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부가 비대면 트렌드 속 소상공인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시작한 동네 슈퍼 스마트화 사업이 지지부진하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해 동네 슈퍼를 유·무인 혼합형 매장으로 바꾸는 스마트슈퍼 사업을 1년 만에 접었다. 사업은 종료됐지만 스마트슈퍼를 운영하는 업주들은 아쉬움을 토로하는 상황. 신규 사업인 ‘경험형·지능형 스마트마켓’의 성과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2025년 4000개’ 목표 1년 만에 축소→중단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2020년, 정부는 비대면 소비 트렌드에 따라 동네 슈퍼를 스마트하게 바꾸겠다고 나섰다. 중기부가 2020년 7월 시작한 스마트슈퍼 구축 시범사업이 그것이다. 스마트슈퍼란 낮에는 유인, 밤에는 무인으로 운영하는 혼합형(하이브리드) 매장으로 나들가게 육성 정책 이후 약 10년 만에 도입된 스마트슈퍼 정책이다. 동네 슈퍼에 카드 출입 인증 장치·무인계산대·주류 판매 차단기 등 스마트 기술과 장비를 도입하고, 유통전문가를 통해 점포 경영 기술까지 제공하는 것이 골자다.
사업의 취지는 좋았다. 중기부는 당시 “유통환경이 급변하지만 자본력이 부족한 동네 슈퍼가 제때 대응하지 못해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추진한다”고 사업 목적을 밝혔다. 동네 슈퍼는 아르바이트생을 쓰는 대신 가족끼리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루 평균 운영시간이 16시간이 넘는 만큼 무인 매장으로 소상공인 복지를 향상하고 심야 매출까지 늘리겠다는 일석이조를 노렸다.
중기부는 스마트슈퍼를 2021년 800개, 2023년 2500개, 2025년에는 4000개까지 빠르게 늘리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웠다. 본격적인 사업은 2021년부터 53개 기초지방자치단체와 비용을 공동 지원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지난해 초 “참여 문의를 하는 슈퍼가 많다”고 밝힌 데다 동네 슈퍼 수가 약 5만 2000개(2018년 기준)에 달한 만큼 목표 달성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2021년 스마트슈퍼 사업에 지원한 동네 슈퍼는 목표치인 800개에 턱없이 못 미치는 124개에 그쳤다. 이에 중기부는 스마트슈퍼 구축 시범사업을 시작한 2020년 7월 이후 1년 만에 사업 방향을 대폭 수정했다. 스마트슈퍼 연간 목표치를 줄이고(800→200개), 스마트슈퍼 대신 ‘경험형 지능형 스마트마켓’이라는 새로운 사업으로 전환했다. 결국 스마트슈퍼 사업은 지난해 지원한 동네 슈퍼를 관리하는 것을 끝으로 중단됐다. 2025년이라는 목표 기간에서 절반도 채우지 못한 셈이다.
그렇다면 남은 스마트슈퍼는 어떤 상황일까. 전환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을까. 2020년 시범사업에 선발된 매장과 지난해 지자체 사업으로 신규 지원한 매장을 찾았다. 업주들은 사업 초반과 달리 현재는 별다른 매출 증대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시범 사업에 참여한 수도권 매장 점주 A 씨는 “무인화로 전환한 초반에는 매출이 약간 늘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며 “경기 자체가 좋지 않으니 스마트슈퍼라며 24시간 운영해도 매출이 늘지 않는다”며 한숨 쉬었다.
사후 관리를 두고 아쉬운 목소리도 나온다. 또 다른 시범 매장 점주 B 씨는 “무인 계산기 등 기계 오류가 발생한 적도 있는데 관리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가 아쉬워하는 이유는 또 있다. 신규 매장과 지원금에 비중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B 씨는 “시범사업에 참여할 때 비용의 30%를 냈는데, 지난해 참여한 매장을 보니 지원금 전액을 받은 곳도 있더라”며 “무인계산대, 주류 판매 잠금장치 등 설비는 큰 차이가 없는데 일찍 지원한 곳은 비용을 내고 신규 매장은 비용이 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황당했다”고 토로했다.
B 씨의 말처럼 2021년부터 점주가 받는 지원금은 제각각 달랐다. 2021년부터 지자체가 사업을 공동 지원하며 사업비 구성이 바뀌었기 때문. 2020년엔 국비 70%, 자부담 30%였으나 2021년부터는 국비 70%, 지방비 20% 이상, 자부담 30% 미만으로 자부담 비중이 크게 줄었다. 지자체마다 지원 비율을 다르게 산정하다보니 점주마다 자부담 금액이 달랐고, 일부 점주는 전액 무료로 설치했다.
신규 매장의 운영도 원활하지만은 않다. 올 초 지자체 지원으로 자부담 없이 스마트슈퍼로 전환한 서울 시내 매장 점주 C 씨는 아직 무인 운영을 해본 적이 없다. C 씨는 “CCTV·무인계산대 등을 설치했지만 무인으로 운영할 상황이 아닌 것 같아 남편과 번갈아 가게를 보고 있다”며 “매장 구조가 물건이 많고 복잡해 무인으로 두기엔 안심이 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시범운영 매장에서도 보안의 허점을 짚었다. 앞서 점주 A 씨는 “절도로 큰 손실을 본 적은 없다”면서도 “사실 누군가 훔쳐 가도 확인할 길이 없다. 밤새 찍힌 CCTV를 온종일 돌려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라고 말했다.
노인·어린이가 자주 오는 동네 슈퍼 특성상 무인 매장을 활성화하기 쉽지 않다는 것도 한계다. C 씨는 “젊은 손님은 무인계산대를 알아서 사용하지만, 어르신들은 여전히 어려워한다. 여러 번 옆에서 도와드렸는데 비효율적이라고 느꼈다. 우리가 직접 계산하는 게 훨씬 편하다”고 지적했다.
#단순 무인 매장에서 지역형 체험 매장으로 전환
스마트슈퍼 대신 시행한 경험형 스마트마켓 사업 현황은 어떨까. 경험형 스마트마켓이란 스마트 기기와 지역 특색을 담은 체험형 마켓을 함께 적용한 매장을 뜻한다. 매장 유형은 ‘꽃집+슈퍼’ ‘세탁소+슈퍼’처럼 여러 업종이 한 매장에 결합한 융합형, 지역 콘텐츠·커뮤니티 중심의 지역 특화형, 두 가지로 나뉜다. 스마트슈퍼 사업과 동일하게 중기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진행하며, 지난해 7~8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사업에 참여할 업체를 모집했다.
소진공에 따르면 지난해 선발돼 운영 중인 경험형 스마트마켓은 226개(서울 51개)다. 무인 슈퍼보다 나은 성적이다. 전국 매장에 스마트마켓을 구축하고 현장에서 교육·컨설팅을 제공할 운영기관도 모집하고 있다. 지난해엔 운영기관이 1개만 선정돼 전국 단위의 관리가 어려웠던 탓이다. 비용 중 자기부담금은 15~30%로, 공통 지원 장비 외 추가 설비는 업주가 부담한다. 계약은 5년간 유지해야 하며 사전 협의 없는 승계·폐업은 불가능하다. 예산은 35억 원으로 올해는 100개 업체를 선정할 예정이다. 중기부와 소진공은 무인 기기뿐만 아니라 매장 형태에 맞는 스마트 기기를 제공하는 만큼 사업 효과가 더 좋을 것으로 기대했다.
경험형 스마트마켓 사업은 스마트슈퍼와 달리 참여 매장이 공개되지 않았다. 소진공 측은 “참여 업체 중 폐업한 곳은 없다”고 설명했지만, 시행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만큼 성과는 지켜봐야 한다. 스마트슈퍼 점주 A 씨는 “스마트슈퍼가 괜찮은 사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장관 그만두고 정권도 바뀌면서 완전히 끝난 듯해 아쉽다”며 “매출을 떠나 (기기 덕에) 여유가 생기니 개인적으로는 관련 사업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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