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전 국민 무료 독감(인플루엔자) 백신 예방접종’이 화두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독감이 동시에 유행하는 ‘트윈데믹(twindemic)’을 막으려면 어느 정도의 접종률이 적당한 수준인지에 관심이 쏠린다. 일단 지금으로선 국내에서 백신을 생산하거나 수입하기는 힘들다. 전문가들은 전 국민이 독감 백신을 맞을 필요는 없다면서 무료접종 대상 연령을 넓히는 방법을 고려해볼 만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전 국민 무료 접종 vs 대상자만 무료 접종
전 국민 독감 백신 접종 논란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4차 추경 사업으로 발표한 전 국민 통신비 2만 원 지원 정책에 야당인 국민의힘이 전 국민 대상 독감백신 무료 접종 카드로 맞서면서 불이 붙었다. 일단 국회보건복지위원회는 국민의힘이 주장한 독감 백신 무료 지원안을 뺀 4차 추경안을 정부 원안대로 17일 의결했다. 해당 안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추가로 논의될 예정이다.
독감 백신 예방접종은 8일부터 시작됐다. 무료 접종 대상은 생후 6개월~만 18세 청소년, 임신부 및 62세 이상 등 고위험군이다. 올해는 중·고등학생인 만 13~18세와 만 62~64세도 무료 접종 대상자로 포함되면서 국민의 37%에 해당하는 1900만 명이 혜택을 받게 됐다. 올해 독감 백신 총 공급분은 국민의 57%에 해당하는 약 2950만 명분으로 무료 접종 대상이 아닌 나머지 1000만 명은 유료로 보건소나 민간의료기관에서 접종하면 된다.
민주당은 현재 정부가 확보한 물량이 최대치이며, 늦게 투여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효과가 없다고 주장한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도 17일 복지위 회의에서 “전 국민에게 백신을 접종하는 게 의료적으로 과유불급”이라고 선을 그었다. 반대로 국민의힘은 정부가 제약사에 비용을 주면 백신을 개발할 수 있다며 코로나19 상황에서 독감을 공격적으로 예방하자고 말한다. 국민의힘은 통신비 지원 예산을 독감 접종 예산으로 전환하자는 입장을 표한다.
독감으로 인해 코로나19가 확산하는 상황이 우려되기에 국민의힘의 입장을 지지하는 여론도 적잖다. 1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독일 막스플랑스 생화학연구소와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는 논문을 통해 “독감이 코로나19의 전파력을 2~2.5배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9일 밝혔다. 로버트 레드필드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도 8월에 “코로나19와 독감이 동시에 발생하면 최악의 가을이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전문가들 “올해 공급분만 모두 접종해도 충분”
그러나 전 국민 독감 백신 무료 접종은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전 국민이 독감 백신을 맞으려면 2000만 명분 백신을 더 구해야 하는데, 우선 국내에서 생산하는 방안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통상 독감 백신은 연간 판매량(접종량)을 예측하고 제조된다. 독감 백신은 원료로 사용되는 바이러스 균주를 유정란 또는 세포에서 배양(대량생산)하는데 여기에 수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갑자기 수량을 늘리기 어렵다”며 “백신 생산이 완료되면 접종시기가 이미 지날 것”이라고 했다.
해외에서 독감 백신을 수입하는 방안 역시 지금으로선 비현실적이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불가능하다. 해외에서도 자국민을 다 접종할 백신 물량이 없는데 어느 국가가 판매하겠느냐”며 “대부분의 국가가 전체 인구의 최대 60~70% 접종하는 생산량을 확보하는 것으로 독감 백신 전략을 짜고 생산량에 대해서는 이미 계약이 끝났다. 나라마다 몇십만 명분의 물량이 남을 수는 있는데 누가 모아서 언제 판매하겠느냐”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국내 백신 총 공급분만 다 소진해도 충분하다고 본다. 엄중식 교수는 “독감의 기초 재생산지수(전파력)는 1~1.5 정도다. 한 명이 감염되면 1~1.5명에게 전파한다는 말이다. 이 정도의 전파력은 전체 인구의 33~43% 정도에 항체가 만들어지면 국가 단위에서 큰 유행을 막는 데 성공한다고 본다”며 “올해 국내 독감 백신은 2900만 도즈(1회 접종량)다. 이걸 모두 접종했을 때 항체 형성률을 50%로 어림잡아도 전체 인구의 30% 이상이 항체가 생기므로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형식 대한인수공통감염병학회 회장은 “사회적 거리 두기와 마스크 착용으로 독감 바이러스에 대한 노출이 줄어들면서 자연적으로 면역력이 증강되기 힘들었을 것으로 보여 전파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하기는 힘들다”며 “다만 독감 고위험군을 포함한 국민의 50~60% 정도만 접종해도 효과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한 진단의학과 전문의도 “독감 백신을 반드시 맞아야 하는 계층을 제외하고 면역력이 정상적인 사람들에까지 굳이 예방 접종을 할 필요는 적다. 오히려 지금처럼 생활 속 예방의 실천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기모란 대한예방의학회 코로나19 대책위원장(국립암센터대학원 예방의학과 교수)은 “평소에는 우리가 확보한 독감 백신 물량을 다 쓰지 않고 남아서 폐기 처분을 많이 한다”며 올해 공급 물량을 다 접종하는 것이 중요함을 피력했다. 정부는 2018년과 2019년 각각 270만 도즈, 210만 도즈에 달하는 독감백신을 폐기한 바 있다.
이어 백신을 못 맞으면 큰일난다는 식의 주장도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기 위원장은 “백신을 전 국민이 무조건 맞아야 한다고 하면 만성 질환이 있거나 의료기관에서 종사하는 사람 등이 못 맞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오히려 의원에 방문한 사람들 중 만성 질환자는 꼭 맞아야 한다고 안내하는 편이 낫다”며 “백신의 효과가 100%라면 인구 60%만 맞아도 수학적으로 집단면역이 생긴다고 볼 수 있겠지만, 백신의 효과는 50~60%밖에 되지 않는다. 다만 독감은 집단면역보다는 마스크, 손 씻기 등으로 충분히 예방 가능하고 국가에서 타미플루(항바이러스제)도 1000만 명분 이상 비축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현재 정부는 국회의 4차 추경 논의 과정에서 무료접종 범위가 확대되리라 내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신형식 회장은 “여유가 있는 만큼 무료접종 연령을 60세나 55세로 낮추는 방안도 일리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무료 접종분을 제외한 분량에 대해 무료화하자는 데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나온다. 엄중식 교수는 “이미 민간 의료기관에 유통되는 물량을 국가가 회수해 다시 나눠주는 방안은 비현실적”이라고 꼬집었다. 우선순위를 정하기도 어렵다. 기모란 위원장은 “소득이 적은 취약 계층이 독감에 더 걸리는 것도 아닐뿐더러 소득이 적은 사람을 구분하는 것도 힘들다”고 말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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