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우리 사회는 여전히 실패에 인색한 편이다. 통계에 따르면 성인 중 절반가량이 파산·해고·이혼 등 인생의 ‘실패’ 한 번으로 낙오자로 전락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실수 없이 완벽한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성공한 이들이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실패의 경험이다. 비즈한국은 화려한 성공에 감춰진 경영인들의 실패 경험을 들어보고자 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우리 사회 전반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스타트업에겐 그야말로 ‘핵폭탄’이나 다름없었다. 투자사의 투자 계약 철회, 영업 중단, 매출 감소 등 여러 문제가 동시에 스타트업을 덮쳤다.
온디멘드 주차 대행 서비스 ‘잇차’ 운영사 마지막삼십분도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은 스타트업이다. 잇차는 이용자가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실시간으로 시간과 목적지를 입력하면 링커로 불리는 운전기사가 주차를 대행해주는 서비스다. 가입자 수는 7만 명, 실제 이용자는 8000명으로 추정된다. 100여 일 동안 주차 횟수는 1250여 건에 달한다. 종로, 강남, 홍대 주변을 사업 영역으로 설정해 주말에만 서비스를 운영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괄목할 만한 성적이다.
이용자들이 자차로 바깥 생활을 많이 해야 잇차의 매출이 늘어난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외부 출입을 급격히 줄이면서 잇차도 타격이 컸다. 올해 3월 계약서에 도장까지 찍었던 투자사가 계약을 철회했다. 3개월을 투자금 없이 보냈고,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때는 아예 영업을 중단했다. 고정비용 감축은 물론 직원 급여 삭감이라는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할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런데도 이정선 마지막삼십분 대표는 “현재 시제에 실패라는 단어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누구에게나 어려운 시기는 있다. 다만 이를 잘 버텨낸 후 나중에 돌아봤을 때 그 시절이 나에게 실패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실패라는 단어는 과거 시제에만 존재하는 단어”라고 말한다.
#사업계획서 12장으로 따낸 5억 5000만 원 “무섭고 불안했다”
Q. 업계에 ‘50만 불의 사나이’로 알려졌더군요.
A. 제가 잘한 게 아니라 운이 좋았습니다. 당시 저는 다국적 광고 회사에 다니는 10년 차 직장인이었어요. 저희 동네에 기술기반 스타트업을 운영하던 형들이 있었는데요. 두 사람 모두 공대 출신이라 마케팅에 대한 고민에 제가 도움을 주곤 했죠. 어느 날 한 형이 제게 주차 관련 사업계획서를 보냈어요. 영문 버전인데 한·중·일 동북아 시장 진출이 목표였어요. 한국 서울에서 시범 사업을 할 계획이더군요. 출처는 없었습니다.
검토해보니 사업 계획이 우리 환경과 맞지 않더라고요. 주차 관제 장비를 기반으로 사업을 하겠다는데 이미 국내 많은 업체가 이 모델로 사업을 하고 있었거든요. 심지어 이 사업을 하려면 최소 2조 원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스타트업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죠. 그래서 역으로 제안했어요. 서비스 기반으로 주차 사업을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계획서를 다시 형에게 보냈습니다.
Q. 그때 창업을 결심했나요.
A. 아니요. 10년을 한 직장에서 일하다 보니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 한 가지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로 무기력증·자기혐오 등에 빠지는 현상)에 시달렸어요. 이직도 사업도 아닌 휴식과 공부를 하려고 고민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획서를 보낸 건 피드백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어요.
며칠 후 형이 돈을 보냈더라고요. 오전 6시 40분쯤 입금이 된 거로 기억합니다. 제가 전날 밥을 사줬는데, 굳이 그 돈을 보냈나 하면서 모바일 뱅킹 앱을 켜봤어요. ‘55’까지 보고 5만 5000원이겠구나 싶었는데 뒤에 ‘0’이 더 있더라고요. 총 5억 5000만 원이 입금된 겁니다. 잘못 입금한 줄 알았어요. 형에게 곧장 연락했습니다. 투자금 들어와서 보낸 것이라더군요.
Q. 얼떨결에 투자를 받았군요.
A. 무섭고 불안했습니다. 사업계획서와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투자를 받은 거잖아요. 그것도 모르는 사람한테요. 게다가 저는 직장인이었어요. 퇴사도 해야 하고 동시에 창업 준비도 하려니 앞길이 구만리더라고요. ‘내가 이 돈을 받을 만한 사람인가’라며 끊임없이 의심하기 시작했어요.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눈 뜨면 출근이었고, 눈 감을 때까지 퇴근을 못 하는 것이죠.
그 투자자는 법인 설립하고 한 달쯤 지났을 때 처음 만났습니다. 사업도 한 번 안 해본 사람인 데다가 얼굴 한번 안 본 사람에게 문서 하나로 투자를 결심했냐고 물었습니다.
Q. 투자자가 뭐라고 하던가요.
A. “너는 실패해도 돼. 어차피 내가 투자한 곳의 9할은 망한다. 대신 너는 돈을 쓰는 동안 사람을 많이 남겨둬라. 그리고 네가 배운 것을 그 사람들과 공유해라. 너에게 또 다시 투자할 의향이 있다. 꼭 초기에 하려 했던 사업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말하더라고요. 자신감이 생긴 건 그때부터였어요.
Q. 사업을 자신감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A. 맞습니다. 정작 제가 주차 시장을 잘 모른다는 게 문제였어요. 진짜 발레파킹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문서와 현장은 다르니까요. 서울 논현동 근처에서 3개월 정도 일했습니다. 또 전수조사를 진행해 건물마다 평균 입차량에 따른 예상 매출을 산출해냈습니다. 그 결과 강남 3구만 약 4000억 원의 잠재적인 시장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이 사업이 ‘돈은 되겠다’고 느낀 순간이었어요.
발레파킹의 고질적인 문제인 불법 주정차와 결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도 고민했습니다. 결론은 플랫폼이었습니다. 투명성 있게 운영하기 위해 앱에 모든 것을 공개하는 거죠. 그 덕분에 종로를 시작으로 강남과 홍대까지 사업 영역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방향 바꾸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Q. 지금의 잇차는 최초 사업 모델과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A. 처음에 잇차는 이면도로나 주거지역에 있는 ‘거주자 우선 주차 구역’을 활용하려 했습니다. 거주자가 허용하면 그 공간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거든요. 사업을 하다 보니 이 공간을 링커(주차 대리기사)들이 찾아가 정확하게 주차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주차 구역으로 갔는데 이미 주차한 차량이 있으면 다른 곳을 찾아나서야 하고요. 시간도 낭비되고 링커들도 불편함을 호소하는 등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빠르게 방향을 바꿨습니다. 적자 구조의 민영 주차장을 100% 활용하고 있습니다.
Q. 어떻게 민영 주차장을 활용할 생각을 한 겁니까.
A. 서울 인사동 레지던스 호텔을 방문한 적이 있어요. 주말 오후였는데 주차장에 차량이 없는 걸 보고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주차 요금이 비싸서 투숙객 말고는 이 주차장을 이용하지 않으려 하더라고요. 호텔에선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빈 곳들을 이용해보겠다고 제안했습니다. 호텔은 만성 적자였던 주차장 사업을 흑자로 전환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 서울에 민영 주차장이 꽤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요금이 비싼 탓에 이용률이 저조하죠. 이는 적자로 이어지고요. 민영 주차장들의 빈 곳을 우리가 싼값에 이끌어와 순환률을 높이는 게 최신화된 잇차의 사업 구조입니다.
Q. 시의적절한 피보팅이었군요.
A. 업계에서는 피보팅(pivoting, 방향 전환)도 실패라고 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기존 사업의 방향성을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를 두려워해 피보팅 시기를 놓치는 것은 폐업의 지름길이라고 봐요. 물론 피보팅이 늘 성공을 가져오진 못하겠지만, 수정·보완이 없다면 성장도 없다고 생각해요.
Q. 또 다른 피보팅 사례가 있을까요.
A. 주차장을 바꾸는 것 외에도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직원들이 직접 링커를 이용자의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기도 했어요. 이동시간 줄이는 게 목표였거든요. 하지만 주말에 종로, 강남, 홍대는 차가 넘쳐납니다. 사람도 넘치고요. 우리가 데려다주는 것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훨씬 빠르더고요.
지금도 피보팅을 하고 있어요. 현재 잇차는 실시간 서비스만 운영 중입니다. 현 서비스의 가장 큰 단점은 출발 후 15분이 지나야 링커 매칭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매칭 실패가 최악의 경우입니다. 이용자는 운전 중에 다시 링커를 찾을 여유가 없기 때문에 수요가 사라지는 셈이죠. 이에 실시간 매칭 속도를 더 단축하고, 예약 서비스를 더할 생각입니다. 2021년 상반기 상용화를 목표로 알고리즘 개발에 열을 쏟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엔 ‘폐렴’ 수준인 코로나19…걸음마 뗀 잇차도 예외 없었다
Q. 올해 초 갑자기 들이닥친 코로나19로 많은 스타트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잇차도 타격이 컸을 텐데요.
A. 여러 가지 문제로 힘들었죠. 일단 투자가 끊겼어요. 종로를 시작으로 강남을 거쳐, 올해 3월 홍대에서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같은 달 시드 라운드(창업 아이템을 구체화하고 개발해 시제품을 생산하는 과정. 사업의 가능성을 입증하는 단계)를 끝내는 게 목표였습니다. 프리 시리즈A 투자 계약까지 마친 상황에서 코로나19가 들이닥쳤습니다. 타격을 받은 투자사는 계약을 철회했고, 저희는 다시 IR(Investor Relations, 기업이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벌이는 홍보활동)을 돌아야 했습니다. 전에 거절했던 투자사 문을 다시 두드리기도 했고요.
Q. 재정에 문제가 생겼겠군요.
A. 고정비용을 줄이려고 최선을 다했던 것 같아요. 회의 때마다 마시던 커피를 끊는 등 작은 것부터 실천했습니다. 아낄 수 있는 건 모두 아꼈던 것 같아요. 앞서 투자자의 말처럼 사람을 잃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다행히 3개월 만인 5월에 새로운 투자사를 만났습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6월부터는 제 월급까지 줄여야 하는 상황이었죠. 코로나19로 맞이한 첫 번째 위기는 그렇게 넘겼습니다.
Q. 두 번째 위기도 있었다는 말이군요.
A. 하반기에 코로나19가 다시 심각해지면서 사회적 거리 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됐을 때 사업을 잠정 중단했습니다. 잇차는 어쨌든 사람들이 차를 끌고 나와야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잖아요. 당시 이용자들을 밖으로 나오라고 유도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안 되는 일이었죠. 정부의 취지에 동참하고자 2~3개월을 쉬기로 했습니다.
Q. 한 달에 8일 영업하는 업체가 한 분기를 통째로 쉬다니 정말 타격이 컸을 것 같습니다.
A. 당장의 수익도 문제지만, 객관적인 데이터를 계속해서 수집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타격이 컸습니다. 3개월이라도 데이터를 쌓을 수 있는 날은 24일에 불과했으니까요. 그렇다고 평일로 영업일을 늘리기에는 인건비도 많이 들고 주말 수요와는 성격이 다를 것이 우려됐습니다. 마케팅하자니 이용자의 인식이 나빠질 것 같기도 했고요.
사업이 중단된 동안 우리 문제점의 해결책을 현실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사이 끊임없이 영업 문의가 왔어요. 그것을 데이터로 모으니 월평균 이용 횟수를 훨씬 상회하더라고요. 이후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내려가면서 10월 초 서비스를 재개해 유의미한 데이터를 빠르게 쌓아가고 있습니다.
Q. 사업 아이템을 흔히 ‘자식’으로 표현하는데, 첫 아이부터 고난과 역경을 많이 겪는 듯합니다.
A. 두 살 정도 된 것 같은데요. 코로나19로 힘들었지만, 다행히 걸음마는 뗀 듯합니다(웃음). 지금 진행 중인 과제가 상용화되면 말도하고 뛰어다니는 단계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용 데이터를 차근차근 확보해 다른 지역에도 적용해야 하고 갈 길이 멉니다. 쉬운 길은 아닐 겁니다.
모든 움직이는 물체는 언젠가 멈춰야 합니다. 머무를 곳이 필요하죠. 이를 누가 어떤 방법으로 머무르게 할지도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잇차는 아직 주차대행 서비스에 머물러 있지만 앞으로 많은 걸 시도하려고 합니다. 가령 주차된 동안 세차, 정비, 충전, 주유를 비롯해 차량의 현 시세까지 측정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Q. 이정선 대표에게 실패란 어떤 의미일까요.
A. 저는 현재 시제에서 실패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다고 봐요. 현재에는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합니다. 언젠가는 과거가 될 현재 상황이 실패로 기억될 것인지, 또 다른 성장의 밑거름이 될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저와 잇차, 그리고 마지막 삼십분은 후자를 위해 열심히 달려갈 겁니다.
박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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