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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책] 책이, 글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패트릭과 함께 읽기'

타이완계 미국인 여성이 미국 남부 시골 마을에서 가르친 제자와 만들어간 문학적 우정의 기록

2022.07.18(Mon) 17:58:05

[비즈한국] 여기, 아시안계 미국 여성이 있다. 하버드를 졸업하고 로스쿨을 다니고 있다. 이미 로펌의 입사제안도 받았으나 비영리단체에 들어가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다. 곧 졸업하고 변호사시험을 치를 것이다. 아마 쉽게 합격할 것이다. 그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3년 전 그녀가 가르쳤던 학생이 일급 살인 혐의로 수감되었다고. 고민하던 그녀는 옛 제자를 만나러 미국 남부 시골 마을로 향한다. 그리고 7개월간 매주 제자를 찾아가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쓴다. ‘패트릭과 함께 읽기’는 이 여정을 기록한 책이다.

 

패트릭과 함께 읽기: 어느 문학적 우정의 기록

(원제: Reading with Patrick)

미셸 쿠오 지음, 이지원 옮김, 후마니타스 

432쪽, 2만 2000원 

 

흑인 민권 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타이완계 미국인 미셸 쿠오는 대학 졸업 후 ‘티치포아메리카’라는 비영리단체에 들어가 2년간 미국 미시시피주 시골마을 헬레나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흑인문학을 통해 미국의 역사를 가르쳐보자는” 나름 원대한 포부를 품었다. 자신이 감동받은 마틴 루터 킹, 맬컴 엑스, 제임스 볼드윈의 책을 통해 흑인 아이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 

 

그러나 현실은 혹독했다. 과거 흑인 민권운동의 성지였던 델타(미시시피강 하류 삼각주 지역)는 흑인이 매일 죽어나가도 누구 하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곳으로 전락했다. 일자리도 희망도 없이, 장례식장만이 호황을 누리는 곳. 다른 교사들의 무관심과 거친 아이들 사이에서 적잖이 당황하지만, 쿠오는 차츰 자신만의 방법으로 변화를 만들어나간다. 그 수단은 책읽기와 글쓰기다.

 

나는 마치 중매인처럼 학생들과 그들이 좋아할 만한 책을 짝지어주려 했다. 수요는 점점 늘어났다. 어느 책이 좋은지에 대한 소문은 빠르게 돌았고 책꽂이는 텅 비었다. 나는 곧 그 책들이 아이들의 가슴팍에 안겨 이 교실에서 저 교실로 옮겨 다니는 걸 볼 수 있었다. 학생들은 부적처럼 그 책들을 아꼈다. -본문 73~74쪽

 

쿠오는 특히 과묵한 패트릭에게서 ‘희망’을 발견한다. 학교에 도통 흥미를 갖지 못하고 결석하던 패트릭은 쿠오의 가정 방문 이후 약속한 대로 꼬박꼬박 학교에 나온다. 선생님의 관심을 자양분 삼아 패트릭은 ‘일취월장’한다. 글을 완전히 깨치고, 또박또박 글씨를 쓰고, 수많은 책을 읽고, 시를 쓴다. 학교에서 ‘최고의 향상’을 보인 학생에게 주는 상을 받고, 다큐멘터리에도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희망의 노래는 1년 만에 그치고 만다. 쿠오는 부모의 기대를 외면하지 못하고 로스쿨 진학이라는 현실적인 선택을 한다. 그녀가 헬레나를 떠날 즈음 학교 역시 재정 부족으로 폐교되면서 아이들도 다른 학교로 떠난다. 그리고 2년 후 쿠오가 법조인의 길에 들어서기 직전, 바로 ‘그 전화’가 온다. 누구와도 싸우지 않고 시를 쓰던 패트릭이 사람을 찔러 죽였다고. 

 

쿠오는 뉴욕타임스매거진에 기고한 헬레나 시절의 이야기를 패트릭에게 보여주려고 가져갔다가, 글조차 제대로 읽지 못하는 그의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2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후로 나는 떠났고, 다시 시작했고, 살아남았고, 전진했다. 이제 나는 방문자로 돌아왔고, 패트릭은 혼자였다. 우리 사이의 불평등은 더 커졌다. 우리는 둘 다 성장했고, 시간은 우리를 갈라놓았다. -166쪽

 

쿠오가 떠난 이후에 패트릭은 새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했다. 수학을 따라가지 못했지만 쿠오처럼 그에게 신경 써 주는 선생님은 없었다. 결국 점차 학교를 가지 않게 되었다. 딸이 생겼고, 지적장애 여동생을 지키려다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였다. 쿠오는 결국 패트릭 곁에서 함께하기로 결심한다. 

 

이번에는 쿠오와 패트릭, 두 사람만의 수업이 교도소에서 이어진다. 다시 기초 문법을 설명하고, 책을 함께 읽고, 딸에게 편지 쓰기와 생각 적기 등을 숙제로 내준다. I'm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던 패트릭은 열의를 가지고 수업을 따라간다. 그들은 매일 시를 읽고 글을 쓴다. 

 

나는 그를 가르치기보다는 그와 함께 공부하고 있었다. 마치 처음인 것처럼 시를 읽었고, 무엇이 좋은 시행을 만드는지 고민했다. 저녁이면 다음날 가져갈 시를 찾았다. 살면서 그렇게 많은 시를 읽은 적은 없었다.

나는 매일 커다란 토트백 두 개에 책을 채워 양어깨에 둘러메고 구치소로 날랐다. 그 책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면, 어두침침한 심문실은 그림책, 가이드북, 문집, 사전을 갖춘 작은 도서관이 되었다. 떠날 때가 되면 패트릭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내 가방을 보며 무겁지 않냐고 묻곤 했다. -347~348쪽

 

‘사자와 마녀와 옷장’으로 시작한 그들의 책읽기는 하이쿠를 거쳐 테니슨와 예이츠의 시를 지나 노예해방운동을 한 프레더릭 더글러스에 다다른다. 예전 델타에 있을 때 아이들에게 읽히려다 실패한 바로 그 책으로.

 

카프카는 우리가 읽어야 할 책은 상처 입히는 책, 재난처럼 우리를 덮치는 책,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도끼처럼 내리치는 책이라고 썼다. 패트릭에게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글은 그런 도끼였고, 그는 산산이 부서졌다. -313쪽

 

한편 끝없이 지연되던 패트릭의 재판도 마침내 끝이 난다. 패트릭은 유죄를 인정하는 대신 살인이 아닌 치사로 형량을 감형받는다.  

 

“넌 네가 유죄라고 느껴?”

“전 제가 유죄라는 건 알아요.”

그는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나는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건 네 잘못만은 아니야. 그건 사회의 잘못이야. 부실한 학교, 열악한 동네, 가족, 역사, 인종주의, 한 세기 동안 흑인 노동력에 의존하다 나중에는 그것을 내팽개친, 이제는 유물이 된 경제구조.

하지만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건 혹 넌 네 행동의 주체가 아니야, 라는 말은 아닐까?

그건 혹 넌 네 자신을 바꾸지 못해, 네 미래를 바꿀 수 없어, 라는 말은 아닐까? -340~341쪽

 

쿠오와 함께한 7개월 동안 패트릭은 딸에게 편지를 쓰고, 자신이 죽인 사람과 그의 어머니에게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쓴다. 구치소 바깥 너른 세상을 여행하고, 자연을 느끼고, 자유를 감각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시를 쓴다. 패트릭이 그렇게 발전하기까지 필요했던 것은 “조용한 방, 얼마간의 책, 어른의 지도 약간”이었다. 그런데 그 정도조차 제공받지 못했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패트릭은 스물다섯이 되고, 그의 딸은 여섯 살이 된다. 아빠를 닮아 책을 좋아한다. 구치소에서 나온 패트릭은 일자리를 찾고 헬레나에서 더 나은 삶을 살아보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쩌면 구치소에서보다 더 어렵다. 수감생활은 정해진 시한이 있었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패트릭의 분투는 이어진다.​

 

‘패트릭과 함께 읽기’의 저자 미셸 쿠어(오른쪽)와 제자 패트릭 브라우닝. ©Kathy Huang

 

‘패트릭과 함께 읽기’는 가르치는 일에 대한 이야기이자, 미국 남부 지역의 불평등과 현실에 대한 르포이며, 우정에 관한 글이다. 가르치는 사람은 어떠한 마음과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고, 미국의 사법체계 자체가 얼마나 흑인에게 불리하고 흑인들의 불평등이 왜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인지를 꼼꼼히 파헤친다. 동시에 이 책은 매우 문학적이다. ​성별과 인종을 넘어 두 사람이 함께한 문학적 여정과 성취가 생생하게 담겼다. ​쿠오가 오랜 시간 공들여 다듬었음을 보여주듯 한 문장도 허투루 쓰인 것이 없어 보인다. 끊임없는 자기 반성과 검열은 그에게 교사로서, 작가로서 단단한 기반이 돼 주었으리라.

 

때로는 허구보다 실화가 주는 감동이 더 큰 법이다. 현실에 발디딘 좋은 책을 찾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무엇보다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최고의 학교는 아니었어요. 그래도 선생님이 거기 계셨고, 선생님은 제게 마음을 써주셨어요. 그래서 학교에 가는 게그게 정말로 어떤 의미를 갖게 됐어요. 나를 위해 주는 누군가가 있어서요.” -160쪽

김남희 기자

namhee@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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