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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이토록 시대착오적인 드라마라니, '서른, 아홉'

입양에 대한 피상적 접근에 '욕'이 절로…배우들의 절절한 연기가 그나마 '하드캐리'

2022.03.10(Thu) 15:18:46

[비즈한국] 요즘 넷플릭스나 티빙을 보면 ‘스물다섯 스물하나’ ‘서른, 아홉’ ‘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 편’, 이 세 편의 한국 드라마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순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나 역시 세 드라마를 모두 챙겨본다. 나이를 강조한 ‘스물다섯 스물하나’와 ‘서른, 아홉’은 모두 나와 동년배의 이야기이고, 직장에서 연애하는 이야기를 좀 더 업그레이드한 ‘기상청 사람들’은 잘생긴 송강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문제는 ‘서른, 아홉’을 시청할 때 나의 태도. 6화까지 방영된 것을 모두 시청했고 아마 앞으로도 볼 것 같지만, 드라마를 보는 내 입에선 차진 욕이 튀어나온다. 이렇게 신명나게 까대면서 보는 드라마는 ‘슬기로운 의사생활’ 이후 오랜만인 듯하다.

 

‘서른, 아홉’은 피부과 원장인 차미조(손예진), 연기 선생인 정찬영(전미도), 백화점 매니저인 장주희(김지현), 이 세 명의 친구를 주인공으로 한다. 제목처럼 모두 서른아홉 살인 이들은 열여덟 살에 만나 20년이 지난 지금도 떡볶이에 소주를 곁들이며 서로에게 죽고 못사는 절친한 사이. 사는 곳도, 출신 학교도, 성인이 되어 가진 직업도 완전히 다른 이들이 친해진 계기는 ‘입양’이다. 입양아이던 차미조가 열여덟 살에 친모를 찾아 나섰다 지갑을 잃어버리며 찬영을 만나고, 친모가 있을 것이라 짐작되던 분식집에서 주희를 만나면서 셋이 친하게 된 것.

 

열심히 살아온 세 친구. 어느 정도 안정됐을 나이라 여겨지는 서른아홉 살이지만, 입양아 출신으로 피부과 원장이 된 차미조는 공황장애를 앓고 있고, 걸걸한 입담을 자랑하는 정찬영은 정작 옛 연인의 끊을 놓지 못하며, 백화점 화장품 매니저로 일하는 장주희는 아픈 엄마를 부양하느라 여지껏 제대로 된 연애를 못했다. 사진=JTBC 홈페이지

 

‘서른, 아홉’을 보면서 가장 빈번하게 욕이 튀어나오는 건, 이 입양을 바라보는 드라마의 시선 때문이다. 드라마 1화에서 차미조는 병원의 실장이자 든든한 언니인 차미현(강말금)에게 농담 따먹기처럼 ‘입양아 드립’을 치고, 미조의 병원에 피부과 시술을 받으러 온 찬영과 주희는 “미조네 가족은 참 다 좋아. 그러니까 미조가 잘 컸지”라는 말을 주고받는다. 한국 드라마에서 빠르게 캐릭터의 특징과 전사를 설명하기 위한 설정임은 알지만 처음부터 입양에 대한 접근이 피상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날로 커지고 있다.

 

‘입양’은 ‘서른, 아홉’의 중요한 키워드이다. 두 번의 파양을 겪고 부잣집 딸로 입양된 차미조는 자신의 일이라면 댄스복 차림으로도 한달음에 달려오는 언니가 있고, 자신이 자랐던 보육원에 정기 봉사를 나갈 정도로 단단한 심리를 지니고도 공황장애를 앓고 근원적인 결핍을 이야기한다. 사진=JTBC 홈페이지

 

차미조와 사귀게 되는 피부과 의사 김선우(연우진)는 미조와 같은 보육원 출신인 입양아 여동생 김소원(안소희)의 존재 덕분에 미조에게 좀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래,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친구 정찬영이 췌장암 4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하고 괴로워하던 차미조가 김선우에게 털어놓는 대사는 어안이 벙벙해진다. 찬영과의 사이가 ‘가족 같은 사이다’라는 말로도 부족하다며 덧붙이는 말이 “완전한 가족이 뭔지도 모르니까”다. 미조의 말에 갸우뚱한 사람이 나뿐이었을까? 다양한 관계로 형성된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더 이상 신기하지 않은 21세기에 사는 현대인의 대사로는 무척 아쉬웠다. 아무리 자신의 근본이 궁금한 입양아라 해도, 배울 만큼 배우고 생각이 쌓일 만큼 쌓인 서른아홉 살이 혈육 위주의 가족만이 완전한 가족이라고 생각한다니.

 

입양된 동생이 있어 차미조와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결국 연인이 된 김선우. 그러나 선우의 아버지는 입양된 딸 김소원을 못마땅해하는 것은 물론 본질적으로 고아에 대한 강한 편견을 유감없이 드러내며 소원에게 상처를 준다. 사진=JTBC 홈페이지

 

입양한 딸인 김소원을 내친 김선우의 아버지 정택이 내뱉는 말을 보면 더욱 가관이다. “걔(김소원)도 제 인생에 넘치는 지원받은 거야. 고아원에 계속 있었어 봐. 피아노를 쳐? 줄리어드 음대? 하! 어디서 젓가락이나 두들기고 살겠지.” 고아에 대한 편견은 둘째치더라도, 정택의 이 말로 인해 줄리어드 음대를 졸업한 피아니스트 김소원이 한국으로 돌아와 ‘젓가락을 두들기는’ 술집 접대부로 자신을 구겨 넣는 설정은, 다시 한번 지금이 21세기가 맞나 갸우뚱하게 만든다.

 

차미조와 김선우와 김소원, 그리고 정택이 함께 어색한 저녁식사를 하게 된 6화에서 정택이 김소원에게 못마땅한 티를 대놓고 드러내자 차미조가 소원을 두둔하며 정택에게 일침을 가하는 말도 마찬가지. “고아 티 나는 거 어쩔 수 없어요. 아무리 편해도, 내가 입양 온 가정에 사랑이 넘쳐도, 명문고 나와서 의대를 가고 병원 원장이 돼도, 말씀하신 그 고아라는 우울감, 열패감 못 벗어요. 그래서 더 보듬어 주신 것 같아요, 제 양부모님께서.” 물론 차미조가 말한 우울감과 열패감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닐 테지만, 입양아와 그 가족들이 고아와 입양에 대한 편견을 한층 강조하는 듯한 이 드라마를 보면서 오히려 열패감을 맛보게 되진 않을지 염려될 정도다. 가족 신화가 막강한 한국이지만, 그래도 2022년 아니냐고.

 

정찬영과 김진석은 오랫동안 사랑했다 헤어졌지만 여전히 서로를 사랑한다. 이들의 사이를 가로막는 것은 김진석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속여 결혼한 강선주. 그러나 찬영과 진석이 헤어지고 오랜 시간 불륜이란 힐난을 받은 것이 과연 선주 때문만인지는 의심스럽다. 사진=JTBC 홈페이지

 

초반부터 논란이 많았던 정찬영과 그의 오래된 연인 김진석(이무생)으로 넘어가도 답답하긴 마찬가지. 집안의 반대로 찬영과 헤어지고 하룻밤 실수로 아이가 생겨 강선주(송민지)와 결혼한 김진석은 여전히 정찬영과 애틋한 감정을 나누는 사이다. 찬영은 ‘그 여자보다 내가 먼저였으니 불륜이 아니고, 오빠가 결혼하고 나서는 한 번도 안 잤다’라며 불륜이 아님을 항변하지만, 그것이 헐거운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건 미조도 알고 찬영 자신도 알 것이다. 문제는 그들의 사랑을 불륜이 아니라 변명해주기 위해 김진석의 아이가 사실은 강선주가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임신한 아이라는 설정을 삽입한 것. 하룻밤 실수로 생긴 아이를 책임지기 위해 결혼하고, 심지어 결혼생활 중 자신의 혈육이 아님을 알고 나서도 사랑으로 키운 그 아이가 상처받지 않게 하기 위해 이혼을 결심하지 못한, 심지어 이혼을 결심하고도 아이는 자신이 키우겠다는 김진석은 그렇게 착한 남자로 포장된다. 남의 아이를 진석의 아이라 거짓말해 절절한 사이인 진석과 찬영을 갈라놓은 강선주가 모든 악의 근원이니까.

 

세 친구 중 가장 눈여겨보게 되는 장주희. 서비스업 현장에서 무수히 많은 시간 고객의 갑질을 견디고, 암 투병을 했던 어머니를 보살피느라 정작 자신의 삶은 제대로 돌보지 못한 인물. 친구들이 없는 시간, 술로 자신을 위로하는 그를 보며 동질감을 느끼는 현대인이 꽤 있지 않을까. 사진=JTBC 홈페이지

 

그런데, 진석이 착한 남자가 맞나? 집안의 반대를 이기지 못한 것도, 사랑하지 않으면서 아이를 책임진다는 이유로 결혼을 결심한 것도, 결혼생활을 영위하면서도 친구라는 탈을 쓰고 자주 찬영과 만나 유사 연애를 보이는 것도, 심지어 아이가 자신의 혈육이 아님에도 아이가 너무 어려 상처받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이혼하고 자신에게 와 달라는 찬영의 호소를 거부한 것도 진석인데. 누구에게도 모질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착한 사람이고 싶은, 그래서 결국 모두에게 상처를 주는 비겁한 남자, 그게 진석의 본질인데 말이지.

 

시한부 삶을 맞은 정찬영으로 인해 미조-찬영-주희의 관계는 물론 이들의 가족, 이들의 연인에게도 여파가 미치게 된다. 서른아홉은 아직 젊지만, 분명 중년의 문턱에 들어선 나이. 결코 죽음과 동떨어진 나이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 연령대 시청자의 공감을 사는 부분이 있다. 사진=JTBC 홈페이지

 

그렇게 모든 게 마음에 안 들면 욕하지 말고 드라마를 보지 말라고 하겠지만, 그러기엔 ‘서른, 아홉’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진하고 절절하다. 영리하게 연기 잘하는 손예진과 배우 본연의 호감으로 불륜 논란을 비껴 가는 전미도, 현실에 땅 붙인 인물을 보여주는 김지현 등 배우들의 호연이 이 시대착오적이고 다소 피상적인 ‘서른, 아홉’의 멱살을 끌고 ‘하드캐리’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역시 피상적인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중년을 맞는 여자친구들의 우정을 보는 재미와 위안도 분명 있다. 그러니 당분간은 지켜볼 수밖에. 시한부인 찬영의 앞으로의 상황이나 미조의 친어머니를 찾아주고 싶다는 찬영의 버킷리스트를 보면, 어휴, 또 얼마나 올드한 설정이 나올지 조마조마하지만.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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