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국내 1세대 바이오 벤처 헬릭스미스가 바람 잘 날 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31일 정기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로 선임될 예정이었던 김신영 전 사장이 돌연 사직했고, 소액주주들과의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소액주주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경영진 교체를 위한 주주 의결권 위임장을 받고 있는데, 이에 헬릭스미스는 형사 고발 조치를 검토 중이라며 경고했다. 비대위가 제기하는 여러 의혹을 두고도 IR 레터를 통해 일일이 반박하고 나서는 등 충돌이 끊이지 않는다.
#국내 1세대 바이오 벤처, 왜 주주들과 갈등하나
헬릭스미스는 김선영 대표가 1996년부터 이끌어온 서울대 학내 벤처 기업이다. 2005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기술특례상장한 헬릭스미스는 통증 유전자치료제 신약에 대한 기대감에 힘입어 2019년 국내 코스닥 시장에서 시가총액 2위까지 올랐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첫 번째 적응증인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 ‘엔젠시스(VM202)’의 미국 임상3-1상에서 약효를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 2019년 3월 31만 8000원이던 주가는 꾸준히 하락해 지난 31일 종가는 2만 5800원이었다. 시총은 70위(8841억 원)까지 떨어졌다.
소액주주들과의 갈등은 빠르게 번져나갔다. 특히 임상시험 악재로 주가가 급락한 상황에서 2020년 9월 헬릭스미스가 2861억 원의 대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하겠다고 공시하면서 주주들의 원성을 샀다. 2019년 8월 1469억 원 규모 유상증자를 하며 김 대표는 “향후 2년간 추가 유상증자는 없다”고 밝혔지만 관리종목 지정 위기에 몰리자 입장을 선회한 것. 그런데 최대주주인 김선영 대표가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더욱 논란이 일었다.
유상증자 준비 과정에서 헬릭스미스가 고위험 자산에 대량 투자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기도 했다. 증권신고서를 정정하라는 금융감독원 지적에 따라 헬릭스미스는 2016년부터 5년간 팝펀딩 관련 사모펀드, DLS 등 총 68개의 고위험 자산에 2643억 원을 투자했다고 지난해 10월 공시했다. 당시 헬릭스미스는 매출보다 판관비와 연구개발비 지출이 커서 불가피했다고 해명했지만, 대부분 상품에서 원금을 회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소액주주들이 유상증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헬릭스미스는 1600억 원 정도의 자금을 확보했고 관리종목 편입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또 다른 의혹들이 제기되면서 주주들과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우선 지난해 아데노 부속 바이러스(AAV) 분야와 자체 키메라 항원 수용체 T세포(CAR-T) 파이프라인을 따로 떼어 설립한 자회사 ‘뉴로마이언’과 ‘카텍셀’ 두 곳에 김선영 대표 등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높아 외부자금을 투자받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뉴로마이언과 카텍셀의 헬릭스미스 지분율은 각각 58.08%, 48.13%다. 뉴로마이언 2대 주주는 19.18%를 보유한 김선영 대표, 김 대표의 장남인 김홍근 씨가 7.83%로 3대 주주, 카텍셀도 김 대표와 유승신 대표, 김 씨가 2~4대 주주로 알려졌다. 특히 뉴로마이언의 경우 지난해 10월 3억 5000억 원 규모 증자가 이뤄지면서 헬릭스미스의 지분율이 당초 80%에서 58.08%로 하락했다. 일부 주주들 사이에서는 헬릭스미스 100% 자회사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주주들은 “유상증자에는 참여하지 않으면서 뉴로마이언과 카텍셀에 투자한 이유가 납득되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이에 헬릭스미스는 30일 IR레터를 통해 “뉴로마이언은 오는 4월 청산 절차를 진행하고 프로젝트들을 헬릭스미스 내부 프로젝트로 진행할 예정이다. 계획보다 연구 일정이 늦어져서 현 단계에서 대규모 투자유치를 하면 헬릭스미스 지분이 낮아져 불리하다고 판단했다. 카텍셀의 경우 김선영, 유승신, 김홍근 등 지분 참여는 대외투자유치 및 책임경영을 위한 것이었다. 주주들이 임직원들의 참여를 원하지 않으면 모든 지분을 처분할 수 있다”며 “그러나 자회사 추진을 포기하면 회사 내부 자금을 사용하거나 프로젝트를 중단해야 해 후보물질이 사장된다”고 못 박았다.
유상증자를 통해 얻은 비용 중 다수를 자회사에 투입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헬릭스미스가 지난해 10월 공시한 증권신고서를 보면 ‘오픈이노베이션, CAR-T와 AAV 관련 장비 및 시설투자’ 등에 162억 원을 쓴다고 적혀 있다. 엔젠시스에는 300억 원, 시설자금과 기타 운전자금 사용에는 약 756억 원이 책정돼 있다. 헬릭스미스 측은 “뉴로마이언과 카텍셀은 당초 사업계획에 따르면 2023년까지 각각 350억 원과 320억 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됐고 이를 모두 외부로부터 투자받을 예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비대위는 법인카드 사용 한도가 무제한 아니냐고 주장했다. 헬릭스미스 측은 “법인카드 사용 한도가 무제한이라는 주장은 허위 주장”이라며 “2020년 한 해 동안 전체 임직원이 사용한 금액은 약 5억 1200만 원이다. 대부분은 복리후생비·소모품비·교통비·보험료·지급수수료 등으로 사용됐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지난해 복리후생비·소모품비·교통비·보험료·지급수수료에 쓰인 돈이 2019년의 4배 정도에 달해 지출 규모가 과도하다는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엔젠시스 임상에 사활 걸겠다지만…
게다가 31일 주총에서 차기 대표이사로 선임될 예정이었던 김신영 전 사장이 돌연 사직하며 회사 안팎이 시끄럽다. 현 경영진과의 견해차가 사직 이유로 알려진 김 전 사장은 주주 카페에 회사의 문제점을 공유하며 ‘쇄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주들과 계속되는 갈등도 헬릭스미스에는 부담이다. 비대위는 경영진 전원 해임과 전문경영인 영입 등을 목표로 하는 임시주총 소집을 추진 중이다. 헬릭스미스 측은 “비대위 일부 구성원의 발언과 행동에 대해 엄중한 법적 조치를 할 계획이다.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 행위에 대해서도 금융당국에 문제를 제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김선영 대표는 정기주총에서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헬릭스미스는 ‘엔젠시스 임상 성공’으로 현재 위기를 타파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선영 대표는 31일 열린 주총에서 2022년 10월 31일까지 엔젠시스 임상시험에 성공하고 헬릭스미스 주가가 주당 10만 원을 넘지 않으면 본인이 보유한 회사 주식 전부를 팔겠다고 했다. 헬릭스미스는 2019년 9월 엔젠시스 임상3-1상에서 통계적 유의성을 나타내는 데 실패한 후 3-2상과 3-3상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헬릭스미스에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신약이 개발된다 해서 다가 아니다. 우월한 의약품이라고 해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보험 시장에 올릴 수 있는 약물인지, 현지 시장은 어떻게 공략할지 등이 중요하다. 그래서 많은 바이오 벤처가 끝까지 밀고 나갈 능력이 없어 기술 수출을 택한다”라며 “투자로 당장의 이익에만 몰두하다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게 아니라면 ‘효과적인 약’이라며 임상에 집중하겠다는 이야기를 넘어 구체적인 상업화 전략을 발표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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