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올해부터 태양광발전에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가 적용된다. 환경부는 태양광 패널의 2023년 재활용의무량 총량을 159톤으로 확정했다. 그동안 신재생에너지 확대 기조에 따라 폐패널 발생량이 급증했지만, 재활용 방안은 없었다. 그런데 제도가 도입되자마자 잡음이 끊이질 않는다. 분담금을 관리하는 공제조합 인가 과정에서 환경부와 업계가 갈등을 빚고 있는 것. 또 사업은 이미 1월에 시행됐지만 아직 구체적인 관리 방안이 마련되지 않았다.
#2000톤 가까이 발생한 폐패널 행방 묘연, 인체와 환경에 악영향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 따르면 그동안 국내에서 태양광 폐패널 처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처리방안이 없다 보니 지역고물상에서 회수하거나 건설폐기물과 함께 매립한 사례도 있다. 가정용 패널 등은 어떤 방식으로 처리됐는지 파악조차 하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들은 2022년까지 발생한 태양광 폐패널은 행방을 알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재활용 기준 자체가 없고 분리수거 품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발생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탓도 있다. 태양광 패널의 사용연한은 통상 20년 정도로 긴 편이다. 업계 관계자는 “가전제품을 몇 년 사용 후 꼭 폐기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는 것처럼 태양광 패널도 비슷하다. 누군가 버리면 폐기하는 건데, 별도 규정이 없으니 소각됐는지 매립됐는지 잘 모르는 거다”고 설명했다.
폐패널 재활용업체가 있지만, 기존에는 5톤 이상의 사업장폐기물만 관리 대상이었다. 환경부에 따르면 태양광 폐패널 발생량은 2019년 246톤, 2020년 767톤, 2021년 735톤이었다. 그러나 가정에서 배출되거나 소량으로 배출된 폐패널은 규모를 알 수 없다. 태양광발전으로 인해 오히려 환경이 오염된다는 비판이 나왔던 이유다.
외국에서는 태양광 폐패널 배출 문제가 이미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에 따르면 EU는 2014년 태양광 패널을 폐전기전자제품 처리지침(WEEE) 규제 대상에 포함했다. 특정 단체를 중심으로 회수와 재활용을 시행하는 방식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015년 태양광발전 모듈 수집 및 리사이클법을 도입했다. 일본은 2014년부터 재생에너지 장치 사용 후 처리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조사를 진행했다. 설계와 해체, 운송, 처리, 홍보까지 규정했다.
태양광 폐패널의 재활용 방식을 규정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오염 가능성이다. EU는 태양광 패널을 제대로 폐기하지 않았을 때 납과 카드뮴 등 유해금속으로 인해 인체와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한다. 또 재활용 단계와 방식에 따라서 환경오염도가 달라진다고 본다.
#1월부터 시행이지만 구체적인 건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EPR 도입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EPR은 생산자에게 재활용 의무를 부과하는 제도다. 제품의 생산, 판매, 소비, 폐기, 재활용까지 생산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 정부는 2018년부터 태양광발전 EPR 도입을 논의해왔다. 2023년부터 태양광 폐패널이 급증할 거란 예측 때문이다. 당초 2021년부터 도입하고자 했지만, 재활용부담금을 부과하는 제도가 재생에너지 사업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우려로 시기가 늦어졌다. 결국 2019년 12월 전기·전자제품 및 자동차의 자원순환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을 통해 2023년부터 태양광발전에 EPR을 적용하기로 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예상되는 태양광 폐패널 규모는 2023년 988톤, 2025년 1223톤, 2027년 2645톤이다. 2033년에는 2만 8153톤에 육박할 예정이다. 덩달아 시장 규모도 커진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은 태양광 폐패널의 세계 재활용시장 규모가 2022년 2억 500만 달러(2600억 원)에서 2026년 4억 7800만 달러(6000억 원)로 증가해 연평균 성장률이 20.2%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시장 규모 역시 2022년 151억 원 수준에서 2026년 176억 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2030년 이후에는 성장성이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1월 5일 ‘태양광 폐패널 관리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기본골자는 △자원순환형 패널 생산 △해체 안전관리 강화 △수거·재활용 체계 개선 △관리·서비스 기반 강화 등이다. 폐패널 재활용·재사용률을 3년 내로 EU 수준인 8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게 주목표다.
정부는 태양광 패널 생산과정에서 재활용이 쉬운 재질과 구조로 만들고, 해체 단계에서는 표준시방서를 개발할 예정이다. 기존에 잘 수거되지 않던 소규모 폐패널은 지역별로 수거반을 운영한다. 재활용 업체 역시 기존 2개에서 7개로 확대하고, 시도별 집하시설은 2025년까지 약 200개 설치할 계획이다. 재사용 기준도 명확히 제시할 방침이다.
전기·전자제품 및 자동차의 자원순환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르면 태양광 패널은 해체·선별·파쇄 등의 중간처리과정을 거쳐 재사용 가능한 부품을 재사용하거나 소재별로 분리해 재활용해야 한다. 이때 중금속에 해당하는 크롬, 6가크롬, 구리, 카드뮴, 납, 비소, 수은은 유해물질 기준 미만으로 관리해야 한다. 또 재활용이나 재사용되는 비율이 전체 중량의 80% 이상이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문제는 아직 재활용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환경부는 이순환거버넌스(옛 한국전자제품자원순환공제조합)를 재활용사업공제조합으로 인가하고 2023년 재활용의무량을 확정했는데, 이후 정해진 사항은 찾아보기 어렵다.
재활용의무 미이행 부과금도 올해 2월 정해졌다. 태양광 패널의 재활용 단위 비용은 kg당 727원, 회수비용은 kg당 94원인데, 여기에 매년 산정되는 재활용비용산정지수를 곱해 재활용부과금이 정해진다. 이순환거버넌스 관계자는 “폐패널이 발생하면 회수 후 가입된 재활용 업체로 인계돼 법률에 따라 재활용하는 구조다. 자세한 회수 체계는 현재 구축 중이다. 재활용에 들어가는 비용은 총회 후 결정될 예정이다. 이달 중으로 확정해 고시 예정이다. 3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시스템이 적용될 예정”이라고 답했다.
태양광발전 EPR이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제대로 적용된다고 보긴 어려운 상황이다. 아직은 생산도 폐기도 새로운 기준과 절차에 따라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 관계자는 “재활용 방법은 시행규칙에 규정돼 있다. 다만 예정일 뿐, 아직 시작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인 방식은 시행 후 봐야 할 것 같다. 올해 실적은 내년 4월에 제출해 그 실적을 6월까지 검토하는 형태라 실적 검증은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부담금은 그 전에 정해질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환경부와 업계 갈등 계속, 국민감사 청구까지
업계와의 갈등도 걸림돌이다. 환경부와 한국태양광산업협회는 EPR 적용 논의 시점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한국태양광산업협회는 2019년 환경부와 산업부, 협회가 3자 업무협약(MOU)을 통해 태양광재활용제도 구축을 함께하기로 했으나 환경부가 일방적으로 약속을 위반했다고 주장한다. 협회를 중심으로 태양광 재활용 사업을 준비하고 제도 마련을 위한 용역 등을 진행하기로 했지만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환경부가 한국태양광산업협회가 아닌 이순환거버넌스를 공제조합으로 인가한 것을 두고도 부당 인가 의혹을 제기했다. 한국태양광산업협회는 최근 이와 관련해 국민감사청구까지 진행하겠다고 밝혀, 양쪽의 공방은 더 치열해질 예정이다. 이 때문에 공제조합을 중심으로 하는 태양광 패널 재활용 과정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23년 재활용의무량 총량이 적다는 지적도 있다. 환경부는 올해 태양광 패널 재활용 의무량을 159톤으로 확정했는데, 2023년에만 2만 1200톤 규모를 안정적으로 재활용할 수 있다고 했던 기존 계획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이에 대해 정재학 영남대 화학공학부 교수는 “1년에 159톤이면 패널 6000장 수준으로 많은 양이 아니다. 첫 시행이라 연착륙하려는 취지라고 해석할 수는 있다. 사실 태양전지는 20년 이상을 사용해도 90% 이상 재사용할 수 있어 생산자에게는 굉장히 유리하다. 폐패널을 분해하지 않고도 이 비율을 채울 수 있다. 요즘은 오히려 태양전지를 돈을 주고 회수하는 경우도 있다. 공제조합 인가도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기에 갈등이 생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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