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이국종 교수가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에서 근무했을 때, 이 곳에 업무 차 방문해 의료진들의 근무 일상을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의사 증원과 시설 개선이 시급하고 극심한 업무강도를 버텨내는 이런 의사들의 삶의 질과 금전적 보상이 상승해야 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 경험이었다.
한 나라의 의료 체계가 생명을 살리는 본연의 업에 걸림돌이 없는 구조로 정상화되려면 ‘필요한’ 곳에 인력과 예산을 늘리면 된다. 현 정부가 이를 위한 여러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공공과 시장의 영역이 공존하는 의료 서비스의 특성상 여러 이해 관계가 얽혀 있어 우여곡절이 적지 않다. 혹시 ‘로봇 의사’가 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 않을까?
#로봇, 의료 정상화에 필요한 요소들 제공
로봇 의사는 의료 정상화를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의사들의 강도 높은 육체노동 최소화 ▲비용 절감 ▲의료 서비스 품질 향상을 이뤄줄 수 있다. 그래야 병원도 적자를 면하고 의사도 충분히 벌면서 삶의 질도 올리고, 환자들 역시 저렴한 고품질 의료를 누리면서, 국가 예산 낭비도 최소화할 수 있는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된다.
로봇 의사들은 점차 AI 기술을 바탕으로 진단과 수술의 정확도 및 속도가 높아질 예정이다. 특히 로봇 의사들은 아무리 고된 반복 노동을 오래해도 지치지 않는다. AI 활용 시 간호사들의 생산성이 30% 이상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 액센추어는 오는 2026년까지 머신러닝이 절감해주는 헬스케어 비용이 미국에서만 연간 1500억 달러(약 177조 원)에 이른다고 전망했다.
의사 부족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만큼 각국 의료계가 AI와 로봇의 활용에 나서고 있다. 미국의 의대들은 오는 2033년까지 자국에 부족한 의사의수가 28,700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에 수술 로봇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으며 존스 홉킨스 대학 등에서 자율 수술 로봇을 연구하고 있다.
중국은 엄청난 인구수에 비해 의사 수가 매우 적어 AI 로봇 의사 도입에 매우 적극적이며, 지난 2018년 로봇 의사가 의사 시험을 실제로 통과한 사례도 있다. 포레스터 리서치에 따르면 중국 내 의료 기관의 17%가 3년 내 의료 로봇을 들일 계획이다.
인도 역시 거대한 인구가 충분한 의료를 누리지 못하는 실정인만큼 인도 내 AI 및 로봇 기반 의료 연구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중동 지역에서도 올해 코로나19 발병 이후 원격 의료 및 가상 병원 사례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로봇 개가 코로나19 비대면 진료
코로나19의 매우 높은 전염율은 환자와 의료진의 건강을 모두 보호해주는 시스템의 필요성을 부각, 의료 현장 내 로봇 활용의 수요를 높이고 있다. 방역을 위한 병실 소독 자율 주행 로봇, 체온 측정 로봇 등이 가장 흔한 예다.
최근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험한 일 전문 로봇 개 ‘스팟’이 이번에는 의사로 변신한다는 소식도 들렸다. 보스턴 다이내믹스, MIT, 브리검 여성의원은 스팟을 비대면 진료에 쓰기 위해 맥박, 호흡, 체온 등 생체 신호를 측정하는 ‘바이털캠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를 장착한 ‘닥터 스팟’은 2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사람의 생체 신호를 측정해 혈중 산소 포화도 등을 알 수 있으며 코로나19 같은 전염병 진단 등에 활용할 수 있다. 스팟은 원격 조정 기능도 갖출 예정이라
조만간 병원에 투입되면 옆에 의료진 없이 로봇 개 혼자 회진을 돌아다니는 광경을 보게 된다.
하지만 이 정도는 미래의 로봇 의사들이 보여줄 눈부신 활약에 비하면 걸음마 수준의 기능일 뿐이다.
이번에는 로봇 의사로 변신하는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험한 일 전문 로봇 개 ‘스팟’ 사진=MIT 제공
#인공 피부로 촉각 느끼는 수술 로봇 나온다
싱가폴 국립대학은 인텔과 손잡고 사람처럼 손으로 촉각을 느끼는 인공 피부를 개발하고 있다. 현재 의사들은 신체 내 기관과 조직, 종양을 구분하고 찾을 때 손의 촉각을 이용한다. 이런 촉각을 가진 인공피부를 로봇의 손가락에 장착해 수술 집도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이 인공피부를 입힌 로봇 손가락은 초기 실험에서 실제로 비슷한 모양의 두 물체간 더 부드러운 물체를 눈 깜박임보다 10배 빠른 속도로 구분해냈다. 의사는 원격으로 이 로봇을 조종해 조직이나 종양을 구분하고 잘라내는 등의 수술을 할 수 있고, 로봇이 느끼는 촉감을 그대로 의사도 느낄 수 있다는 게 싱가폴 국립대학의 설명이다. AI 칩도 탑재된 이 인공피부는 1평방미터당 100개의 센서를 갖췄고, 와이어를 통해 신경구조와 유사한 칩에 연결되며, 데이터를 이용한 머신러닝을 통해 더 정교해질 수 있다.
존스 홉킨스 대학이 개발한 수술 로봇 ‘스타’. 장을 꿰매고 봉합하는 결장문합술을 의사 대신 집도한다. 사진=존스 홉킨스 대학 제공
#정확한 간격과 장력으로 내장 꿰매고 봉합
미국의 존스 홉킨스 대학은 워싱턴 D.C.에 있는 어린이 병원과 함께 결장문합, 즉 장을 꿰매고 봉합하는 로봇 ‘스타’를 개발하고 있다. 이런 수술은 대체로 15~20바늘 정도 필요한데, 한 바늘이라도 부족하거나 꼼꼼하게 봉합하지 못하면 치명적인 감염의 원인이 된다. 로봇의 정확성으로 이러한 사고를 막을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머신러닝 기능이 있는 스타는 조직의 움직임을 탐지하고, 모터의 힘으로 수술을 집도하며, 환자의 호흡을 감지해 알맞은 타이밍에 봉합을 수행한다. 이론상 스타는 봉합실의 간격 유지, 장력 등에 있어서 인간 능력을 넘어선다. 물론 지치지 않는 것도 사람보다 나은 점이다.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가 개발한 뇌 칩 삽입 수술 로봇은 전문가들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사진=뉴럴링크 유튜브 캡처
#장기 삽입 튜브도 알아서 길 찾아
이 외에도 보스턴 어린이 병원과 하버드 의대는 로보틱 카테터(Catheter)를 개발했다. 카테터는 장기 내에 얇고 유연한 튜브를 삽입해 해당 기관의 내용액을 배출하거나, 또는 장기로 약액을 주입하는 용도로 쓰인다. 머신러닝 알고리즘과 연결되는 이 카테터는 햅틱 비전 센서를 이용해 초소형 카메라가 생성하는 이미지를 통해 치료 대상 장기에 도착했는지, 혈액에 닿았는지 등을 알 수 있고 카테터가 올바른 기관에 도착하면 의사는 누출 부위 수선 작업 등 착수할 수 있다. 즉, 의사는 환자 신체 내 카테터의 탐색 작업을 로봇에 맡기고 핵심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최근 일론 머스크의 뇌 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업 뉴럴링크는 뇌에 질병 치료 등의 목적을 가진 칩 ‘링크’을 심는 수술 로봇을 최근 선보였다. 이 수술 로봇은 1시간 내에 두개골 안쪽에 동전만한 칩을 고통없이 삽입해준다. 뉴럴링크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 수술 로봇 만큼은 호평을 받았다.
#노동력 덜어주지만 주도권은 여전히 사람 의사에게
이 같은 현황들을 정리해 보면, 아직 의료 로봇들은 주로 의사와 간호사들을 보조하고 있지만 미래에는 파트너 정도로 올라갈 것으로 보이며, 종국에는 진단, 상담, 수술까지 맡을 전망이다. 의사의 고된 육체 노동을 덜어주고, 데이터 축적에 따른 머신러닝을 통해 정밀도가 점점 올라가 의료 서비스의 오류도 크게 줄이고 품질도 향상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사람 의사가 주도권을 갖고 진두지휘하는 것은 변함없어 보인다. 그래도 혹시 로봇과 AI가 일자리를 뺏을까 걱정된다면, 일론 머스크의 AI 관련 조언을 떠올려보자. “If you can’t beat em, join em(만약 그들을 이길 수 없다면, 그들에게 합류하라)”
끝으로 코로나19로 올해 고된 삶을 견뎌내고 있는 대한민국 의료진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정부와의 의료 정책 관련 소통도 성숙하고 합리적인 마무리 기대한다.
강현주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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