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최근 네이버, 쿠팡, 이베이코리아 등 국내 주요 이커머스 업체들이 시장 주도권 확대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11번가가 아마존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고 파트너십을 체결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이른바 ‘한국판 아마존’ 자리를 둘러싼 왕좌의 게임이 더욱 열린 결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
그동안 국내 이커머스 기업들이 보여온 경쟁력 강화 양상을 살펴보면 아마존 벤치마킹에 초점을 맞춘 측면이 크다. 이들은 ‘롱테일’의 대명사가 된 아마존의 다양한 상품 확보 능력을 본받았을 뿐 아니라 결제, 물류는 물론 클라우드 컴퓨팅 등 인프라 강화에 이어 콘텐츠 연계 등 다방면의 거대한 생태계를 구축한 아마존의 이용자 락인(lock-in) 전략 벤치마킹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 가운데 11번가가 마침내 아마존과 손을 잡았다. 아마존이 오랜 시간 구축해 온 거대한 생태계를 공유 받아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한 셈이다. 이는 네이버, 쿠팡 등에게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또한 이번 파트너십은 그동안 아마존으로부터 안전했던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 아마존이 드디어 간접적으로나마 진출했다는 의미도 되기 때문에 여러모로 국내 이커머스 주자들은 예의주시할 일이다.
# ‘한국판 아마존’ 왕좌 두고 치열한 경쟁
국내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11번가의 모회사인 SK텔레콤은 최근 아마존과 전략적 제휴를 체결하고 투자유치를 추진, 3000억원 규모로 전환우선주(CPS) 투자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11번가는 내년부터 국내 이용자들에게 아마존 인기 직구 제품들을 빠르고 편리하게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11번가가 아마존의 상품들을 국내 물류센터에 보관하고 주문 접수 시 바로 배송하는 식으로 이용자들은 아마존에서 직접 구매하는 것보다 빠르게 제품을 받아볼 수 있으며 복잡한 관세나 환불의 불편함을 해결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기대다. 이런 1차적인 효과에서 나아가, 장기적으로 11번가는 아마존의 전방위적인 생태계 수혈 효과까지 노려볼 수 있다.
와이즈앱에 따르면 2019년 결제액 기준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네이버가 20조 9249억 원으로 1위, 쿠팡이 17조 770억 원으로 2위, 옥션과 G마켓의 이베이가 9조 8356원으로 3위며, 11번가는 9조 8356억 원으로 4위, 이어 위메프가 6조 2028억 원으로 5위다.
이들은 각각의 장점을 내세우고 자사에는 없는 경쟁사의 장점은 보강하는 식으로 시장 장악을 꾀했다. 네이버의 경우 최저가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검색기능과 자체 핀테크 역량 및 콘텐츠 역량 등이 강점으로 꼽힌다. 네이버 페이는 네이버 쇼핑에서뿐만 아니라 국내 주요 편의점들을 비롯해 전국 7만여 개 가맹점에서 이용할 수 있으며, 포인트를 적립으로 이용자 충성도를 크게 높였다.
이와 함께 월 4900원의 멤버십에 가입하면 4%의 추가 포인트를 적립해줘 이용율이 활발한 이용자들의 경우 월 정액보다 더 많은 적립금을 남길 수 있고, 웹툰, 음악, 영화, 오디오북, 클라우드 스토리지 등의 추가 혜택을 선택할 수 있다. 네이버는 최근 빠른 배송이 강점인 쿠팡을 의식한 듯 최근 CJ대한통운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물류 부문 보강 의지를 보여줬다. 이와 함께 ‘네이버 클라우드 플랫폼’도 갖추고 있다.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장악한 쿠팡은 월 2900원의 멤버십을 통해 추가 비용 없이 새벽 배송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등 저렴한 가격으로 빠른 배송이 특징인데, 경쟁자 네이버의 강점인 콘텐츠 생태계 보강에 투자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 7월 싱가포르 OTT 업체 훅(Hooq)을 인수했으며 지난달 정관 사업목적에 영상·음악 사업을 추가한 데 이어 '쿠팡스트리밍', '쿠팡오리지널', '쿠팡비디오' 등 영상 서비스 관련 상표권들을 출원한 바 있다. 이와 함께 스포츠 중계권 보유사들과 중계권 협상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11번가의 경우 모회사 SK텔레콤의 이동통신 이용자들의 멤버십 연계 및 5G 등 ICT 역량뿐 아니라 SK 계열사의 다양한 비즈니스들과 시너지를 낼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가령 OTT, 클라우드 게임, 라이브 커머스, 홈쇼핑 등과 연계할 수 있다. 여기에 아마존과의 협력으로 11번가는 아마존의 뛰어난 창고, 물류, 배송을 포함하는 ‘풀필먼트’ 역량 보강, 아마존의 클라우드 컴퓨팅 AWS 협력 강화 등의 이점을 챙길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범우주적 생태계 갖춘 ‘아마존 프라임’
국내 주요 이커머스 업체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아마존의 멤버십 서비스 ‘아마존 프라임’이 롤모델로 분석된다. 사실 국내 업체들이 갖춘 모든 요소들과 장점들을 다 합친다 해도 아직까지 아마존 프라임의 생태계에 견주기는 힘들다.
아마존 프라임은 유료 월정액 멤버십은 시간이 지날수록 혜택이 광범위하게 추가되어 락인 효과가 점점 강력해지는 게 특징이다. 처음에는 무료 배송 서비스로 시작하더니 OTT 서비스인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킨들 무료 도서,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인 프라임 뮤직, 클라우드 스토리지 서비스 아마존 드라이브 등을 속속 추가했고, 심지어 최근에는 두 시간 무료배송까지 등장했다.
최대 80% 할인도 제공하는 아마존 프라임 데이 행사도 회원 대상이다. 오디오 북 무료 서비스, 스트리밍 게임 트위치 프라임 등 혜택을 끝도 없이 늘려 왔으며, 지금도 계속 추가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 ‘루나’도 발표했는데 추후 아마존 프라임에 연계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어쨌든 아마존의 콘텐츠 생태계에 게임도 보강될 것으로 보인다.
아마존은 오프라인 무인 결제 매장 ‘아마존 고’를 오프라인 매장과의 시너지도 꾀하고 있으며, 자체 결제 시스템 아마존 페이가 있음은 물론이고 이제는 손바닥만 대도 자동 결제되는 정맥 인식 결제 시스템도 갖춰 아마존 프라임의 생태계에 든든한 백업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아마존은 일찌감치 자체 클라우드 컴퓨팅 AWS로 자사 비즈니스뿐 아니라 수많은 파트너사들의 IT 인프라를 제공하는 글로벌 1위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자이며, 드론 배송, 로봇 배송, 물류 작업 로봇, 가정용 AI 비서 등 이커머스 관련 첨단 기술을 통한 혁신에도 투자를 쏟아붓고 있으며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한국판 아마존’의 강력한 후보라고 불릴 만한 업체는 국내엔 아직 없다고 보는 편이 맞다. ‘중국판 아마존’이라 불리는 알리바바의 경우 이용자수, 클라우드 컴퓨팅 및 AI 등 IT 역량, 10억명 이용자를 갖춘 알리페이의 핀테크 역량 등을 갖춰 아마존과 견줄 만한 생태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업체들은 국내 고객들의 충성도가 높다는 점 이외에 글로벌 무대를 기준으로는 규모나 생태계의 범위 면에서 아마존에 견주기는 아직 턱없는 게 사실이다.
# 아마존 프라임 국내 서비스 과연 이뤄질까
결국 ‘한국판 아마존’이 되기 위해선 11번가처럼 아마존과 직접 제휴를 맺는 전략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 수 있다. 아마존의 거대한 생태계를 최대한 공유할 수 있게 된다면 말이다. 이미 그도 누구와도 비교가 안되는 막강한 생태계를 갖춘 아마존은 심지어 거의 무한의 영역으로 확장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판 아마존’을 꿈꾸는 국내 이커머스 업체들은 상거래, 결제시스템, 콘텐츠, IT 인프라까지 총체적으로 갖추고 멤버십을 기반으로 수많은 영역의 혜택을 제공하며 고객을 묶어두는 즉 아마존 프라임 같은 ‘라이프 구독’ 모델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역량을 키워나가고 있다.
아마존 입장에서는 11번가를 통해 그간 국내 업체들의 치열한 경쟁으로 진출이 쉽지 않았던 한국 시장을 뚫었다는 의미도 있다. 아마존은 이를 계기로 그동안 한국 이용자들에게는 별 매력이 없었던 ‘아마존 프라임’ 즉 영화, 게임, 도서 등 전방위적 콘텐츠 생태계를 품은 멤버십을 한국 시장에도 뿌리 내리겠다는 야심을 품었을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아마존의 역량을 필요로 하면서, 영향력 있는 한국 기업이기도 한 SK의 이커머스 기업 11번가와의 제휴는 서로 니즈가 분명하다. 국내 대기업 계열 주요 이커머스 기업이 아마존의 ‘넘사벽’ 생태계 역량을 수혈하게 된다는 점과 아마존이 국내 진출에 한걸음 내딛었다는 점, 이 두 가지 사실이 ‘한국판 아마존’ 자리를 향한 국내 이커머스 전쟁판에 어떤 변수가 될지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강현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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