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인류 문명은 수많은 질병을 정복했지만 여전히 각종 희귀 난치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은 적지 않다. 질병은 국적과 인종을 가리지 않는다. 21세기 글로벌 시장에서 신약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요 제약사들은 과연 어떤 신약을 준비하고 있을까. 또 반대로 기다리는 환자들이 많은데도 쉽게 신약이 나오지 않는 배경은 뭘까. 비즈한국은 국내외에서 높은 관심을 받는 신약을 소개하고 개발 현주소와 전망을 알아본다.
치매 환자와 보호자들 사이에서 ‘알벤다졸’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치매 어머니를 돌보는 한 보호자는 “엄마가 치매 증세가 심해져 새벽까지 온갖 욕설에 시달렸다. 그런데 어제 알벤다졸 2알을 먹였더니 바로 증세가 없어졌다”고 했다. 알벤다졸은 기생충 감염을 치료하는 목적으로 개발된 사람용 구충제다. 일부 치매 환자와 보호자들이 동물용 구충제 펜벤다졸을 복용하던 상황에서 펜벤다졸이 항암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며 품귀현상을 빚자 비슷한 화학구조를 가진 알벤다졸로 관심이 쏠린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대한의사협회는 알벤다졸을 기생충 감염이 아닌 다른 질환 치료에 사용하면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21일 경고했다. 하지만 치매 환자와 보호자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치매 환자와 보호자들이 기존 치매 ‘치료제’에 일종의 한이 서려 있어서다. 한 요양보호사는 “치매 환자들이 약을 먹어도 그저 죽음을 조금 늦출 뿐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했다. 이영우 한국치매협회 교육분과위원장도 “치매 약의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치매를 앓는 어머니가 약을 먹으면 어지러워서 일주일 동안 거동을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치매 치료제에 대한 요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50년께 전 세계 치매 환자가 1억 5000만 명에 달할 것이라 예상했다. 국내외 제약사들 역시 ‘치매와의 전쟁’에 한창이다. 그러나 신약 개발 소식은 좀처럼 들려오지 않는다. 다국적 제약사가 허가받은 신약은 2003년 독일 머츠의 ‘나멘다’가 마지막이다. 지난해 11월 중국 그린 밸리가 경증에서 중증 치매 환자들의 인지기능을 개선하는 ‘주치이’에 대해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지만 그 효과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FDA 승인받은 치매 신약, 전 세계 딱 네 개
현재 전 세계에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치매 치료제는 네 개에 불과하다. 신경전달물질 아세틸콜린이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아세틸콜린 분해효소 억제제’ 성분의 도네페질·리바스티그민·갈란타민과, 중증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에게 처방되는 ‘NMDA 수용체 길항제’다. 1996~2003년 사이 허가된 이 치료제들은 이미 특허가 만료됐다. 국내 제약사들은 이 치료제들의 제형 등을 약간 바꾼 제네릭(복제약)만을 앞다투어 출시 중이다.
그러나 이 치료제들은 모두 치매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게 아니라 ‘증상 완화’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 치매가 ‘서서히 죽어가는 병’이라 불리는 이유다. 치매는 원인이 다양하고 20~30년 동안 서서히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제대로 원인을 규명하기 어렵다. 치매의 가장 흔한 원인 질병인 알츠하이머병 역시 원인이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치매에 대한 가설도 다양하다. 지금까지는 뇌에 신경세포 표면에 붙어있는 베타 아밀로이드가 축적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지난 1월 뇌 신경세포 안에 있는 타우 단백질이 엉키는 현상이 치매의 주된 원인이라는 가설이 등장해 주목을 받았다.
환자들이 치료제에 들이는 비용은 치매 치료 관리 비용에 비해 그리 높지는 않다. 중앙치매센터가 2017년 발간한 ‘대한민국 치매현황 2017’에 따르면 치매 환자의 관리비용은 1년 기준 2054만 원인 반면 약제비는 141만 원이었다. 다만 효과가 크지 않은 약을 장기간 먹어야 한다는 점에서 불편함이 크다. 이동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정책팀장은 “신약이 나오지 않는 이상 비용이 많이 든다고 볼 수는 없지만 지금은 진정한 치료제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전 세계 제약사는 ‘치매와의 전쟁’ 중
글로벌 제약사들은 치매 신약 개발에 열심히 뛰어들었다. 그러나 번번이 임상시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결국 2018년 미국의 화이자는 치매 신약을 더 이상 개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같은 해 베링거인겔하임 또한 임상 2상에서 유효성을 입증하지 못해 신약 개발을 중단했다. 주사제 형태의 치매 신약후보물질 ‘아두카누맙’을 개발 중인 미국의 바이오젠은 지난해 3월 임상 3상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다가 10월 임상을 재개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효과가 크지 않아 (FDA가 허가해줄지) 회의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국내 제약사들도 치매 치료제 개발을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 특히 동아에스티와 일동제약은 식물이나 동물의 천연물에서 추출해 개발한 천연물 신약에 대한 임상에 적극적이다. 동아에스티는 전임상 단계에서 미국 뉴로보에 치매 천연물 신약물질을 수출했고 일동제약은 국내에서 1449명을 대상으로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천연물 신약이 아니더라도 올해 신약 임상 결과가 나오는 국내 기업만 크게 세 곳이다. 아리바이오는 치매 신약 후보물질에 대한 미국 임상 2상, 젬백스는 국내 임상 2상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탯줄 내 혈액의 줄기세포로 만든 ‘뉴로스템’에 대한 메디포스트의 국내 1·2a상 결과 발표가 예상된다.
패치형 치매 개량 신약을 통해 치매 시장을 주도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개량 신약은 오리지널 신약과 성분이 유사하지만 약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물성이나 제형을 바꾼 약을 말한다. 지난해 11월 SK케미칼은 리바스티그민 성분의 치매 치료 패치로 FDA의 판매 허가를 받았다. 이 약은 하루에 한 번 피부에 붙여 약물을 전달하는 치료제인데, 국내 제약사 중에서는 최초로 허가받았다. 셀트리온과 아이큐어도 치매 환자들이 가장 많이 복용하는 도네페질 성분의 패치에 대해 국내와 글로벌 임상 3상을 공동 진행 중이다.
업계에서는 국내외에서 획기적인 치매 신약이 나오기까지는 최소 5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본다. 때문에 현재로서는 치매 원인을 규명할 수 있을 만큼 연구 수준을 높이고, 몸속 세포나 DNA를 이용한 바이오마커를 통해 치매 진단을 빨리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치매 초기부터 환자의 인지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관리가 더욱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영우 위원장은 “치매는 최소 10년간 약을 먹어야 한다. 약의 효과가 불분명하다면 평소 뇌를 자꾸 사용하게 하는 건강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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