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우리나라 바이오벤처가 연구 개발한 신약을 시장에서 만나는 일은 불가능할까. 신약후보물질을 발굴·개발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시판허가를 받은 국내 바이오벤처는 SK바이오팜이 유일하다. 지난해 11월 SK바이오팜은 독자 개발한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에 대해 FDA 시판 허가를 받았다. 다만 SK바이오팜은 SK 자회사로 모기업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는 점에서 다른 바이오벤처와는 다소 결이 다르다.
바이오벤처 창업 열기는 뜨겁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가 발간한 ‘국내 바이오 중소·벤처기업 현황’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에 창업된 바이오벤처 수는 2312개에 달한다. 1990년대 중반 200곳이 채 안 되던 것에서 2000~2002년 ‘바이오벤처 붐’을 맞으며 600개가 설립됐다. 그 후 매년 200개 안팎의 기업이 새로 등장했고 2015~2017년에는 1000개가 넘는 바이오벤처가 탄생했다.
그럼에도 바이오벤처가 자체 개발한 바이오 신약이 시판허가를 받았다는 소식은 좀처럼 들려오지 않는다. FDA가 아닌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로부터 판매허가를 받은 바이오신약은 30개인데, 이 약들을 내놓은 기업 역시 2003년 5월 관절염 신약 ‘아피톡신주’를 허가받은 구주제약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본력이 있는 제약사다. 순수 바이오벤처가 신약 개발에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비즈한국은 바이오 중소·벤처기업 실무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벤처기업이 신약 개발? 솔직히 그거 불가능해요”
“솔직히 말하면 신약후보물질을 연구 중이라 해도 그 물질이 임상을 거쳐 신약으로 허가받아 제품 출시까지 이어지는 가능성을 높게 보는 기업은 거의 없어요.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쉽게 신약 출시에 실패하는 경우는 아주 적어요. 성공할 가능성이 낮아도 일단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고 하면 투자를 받거나 회사 상장을 할 수 있으니 그걸 노리는 거죠. 성공 가능성을 40~50% 예상하더라도 무작정 연구개발을 진행하는 이유죠.”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만난 바이오제약 중소기업 한국코러스제약 관계자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신약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바이오벤처가 많지만 결과적으로 허가받는 신약이 없는 이유에 대해 그는 국내 바이오벤처 사이에서 ‘신약 시판허가’를 목표로 하는 기업 자체가 극소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국내 바이오벤처가 임상 도중 개발 중단을 하나의 ‘전략’으로 삼고 있다는 얘기다.
국내 바이오벤처가 자체 신약 개발에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신약을 개발해 소비자들 사이에서 입소문만 타면 막대한 부와 명예를 모두 얻을 수 있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는 제네릭(복제약)이 많은데 제네릭은 특허가 만료된 약을 커버해 원래 있던 시장 크기를 나눠 가져야 한다. 반면 비알코올성 지방간이나 근감소증처럼 환자의 수요가 있는데도 치료제가 없는 시장에 진입하면 선도 기업이 돼 수익을 많이 창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바이오 중소·벤처기업이 신약 개발 완료 및 판매 허가를 받기 어려운 데는 이유가 있다. 바이오벤처가 임상 단계를 통과하기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이다. 대개 신약을 개발하려면 10~15년 동안 1조 원이 넘는 돈을 투입해야 해 중소·벤처기업이 감당하기엔 부담스럽다. 게다가 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받기 위해서는 병원에서 임상시험을 실시해야 하는데 이때 병원이 ‘갑’, 제약사가 ‘을’이다. 따라서 병원이 요구하는 비용이 합당하지 않은 듯해도 지불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임상 과정을 함께 설계하고 조언해주는 기관이나 전문가가 있으면 그나마 낫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회사 내 전문 인력이 부족하고, 민간이나 정부 프로그램도 한계가 있다. 앞서의 실무자는 “의약품 사전검토제도(의약품 품목허가를 받기 전 식약처가 필요한 자료에 대해 미리 조언해주는 제도)나 컨설팅 프로그램이 있지만, 큰 그림에서만 조언을 해주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제약업계 다른 관계자는 “민간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에는 임상을 다 거쳐본 전문가가 없기 때문에 바이오벤처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의견을 표했다.
#신약후보물질 기술수출도 성공 보장 못해
그러다 보니 국내 바이오 중소·벤처기업은 신약후보물질 임상과 개발을 목표가 아닌 하나의 수단으로 인식한다. 연구개발에 강점이 있는 바이오벤처는 신약 개발 중간 단계에서 기술수출(라이센스 아웃·License Out)로 잭팟을 노리는 기업이 많지만, 기술수출이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다국적 제약사와 기술수출 계약을 맺었더라도 계약금 중 대부분이 개발과 판매에 성공해야 받을 수 있는 조건부 금액이기 때문이다. 대형 제약사와 협업할 기회를 잡지 못한 벤처기업은 신약 개발 및 출시 타이밍을 아예 놓쳐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산업적으로나 환자 입장에서 국내 바이오 중소·벤처기업이 획기적인 신약 개발에 도전하는 것 자체는 긍정적이다. 때문에 바이오벤처도 신약 개발을 완료해 품목 허가까지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의 실무자는 “공공기관을 설립해 자격을 제한하더라도 좀 더 저렴한 비용으로 임상시험을 실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또 연구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정부 연구과제가 있지만 각 임상 단계를 거칠수록 새롭게 평가받아야 해 지원에 한계가 있다. 전주기 프로그램을 기본 개념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바이오벤처가 임상 과정에서 좌초하는 상황을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해 신라젠 ‘펙사벡’, 헬릭스미스 ‘엔젠시스’, 메지온 ‘유데나필’은 임상 도중 차질을 빚었다. 지난해 7월 다국적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에 특발성 폐섬유증 신약후보물질을 1조 원 규모로 기술수출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의 이정규 대표는 “미국에서 바이오벤처들이 자체 개발한 신약을 허가받을 수 있는 이유는 신약 개발 역사가 60~70년 정도로 길기 때문이다. 반면 제네릭에 집중하던 우리나라는 불과 몇 년 되지 않았다”며 “실패 확률이 높은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김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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