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진의 계정공유] 운동과 담 쌓은 사람도 흥분시키는 '피지컬: 100'

[비즈한국] 처음엔 ‘피지컬: 100’에 전혀 관심이 가지 않았다. 운동을 하며 몸을 가꾸고 보디 프로필을 찍는 것이 대세인 이 시대에, 나는 완벽히 역행하는 인간이니까. 운동으로 잘 가꿔진 몸을 부러워하기엔 조그만큼의 힘듦도 견딜 수 없고, 맛있는 음식과 술 한잔을 마다할 생각이 1도 없다.

‘피지컬: 100’이란 제목을 듣곤, 어차피 크고 멋지고 튼튼한 몸들이 나와 자기들끼리 누가 더 잘났네 어쩌네 할 모습이 궁금하지 않았다. 그러다 흥미가 생긴 건 기계체조 선수 양학선이 출연했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 아무리 다부지다 한들, 양학선은 160cm의 키에 53kg인 왜소한 체구다. 여느 스포츠나 서바이벌 예능과는 좀 다른 모습이겠구나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피지컬: 100’은 성별도, 나이도, 인종도, 체급도, 잘하는 운동 종목도 다른, 그러나 자신의 몸에 대한 자부심만은 같은 100명을 모아 놓고 ‘최고의 몸’을 찾는다. 그러다 보니 면면도 화려하다. 처음 등장한 기계체조 선수 양학선을 시작으로 스켈레톤 선수 윤성빈, 레슬링 선수 남경진과 장은실, 럭비 선수 장성민, 루지 선수 박진용과 조정명 등 국가대표 출신들이 수두룩하게 등장하고, 운동 종목도 씨름, 펜싱, 배구, 수영, 크로스핏, 복싱, 필라테스, 유도, 야구, 격투기, 주짓수, 폴 스포츠 등 다양하다.

특수부대 출신들과 보디빌더 등 몸을 쓰는 사람들이 대거 출연하고, 수줍게 교복을 입고 나온 10대도 알고 보니 태권도 국가대표다. 한눈에 봐도 야리야리하게 생긴 이들도 있지만, 그들이 어떤 몸을 가지고 무엇에 강점을 지녔을지 함부로 재단할 수 없게 된다.

‘피지컬: 100’은 이 다채로운 100명의 출연진들이 다섯 번의 퀘스트를 거치며 최후의 1인이 남 과정을 보여준다. 재미난 건 퀘스트에 따라 시청자가 예상하는 승자의 면모가 상당히 달라지거나, 박빙의 승부를 보여준다는 것. 이를테면 사전 퀘스트로 나온 구조물에 매달려 오래 매달리기. 대다수가 ‘체조 레전드’라 불리는 양학선의 승리를 점쳤지만 산악구조대원 김민철과 UDT 교관 출신 김경백이 1, 2위를 차지했다. 첫 번째 퀘스트인 일대일 데스매치는 한층 더 흥미진진.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 쎈 남자’라고 자처하는 팔씨름 최강자 하제용을 날씬한 체육교육과 학생 임정윤이 이기는 장면이라든가 짧게 등장했지만 주짓수 선수 채완기를 여성 스턴트 배우 김다영이 이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짜릿한 전율이 느껴진다. 팀 대결이었던 두 번째 퀘스트에서 여성 3명과 작은 체구의 남성 2명으로 구성돼 최약체로 꼽히던 장은실 팀이 남경진 팀을 이기며 ‘언더독의 반란’을 일으킨 것도 ‘피지컬: 100’의 하이라이트 장면 중 하나.

승부와 상관없이 재미있는 그림들도 많이 등장했다. 일대일 데스매치에서 격투기 선수 신동국은 자신이 상대를 지명할 수 있음에도 가벼운 상대 대신 레전드 격투기 선수 추성훈을 지목하며 종합격투기 룰로 겨루고 싶다고 제안, 그야말로 멋진 대결을 보는 이들에게 선사했다. 안무가 전영은 양학선과의 데스매치에서 ‘부산행’ ‘킹덤’ 등으로 독창적인 ‘K-좀비’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무시무시한 움직임을 보여주며 대결에서 졌음에도 눈길을 끌었다. 천하의 추성훈이 흔들다리가 무서워서 기어가는 모습(그러나 그 판단은 현명했다)도 ‘피지컬: 100’ 아니면 보기 힘든 장면. 

일대일 대결과 팀 대결을 거치며 개개인의 능력과 캐릭터가 잘 드러나는데, 그 과정에서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 부상하기도 하고 이미 잘 알고 있었던 인물에 새삼 반하게도 된다. 최약체 팀을 이끌며 리더십이 빛났던 레슬러 장은실, 패자부활전에서 정신력으로 부활했던 운동 유튜버 심으뜸 등 남성에 비해 근력의 한계가 분명해 보이는 여성 출연자들의 남다른 강함에 반했고, 네 번째 퀘스트에서 가위바위보를 이겨 거대한 바위를 들고 버티는 ‘아틀라스의 형벌’을 피할 수 있었음에도 팀 내 강력한 우승 후보 윤성빈을 위해 그를 선택한 스켈레톤 국가대표 코치 김식도 멋졌다. 

그리고 추성훈. 등장하는 순간부터 모두의 감탄과 박수를 자아낸 추성훈은 1975년생으로, 우람한 근육질에다 젊음까지 갖춘 많은 출연자에 비해 꽤 불리한 고령 출연자다. 그럼에도 연륜 있는 모습과 부드러운 리더십, 소탈한 모습 등 여러 가지 면모를 보이며 그가 왜 여전히 ‘섹시야마’로 불리는지 유감없이 보여줬다(아저씨 무시하지 마!).  

마지막 조각은 매 퀘스트마다 다른 이들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던지는 출연자들. 모두 몸에 있어 한 가락 하는 이들이라 초반에는 온몸의 근육 명칭과 운동 기술을 세세히 짚어가며 다른 이들의 대결을 분석하는데, 그러다가 방송 회차가 늘어갈수록 다른 출연자들에게 목청껏 격려와 응원을 보내는 모습으로 변해간다. 주저앉고 싶다가도 다른 출연자들의 열띤 응원에 한 걸음 더 내딛고 한 호흡 더 버티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고 감동적이다.

퀘스트마다 선보이는 경기장 세트 등 실력 있는 제작진의 손길도 ‘피지컬: 100’의 퀄리티를 높인다. 웬만한 영화 못지않은 세트 디자인은 BTS 월드 콘서트와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여한 유재헌 미술감독이 참여했고, ‘오징어 게임’ 사운드트랙 제작에 참여한 김성수 음악감독, ‘기생충’의 최세연 의상감독 등이 참여해 이 박진감 넘치는 서바이벌 예능에 퀄리티를 한 끗 높였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예능판 오징어 게임’이란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1월 24일에 1, 2화가 공개된 것을 시작으로 2월 15일 현재 마지막 회차인 9화만 남겨둔 ‘피지컬: 100’. ‘어차피 우승은 윤성빈’이라 할 만큼 압도적인 피지컬을 자랑하는 윤성빈이 최후의 1인이 될지 아니면 예상 외의 다른 인물이 우승을 차지할지 궁금증이 치솟는다. 뿐만 아니라 우수한 모습을 보이는 비인기 종목 선수들의 활약에 나도 모르게 그 스포츠에 관심이 가고, 운동을 해서 몸을 단련해야 할 것 같은 의지도 생긴다. 어떻게, 내일이라도 헬스장에 달려가야 하나.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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