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가장 인간적인 노동’을 찾기 위해 길 위에 섰다. 한편으론 답답했다. 하루 치 짧은 체험과 단편적인 글로는 새로 등장한 노동의 형태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원래 글을 업으로 쓰는 사람이었다. 올해 2월, 직장을 그만두고 직접 플랫폼 노동 현장에 뛰어들었다. 배달 플랫폼 생활을 직접 체험하고 ‘뭐든 다 배달합니다’라는 책을 낸 김하영 작가 이야기다.
시작은 쿠팡 물류센터였다. 이름과 생년월일을 문자로 보내고 바로 다음 날부터 일했다. 아침 7시 5분이면 집 근처에서 통근버스를 탔고 오후 5시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PDA의 ‘퇴근’ 버튼을 누르면 정신도 로그아웃됐다. 마감날 직전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던 전 직장의 삶과 달리 매일 피곤함에 곯아떨어진다는 점은 좋았다.
다음은 배달이었다.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고 배민 커넥터로 일했다. 동네 가게 사장님들과 친해졌고, 어느 루트에 언덕이 많은지 통달했다. 병행해서 일한 대리기사는 회식이 줄어든 현대사회에서, 코로나19 국면에서 분명 사양산업이었다. 모두가 뛰어들어 이미 포화상태가 된 플랫폼 시장에서 꾸역꾸역 몸을 움직였다.
200여 일의 근무 시간은 대체로 외로웠다. 일의 요령을 알려준 물류센터 계약직 아주머니가 있었고 손에 박카스를 쥐여준 배달 손님이 있었지만, 아무와도 이야기하지 않고 휴대폰을 붙들고 지낸 시간이 더 길었다. 대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뭐든 다 배달합니다’에는 이러한 그의 경험이 담겼다. 책이 출간된 지 열흘, 김하영 작가를 신촌 스터디룸에서 만났다. “요즘 배달 일이 다시 많아졌어요”라고 말하며 웃는 김 작가의 눈빛이 형형했다. 그는 ‘배민 커넥터’ 배지를 달고 손에는 헬멧을 들었다. 책이 나온 뒤에도 그는 여전히 플랫폼 노동을 하고 있었다.
#잘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직접 해보자’
Q. 플랫폼 노동에 뛰어든 계기가 뭔가요?
A. 원래 꽂히면 ‘해보자’ 하는 성격이에요. 다 그만두고 세계일주를 한 적도 있어요. 솔직히 말하면 ‘플랫폼 노동’이기에 가능했어요. 만약 현대자동차나 삼성전자에서 직접 일하면서 노동 현장 실태를 취재한다면, 취직부터 막혔겠죠. 이 일은 그냥 문자 한 통 보내면 돼요. 주민등록증을 찍어서 올리고 등록하면 배달을 할 수 있죠. 택배기사가 월 700만 원을 번다는 기사도 봤겠다, 어느 정도 생계를 꾸릴 순 있겠다고 생각했죠.
Q. 올해 초 터진 코로나19가 변수였겠어요.
A. 본격적으로 쿠팡 물류센터 일을 시작하고서 곧바로 대구에서 코로나가 확산됐어요. 변수였죠. 하지만 그 영향으로 플랫폼 일자리가 폭발적으로 늘었어요. 현장에는 갑자기 실직한 분들, 자영업자가 많아졌어요. 거리 두기 단계 상향으로 헬스장 등 운동센터 영업을 못 하게 된 트레이너도 많이 봤어요. 고용보험에 가입된 직장인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프리랜서와 자영업자들을 쿠팡과 배달의민족이 안은 거죠. 제가 그랬듯 누구나 일할 수 있으니까.
Q. 코로나19로 많은 부분 배달에 의존하게 되면서 위험을 외주화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코로나19 시대에 현장에선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요?
A. 코로나19를 떠나서 ‘안전’과 거리가 먼 일이에요. 길 위에서 오토바이를 탄다는 것 자체가 매우 위험한 거죠. 한 시간에 몇 건을 배달하느냐는 당장의 일당과 직결되기 때문에 배달 라이더에게 ‘신호를 지켜라’, ‘규정 속도를 지켜라’ 이야기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플랫폼 회사도 이미지 차원에서 안전 문제를 굉장히 신경 쓰지만 지금처럼 욕망을 자극하는 체제 속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 없죠. 시장이 커지고 진입자가 늘면서 계속해서 확장만 했는데, 이젠 브레이크를 걸고 노동자의 안전과 생계를 살펴야 하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Q. 책을 덮으면서 ‘외로웠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A. 이 일의 특징이기도 해요. 구조적으로 고독할 수밖에 없어요. 혼자 일을 한다는 개념을 넘어 서로가 경쟁자인 거죠. 콜은 한정돼 있고 진입자는 계속해서 늘죠. 서로를 동료라고 인식하기 힘들어서 단체나 노동조합 결성이 쉽지 않아요. 쿠팡 물류센터를 가도 마찬가지예요. 몇몇 고정 인원을 제외하면 매일 오는 사람이 바뀌죠. 아무도 일을 알려주거나 친절하게 도와주지 않아요.
Q. 플랫폼 노동의 문제가 드러나는 한편 초단기 일자리가 필요한 이들이 끊임없이 생겨납니다. 쿠팡이 올해 삼성, 현대차 다음으로 고용 규모 3위라더군요. 이 간극은 어떻게 보시나요?
A. 그게 플랫폼 노동에 뛰어든 가장 큰 이유에요. 쿠팡은 일용직, 계약직을 대거 채용하지만 그 일자리가 삼성, 현대자동차만큼 좋은 일자리는 아니죠. 이 형태의 일자리가 계속 늘어날 거라고 봐요. 쿠팡이 성장할수록 동네 마트와 대형 마트는 작아질 거고, 그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쿠팡으로 가겠죠. 가장 답답했던 건 이마트, 홈플러스가 생겨나던 시기에는 동네 상권의 반발로 영업일 규제 같은 사회적 대책이 나왔는데 플랫폼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동안 아무도 그들을 제지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기존 일자리를 대체하는 만큼 속도를 조절하고 사회복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데 전혀 안 되고 있는 거죠.
플랫폼이 만들어내는 일자리는 전통적인 ‘회사 중심의 정규직’ 혹은 ‘비정규직’이 아니에요. 프리랜서 일용직, 해외에서는 ‘긱 노동자'라고 하죠. 이들은 고용보험에 들 수 없고 대출도 안 돼요. 당연히 퇴직금도 없어요. 회사에 소속돼 최저임금 8590원을 받는 것과 프리랜서로 1만 원을 받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죠.
#숙련도의 공백은 ‘기술’이 채우는 플랫폼 현장
Q. 법과 제도가 일자리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A. 법이나 제도를 일률적으로 적용하기 힘들어요. 사업체, 사업장마다 노동 형태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보험이나 안전망을 국가가 정해서 ‘지켜라’고 하기에 어려움이 있죠. 또 하나는 ‘노동자는 자유롭고 플랫폼은 책임지지 않는’ 지금의 일자리 형태를 원하는 이들이 있다는 점이에요. 부업으로 하시는 분들은 그래요. 본업에 지장이 가지 않았으면 하는 거죠. 혹은 상황이 좋아지면 혹은 시험에 붙으면 돌아갈 곳이 있으니 이건 ‘부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아요. 플랫폼은 이 마음을 이용하고요.
그런데 플랫폼 노동도 숙련이 필요해요. 대리기사는 밤에 모르는 곳에 가서 운전하고 술에 취한 사람들을 상대해야 해요. 배달 노동자는 안전하고 빠르게 음식을 배달해야 하고, 물류센터에서는 카트에 물건을 효율적으로 쌓을 줄 알아야 하죠. 하지만 플랫폼은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부업으로 일하는 사람이 많길 원해요. ‘회사 입장에서도 직고용을 하든, 계약직을 늘리든 숙련자 수를 유지하는 게 이익 아닐까?’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일해보니 알겠더라고요. 숙련도의 공백은 기술이 채우고 있어요.
부업으로 일하는 사람의 수를 효율적으로 조정하는 것도 기술이죠. 수단은 수당과 포인트예요. 비가 오거나 날이 더우면 일하는 사람이 줄겠죠? 수당을 걸어요. 그럼 집에 있다가 ‘잠깐 해볼까?’ 생각한 사람들이 나와요. 그럼 다시 수요가 늘죠. 수당을 없애요. 친구를 데려오면 포인트를 주기도 해요. 잠재적 수요를 늘리기 위한 수단이에요.
Q. 책 말미에 ‘직업으로서의 일’을 인정하는 것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플랫폼 기업은 투잡, 알바로서의 일을 광고하고 이미지를 만들죠. 그 사이의 모순이 결국 핵심 아닐까요?
A. 맞아요. 플랫폼 노동의 많은 문제점은 본업과 부업의 구분이 잘 안 된다는 것에서 시작해요. 플랫폼 노동이 본업인 사람과 부업인 사람을 위한 정책이 달라야 하는 거죠. 본업으로 하는 사람이 늘어나는데, 기업은 부업의 이미지를 고집해요. 기본소득, 사회안전망 등 사회경제적 구조 변혁을 위해서는 ‘배달’을 전문적인 직업으로 여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해요. 결국 ‘사람이 사람을 위해 하는 일’이잖아요.
몇 년 전만 해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이야기했다면 이젠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에요. 고용을 안 하잖아요. 점점 더 격차가 벌어지고 있어요. 플랫폼 설계자와 현장 노동자의 격차만 비교해도 엄청나죠. 쿠팡에서 개발자를 모셔올 땐 5000만 원을 얹어주지만, 물류센터 현장 계약직 입사 축하금은 80만 원이에요.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면 다 해결될 거라고 했지만 그보다 더 풀기 어려운 문제가 현장에 있어요.
#‘플랫폼 인생’ 이해하기 위해 다시 길 위로
Q. 실제 1년간 소득은 어땠나요?
A. 형편없죠. 글을 쓰고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하는 등 여러 일을 병행해서 딱 잘라 말할 순 없지만 수입이 많지 않았어요. 배민 커넥트를 예로 들면 일주일에 20시간까지만 일할 수 있거든요. 한 시간에 넉넉히 1만 원을 잡아도 일주일에 20만 원을 넘기기 힘들죠. 주말에는 대리운전을 뛰는데 콜이 잘 없어요. 코로나19로 회식이 많이 줄어서 대리기사 시장이 완전히 죽어서, 카카오 대리기사 앱에 뜨는 콜 50개를 3000명이 보고 있죠. 여러 플랫폼 노동을 병행해도 한 달에 200만 원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도 이제 좀 숙련됐어요. 나아지겠죠.
Q. 한 해 동안 배운 게 있다면?
A. 잠을 푹 잘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이전엔 금요일 마감을 앞두고 월화수목 잠을 잘 못 잤어요. 이젠 로그아웃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해방인 거죠. 몸을 움직이니 잠도 푹 자구요. 또 하나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많아졌어요. 따뜻하게 ‘고맙다’라는 말 한마디 건네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가 자연스러워졌어요.
Q. 플랫폼 노동은 경제, 사회, 정치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기삿거리’입니다. 그 단편을 기록하는 이들에게 플랫폼 노동자로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1일 체험 기사를 쓰는 기자들도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직접 일을 하고 갖게 된 관심과 관점을 쭉 가지고 갔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일의 영역이 바뀔 순 있지만 사회부에서 경험한 내용을 정치부로 가면 정책으로 해석하는 등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Q,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요?
A. 플랫폼 시장은 시시각각 변해요. 이 책을 쓰고 편집하는 과정에서도 계속해서 새로운 플레이어가 등장하고 시장의 판도가 바뀌었죠. 한동안은 계속 이 일을 할 것 같아요. 여전히 기록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책이 됐든 다른 무언가가 됐든 남기겠죠.
정확히 10년 전인 2010년, 한 시사주간지 사회팀 기자들이 ‘4천 원 인생’이라는 책을 썼다. 직접 식당, 대형마트, 가구공장에서 한 달간 최저시급 노동자로 일한 기록을 남겼다. 지금은 ‘스마트폰 인생’이다. 스마트폰에 뜨는 콜을 눌러 실시간으로 일을 받는다. 최저시급보다 약간 높은 돈을 받으며 언제든 로그아웃할 수 있는데, 과연 4천 원 인생보다 나아진 걸까. 김하영 작가는 쿠팡 물류센터 피커맨, 배민 커넥터, 카카오 대리기사로 일하며 길 위에서 답을 찾고 있다.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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