부과하는 내용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 담당자가 모두 바뀐 상황이기 때문에 조례 개정이 미뤄진 것에 대해 자세한 설명은 어렵다고 했다. 구체적인 금주 구역에 대해서는 “특정 지역 지정 계획은 현재로서는 없다”며 “지금은 조례를 개정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규제 지역은 나오지 않았지만 규제 대상이 한강공원이 될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오면서 시민들 사이에 찬반 논쟁이 일어났다. 자주 한강공원을 이용하는 고 아무개 씨(29)는 “한강에서 술을 마시지 못하면 이용할 메리트가 없다”고 말했다. 이따금 한강공원을 찾는 신 아무개 씨(28)는 “어떤 수치나 근거로 추진하는 건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규제 반대 목소리가 큰 여론조사도 나왔다. 지난 2월 20만 명의 회원이 활동하는 정치 커뮤니티 플랫폼 옥소폴리틱스가 ‘한강에서 술 마시면 과태료,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주제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503명 가운데 64%가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한강공원에서의 음주를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도 거세다. 2021년 고 손정민 씨 사건이 발생한 다음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76.3%가 공원 음주 제한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공공장소에서 타인의 음주로 피해를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98.4%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 여론조사에서는 구체적인 반대 이유도 나와 있다. ‘술에 취한 사람의 토사물로 불쾌감을 느낀 경험’이 91.0%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 △위협감(84.9%) △노숙 광경에 따른 불쾌감(84.7%) △악취(82.7%) △소음(82.2%) 등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문제를 목격했던 정동진 씨(34)는 “야외음주가 허용되는 국가가 별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가 좀 특이한 편”이라고 지적했다.
#“공공장소 금주 정책 수립, 뒤늦은 감 있다”
정 씨의 말처럼 우리나라는 공공장소 음주를 관대하게 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공공장소 금주에 대한 권고 기준이 있다. 2018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알코올 규제 정책에 대한 10가지 평가 기준을 제시했다. 이 가운데 5번째 항목이 ‘알코올 이용가능성 규제의 경우, 연령제한, 주류 구매 가능 시간·요일 제한, 주류 판매점 밀도 제한, 공공장소 음주 제한 정책의 이행 여부’이다.
이 항목을 준수하는 나라는 적지 않다. WHO가 발간한 ‘2018년 알코올·건강 글로벌 현황’에 따르면 세계 167개국 가운데 50개국이 공원 등 공공장소에서 음주를 규제하고 있다.
특히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와 같은 규제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각 주의 법에 따라 특정 장소에서 음주를 제한하고 있다. 35개 주가 실질적으로 공공장소에서 음주를 금지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영국은 ‘공공장소 지정법’을 시행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경찰이 판단했을 때 음주로 인해 주변에 피해를 발생시키거나 반사회적 행동을 할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소지한 주류를 압수할 수 있다. 북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일부 지역은 공공장소에서 음주를 규제하고 있다. 캐나다는 공공장소에서 알코올이 든 용기를 소지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호주는 대부분의 주에서 공원에서 취한 모습을 보이면 경찰이 격리 조치를 할 수 있다. 싱가포르는 주류규제법에 따라 공공장소 음주 금지 시간을 두고 있다.
허억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교수는 “(서울시의 규제 움직임은) 뒤늦은 감이 있다. 서울시는 국제적인 도시로 급성장했다. 만인이 이용하는 공공장소에서 (음주를 허용하면) 여러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볼 수 있지만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서 그 정도는 감수하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조례 개정) 절차를 밟고 있다. 다음 단계가 의회 상정”이라며 “개정된 법은 몇 가지 상징적인 문구가 개정된 상태다. 보건복지부에서 따로 내려주는 가이드라인이 있는데 이것이 내려오는 데 시간이 걸린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강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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