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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악인들이 벌이는 아사리판 생존극, '몸값'

빼어난 단편의 성공적인 확장판…자극적이다 못해 파격적 소재로 이야기 '술술'

2022.11.15(Tue) 10:59:31

[비즈한국]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몸값’의 제작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우려였다. 넷플릭스 장편 영화 ‘콜’을 연출한 이충현 감독이 사비 500만 원을 들여 하루 만에 촬영했다는 2015년작 단편 영화 ‘몸 값’이 티빙 ‘몸값’의 원안이다. 이충현 감독의 ‘몸 값’은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이래 여러 영화제에 초청되고, 입소문을 타며 화제에 화제를 낳았다. 14분의 짧은 러닝타임이지만 강렬한 반전을 품고 장편 영화 못지않은 서사를 담아내며 빼어난 단편 영화의 묘미를 느끼게 해준 수작. 그런 작품은 섣불리 건드리기 쉽지 않은 법이다.

 

성매매에 나선 여고생인 줄 알았던 주영(전종서)은 알고 보니 장기매매단에서 보스 다음으로 오랜 시간을 함께한 ‘경매사’다. 입만 열면 거짓인 것 같은 주영의 이야기 중 무엇이 진실일까. 사진=티빙 제공

 

드라마로 제작된 ‘몸값’은 원안인 단편을 바탕으로 하되 새로운 장르로 세계관을 확장한다. 단편 ‘몸 값’은 모텔방 안에서 원조교제를 시도하는 중년 남자와 여고생의 대화가 주를 이루는데, 사실 여고생과 일당들이 원조교제를 미끼로 사람들을 끌어들여 장기를 매매한다는 반전으로 충격을 안긴다. 드라마 ‘몸값’의 1화는 단편의 내용을 고스란히 담는다. 단 그 이후는 오롯이 창작의 영역. 장기매매 흥정을 벌이던 모텔이 지진으로 무너지면서 그 안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사람들의 사투를 보여주는 아포칼립스물로 변화하는 것이 흥미진진한 지점이다.

 

성매매를 하러 가평의 외딴 곳에 위치한 모텔로 온 형수(진선규). 드라마 초반과 후반을 제외하곤 내내 팬티 바람으로 생존경쟁에 나서는 인물이다. 사진=티빙 제공

 

가평의 한적한 모텔에서 만난 남자 노형수(진선규)와 여고 교복 차림의 박주영(전종서). 주영이 성경험이 없는 여고생이라 생각하고 거금 100만원을 가져온 형수는, 그러나 거사(?)를 치르기 전 주영과 스몰토크를 시전하다 자신이 원한 것과는 다른 상황을 맞는다. 형수는 주영이 그가 원하는 것과 달리 ‘처음’이 아닌 것 같으니 시세(!)대로 17만원으로 깎자고 흥정하더니, 급기야 여고생인 것 자체를 의심하며 7만원까지 화대를 흥정한다. 그러나 몸값을 흥정하던 형수의 처지는 이내 급변한다. 주영을 비롯해 모텔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장기매매단에 의해 신장부터 췌장, 간, 쓸개, 심장, 인대, 안구, 치아, 피부, 혈액까지 탈탈 털릴 신세가 된 것. 오늘내일 하는 아버지의 대체 신장을 구하기 위해 장기매매 경매에 참여한 고극렬(장률)이 천신만고 끝에 형수의 신장을 구매하는 동시, 지진이 일어나며 형수를 비롯해 건물 안의 모든 사람들의 상황이 변한다.

 

아버지의 신장을 구하고자 나선 극렬(장률)은 답답할 정도로 형수의 신장에 집착한다. 처음엔 벼랑 끝에 내몰린 효자로 보였으나 극이 진행될수록 그런 생각이 사라지게 만드는 캐릭터. 사진=티빙 제공

 

‘미친 자들의 위험한 거래’라는 홍보 문구처럼, ‘몸값’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선함과는 거리가 있다. 1화에서 춘천경찰서 소속 형사라고 밝혀지는 형수는 여고생과 성매매를 하러 온 인물이고, 장기매매단에게 팔려와 붙잡혀 있던 경매사 주영은 입만 열면 거짓말이라 주변에서 아무도 그를 믿지 않을 만큼 신뢰할 수 없다. 원안에는 없던, 아버지를 위해 경매에 참여했다는 극렬 또한 효심에 눈이 멀었다는 이유로 도덕관념 따윈 생각하지 않는다. 장기매매단 일원은 말할 것도 없고, 경매에 참여한 사람들 또한 모두 제각각 ‘빌런’이다. 그런 악인들이 극한의 상황에 몰렸으니 어찌되겠나. 게다가 장기매매단 사장이 숨겨둔 거액의 돈 70억원까지 걸려 있으니 아사리판이 벌어지는 건 당연하다. 

 

주영과 형수, 형수와 극렬은 무너진 모텔 안에서 생존을 위해, 장기매매단 사장이 숨긴 70억원을 위해 결합했다 배신했다 다시 결합하는 이합집산의 모습을 보인다. 생존과 욕망 앞에 인간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느끼게 한다. 사진=티빙 제공

 

회당 약 30분가량의 6부작으로 제작된 ‘몸값’은 지지부진하지 않고 속도감 있게 내달린다. 단편에서 보였던 원테이크 기법이 드라마에서도 이어지는데, 덕분에 지진이 일어난 이후 벌어지는 모든 상황은 실제 현장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제작진과 배우들의 노고가 컸음은 짐작하고도 남을 정도. 주연을 맡은 전종서와 진선규의 차진 연기는 누구 하나 감정이입하기 힘든 악인들 천지인 ‘몸값’에 시선을 집중하게 만드는 원동력. 러닝타임 대부분의 시간을 팬티 차림으로 열연하는 진선규와 ‘콜’ ‘종이의 집’에 이어 강렬한 ‘또라이’ 연기로는 따를 사람이 없어 보이는 전종서를 쫓다 보면 6화가 순식간에 흘러간다. 고구마처럼 답답함을 한아름 안기며 ‘좀비 효자’라는 별명이 붙은 극렬 역의 장률은 ‘마이 네임’에 이어 또 한 번 눈도장을 단단히 찍었다. 단편 ‘몸 값’에서 주연을 맡았던 이주영과 박형수의 출연도 눈여겨볼 거리이며, 쿠키 영상에서 특별출연하는 장윤주와 현봉식의 모습은 시즌2를 궁금하게 만든다.

 

이주영과 함께 단편 ‘몸 값’에 주연이었던 박형수는 드라마에서 장기매매단의 실질적인 책임자인 부장 곽희숙으로 출연한다. 사진=티빙 제공

 

티빙 프로그램 주간 유료 가입 기여자 수와 시청 순방문자 수 1위에 오르고, OTT 통합검색 및 콘텐츠 추천 플랫폼 키노라이츠에서 10월 5주차 통합 콘텐츠 랭킹 1위를 차지한 ‘몸값’. 자극적이다 못해 파격적인 소재와 스토리 때문인지 호불호가 갈린다는 평도 있으나 장르를 확장하되 원안의 메시지를 놓치지 않고 가져가며 더 넓고 깊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낼 만하다. 오늘도 OTT 플랫폼 오가며 하염없이 이것저것 섬네일만 훑다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티빙 ‘몸값’에 도전해 보라. 최소한 지루하진 않을 거라 보장한다.

 

무너진 건물 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과연 70억원을 찾아 무사히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몸값’의 결말과 쿠키영상까지 보고 나면 시즌2가 강렬하게 기다려진다. 사진=티빙 제공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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