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질 좋은 종이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했다. 일찍이 중국에서도 ‘고려 종이’를 최고로 쳤을 정도. 한지의 재료가 되는 닥나무 산지로 유명한 충북 괴산에는 ‘세계 유일’의 한지체험박물관이 자리한다. 여기서는 전통 한지의 역사와 제작 과정뿐 아니라 다양한 한지 만들기, 공예 체험을 할 수 있다.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한지장 안치용 관장이 평생을 모은 한지 관련 유물들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한지를 꼬아 만든 수백 년 전 말다래와 침통, 가마 요강 등이 눈길을 끈다.
#무형문화재 한지장이 특허 낸 한지들
화려한 팔작지붕의 ‘ㄷ’ 자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한지를 만드는 전통 도구인 닥방망이와 함께 시커먼 발동기가 보인다. 언뜻 한지와 별 상관없어 보이는 시커먼 발동기도 한지를 만드는데 꼭 필요한 기계장치였단다. 이전까지 일일이 손으로 두드려 만들던 닥죽(펄프)을 발동기 도입 이후 기계의 힘으로 손쉽게 만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발동기는 1977년부터 괴산한지공사(현 신풍한지)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닥방망이와 발동기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한지의 역사와 쓸모,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전시공간이 펼쳐진다. 특히 다양한 색깔과 무늬를 뽐내는 한지들이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기에는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17호 한지장이자 괴산의 전통 한지 제작 업체인 신풍한지 대표인 안치용 관장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3대째 한지 생산 가업을 물려받은 안 관장은 물방울지, 신서란지, 입체문양지 등 새로운 한지 제작 특허를 15종이나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또 일찍부터 전통 한지 연구와 한지박물관 건립에 뜻을 두고 전국의 한지 관련 유물들을 수집하다 2013년 괴산군과 함께 괴산한지박물관을 만들었다.
이어지는 전통 한지 공예품들은 “한지로 이런 것까지 만들다니!”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종이로 접은 여러 칸의 색실 주머니를 배접해 만든 색실첩이나 나무함에 종이를 여러 겹 붙인 후 콩물을 바르고 옻칠로 마감한 서류함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종이를 꼬아 만든 옷이나 소반, 활통, 심지어 요강에 이르면 절로 입이 벌어지게 된다. 우리 조상들의 한지 사랑과 생활의 지혜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옷에서 요강까지 전통 한지 공예품 구경
안 관장이 평생을 모은 한지 공예품 중에는 KBS 프로그램 ‘TV쇼 진품명품’에서 2600만 원의 감정가를 받은 ‘지승 말다래’도 있다. 말대래란 말 안장 아래 늘어뜨려 말이 달릴 때 진흙이 튀는 것을 막아주는 물건이다. 우리나라에서 말다래가 쓰인 것은 아주 오래된 일로 삼국시대 신라 경주의 고분에서는 자작나무 말다래에 그린 천마도가 발견되어 천마총이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단다. 보통 말다래는 나무나 가죽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데 종이로 만들고 주칠까지 한 것이 아주 귀중한 물건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종이로 만든 요강에 더 관심을 보일지도 모른다. 종이를 꼬아서 요강을 만든 후 옻칠로 방수를 했다. 여기에 오줌을 누면 소리가 나지 않았고, 목화솜 한두 덩이를 넣어두면 오줌이 샐 염려도 없었단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 여성들이 가마를 타고 먼 길을 갈 때 종이 요강을 사용했다고. 이렇게 종이를 꼬아서 여러가지 물건을 만드는 걸 ‘지승 공예’라고 부르는데, 괴나리봇짐에 매달고 다니던 지승 표주박과 선비들이 좋아한 지승 흑립, 승려들이 물건을 담아 다니던 지승 바랑, 여름철 시원하게 입는 지승 옷 등이 있다.
괴산한지체험박물관에선 한지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체험 프로그램은 크게 한지 만들기와 한지 공예, 글씨 쓰기 등으로 나뉜다. 전통한지뜨기 체험은 이름처럼 옛 방식 그대로 닥나무를 두드려 한지를 만드는 체험 활동이다. 여기에 꽃이나 단풍잎을 넣을 수도 있다. 한지 공예는 보석함과 필통 등을 만들고, 부채에 한자 무늬를 넣거나 한지에 가훈을 쓰기도 한다.
<여행정보>
괴산한지체험박물관
△위치: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연풍로 233
△문의: 043-832-3223
△관람시간: 0900~18:00, 월요일, 설/추석 당일 휴관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완회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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