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진병준 한국노총 전국건설산업노조(건설노조) 위원장의 횡령 혐의를 수사 중인 경찰이 지난 11일 그를 소환한데 이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곧 소환 방침인 것으로 확인됐다.
진 위원장은 건설노조 통장과 법인카드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조합비 10억 원 이상을 업무상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그는 건설노조 지부 등을 동원해 2019년과 2020년 여야 국회의원 9명에게 불법으로 수천만 원대 정치자금을 후원한 혐의도 받고 있다.
노동계에 따르면 진병준 위원장은 한국노총 내 유력 산별노조인 건설노조 위원장을 16년째 장기 집권하면서 그를 둘러싼 여러 잡음이 불거져 왔다.
결국 일부 건설노조원들은 지난해 7월 진 위원장의 각종 범죄 혐의에 대해 경찰청에 수사 의뢰했다. 경찰청은 여의도 한국노총 본부를 관할하는 영등포경찰서로 사건을 넘겼고 올 2월부터 건설노조 본부 소재지를 관할하는 충청남도경찰청이 횡령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수사 중이다.
충남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팀은 진 위원장의 횡령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고발인, 참고인 소환과 증거 수집 등 기본 수사를 마무리 지은 것으로 파악됐다.
횡령 혐의와 관련해 경찰은 이달 3일 진 위원장에게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을 요구했지만 그는 이에 불응했다. 이에 경찰은 지난 11일 다시 출석을 요구했고 진 위원장이 응하면서 경찰 수사의뢰 후 무려 8개월여 만에 첫 소환조사가 이뤄졌다.
이런 가운데 진 위원장이 지난 3일 불출석한 이유가 당일 그에 대한 횡령 혐의 등을 제기한 조합원들의 징계위원회를 소집했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복수의 건설노조원들은 “진 위원장과 집행부는 저항하는 노조원들에 대해 제명 등 중징계를 내려 재갈을 물리고 증거 인멸을 시도하고 있다. 경찰의 첫 출석 요구에 불응한 것도 그런 의도로 밖에 불 수 없다”며 “진 위원장에 대해 즉각 구속 수사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진 위원장은 11일 경찰에 출석해 혐의 사실 대부분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지며 조사를 마친 후 귀가했다.
경찰은 진 위원장이 국회의원들에게 불법 정치자금 후원을 주도한 혐의와 관련해 곧 소환조사할 계획이다.
정치자금법은 법인 또는 단체의 정치자금 후원을 금지하고 있다. 후원금을 보낸 건설노조 간부 등에 따르면 진병준 위원장의 지시로 노조 명의 계좌에서 간부 개인 계좌로 돈을 보낸 후 개인 후원으로 가장해 국회의원들에게 후원금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건설노조로부터 후원을 받은 것으로 지목되는 의원들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이거나 한국노총 임원 출신으로 국회에 입성했거나 건설노조 본부가 근거한 충청권을 지역구로 둔 정치인들이다. 정치자금을 받은 의원들은 박 아무개, 임 아무개, 김 아무개, 이 아무개 의원 등 총 9명으로 전해진다.
이들 의원실 측은 한결같이 “한국노총 건설노조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사실이 없다”며 부인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진 위원장) 첫 소환 조사를 실시했다. 필요 시 추가 소환할 계획이며 일정에 따라 사건을 처리해 나갈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진 위원장을 둘러싼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자 건설노조에 공문을 보내 이달 13일까지 진 위원장과 건설노조 집행부가 총사퇴하고 6월 10일까지 그를 포함한 비리 혐의 연루자를 제명조치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한국노총에서 통보한 1차 시한인 13일을 넘긴 현재 진 위원장은 사퇴하지 않고 있다.
한국노총 측은 비즈한국에 “지난 16일 오후 열린 중앙집행위원회에 진 위원장이 출석해 오는 23일 (건설노조) 대의원회의를 열고 자신의 거취와 향후 계획 등에 대해 결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건설노조와 관련해 절차에 따라 조치한다는 방침이다. 한국노총 규약에는 산별노조 위원장을 징계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 산별노조 제명과 관련해 한국노총 규약은 각각 한국노총 위원장이 소집하는 회원조합 대표(산별노조 위원장)회의를 거쳐 최고 의결기구인 대의원회의에서 최종 의결을 거쳐야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5월 23일 건설노조 대의원회의에서 어떠한 결론이 내려지더라도 한국노총이 건설노조를 제명할 가능성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팽배한 상황이다.
건설노조원들은 “진 위원장이 23일 건설노조 대의원회의를 열고 자신의 거취를 묻겠다고 했지만 사퇴 의사가 없음이 분명해 보인다. 대의원들은 위원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며 오히려 대의원회의를 통해 진 위원장이 재신임을 받으려고 하는 의도로 해석된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한국노총에는 28개 산별노조가 있다. 진 위원장은 16년째 건설노조를 장악한 장수 위원장으로 산별노조 대표들과 공생관계를 형성해 왔고 한국노총 집행부에 대한 비리와 약점에 대해 훤한 인물이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건설노조 제명 절차가 요식행위에서 흐지부지되지 않겠나 심히 우려스럽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비즈한국은 진 위원장과 건설노조 집행부 측에 관련 사안에 대한 입장을 수차례 요청했지만 어떠한 해명도 들을 수 없었다.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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