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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대한적십자사, 헌혈자 1704만 명 개인정보 '당사자 동의 없이 영구보관'

헌혈부적격자 1787만 명 정보도 영구보유…적십자사 "수혈 부작용 추적 위해 필요"

2019.10.11(Fri) 10:43:01

[비즈한국] 비즈한국 취재 결과, 대한적십자사가 헌혈자 약 1700만 명에 대한 개인 민감 정보를 ‘영구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정보에는 헌혈자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직장명은 물론 민감한 질병 정보까지 포함된다. ​문제는 적십자사가 이에 대해 헌혈자의 동의를 제대로 구하지 않았다는 것. 호주, 싱가포르 등 해외 각국에서 적십자사가 보관하던 헌혈자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전례도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비즈한국 취재 결과 대한적십자사는 현재 헌혈자 1704만 명에 대한 개인 민감 정보를 ‘영구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적십자사가 이에 대해 헌혈자의 동의를 제대로 구하지 않았다. 사진=대한적십자사 홈페이지


대한적십자사 홈페이지에 공개된 ‘대한적십자사 개인정보파일’과 ‘개인정보파일 관리대장’에 따르면, 대한적십자사는 2019년 3월 25일을 기준으로 헌혈자 약 1704만 명에 대한 개인정보를 영구 보유하고 있다. 이 정보에는 이름·주민등록번호·키·몸무게·혈액형·직업·주소·연락처·과거 헌혈 경력은 물론 헌혈 검사 결과도 포함된다. 헌혈 검사 결과는 매독, 이른바 성병 감염 여부까지 표기된 상당히 민감한 정보로 분류된다. 여기에 더해 헌혈자가 제공한 경우에 한해 직장명, 이메일, 지문도 함께 보관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는 헌혈부적격자 약 1787만 명의 개인 정보도 보유하고 있다. 보유 기간은 역시 ‘영구’다. 대한적십자사는 헌혈자와 동일하게 헌혈부적격자도 이름·주민등록번호·주소·연락처·과거 헌혈 경력 및 검사 결과를 보관 중이다. 다만 대한적십자사가 보관하는 헌혈부적격자 정보에는 부적격사유·부적격 항목번호·상세사유·부적격일이 추가로 포함된다. 대한적십자사가 보유한 헌혈자와 헌혈부적격자 간에는 중복인원이 존재한다. 지난해 헌혈을 했을지라도 올해는 건강 상태 등에 따라 부적격자로 분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적십자사는 2019년 3월 25일을 기준으로 헌혈자 약 1704만 명에 대한 개인정보를 영구 보유하고 있다. 이 정보에는 이름·주민등록번호·키·몸무게·혈액형·직업·주소·연락처·과거 헌혈 경력은 물론 헌혈 검사 결과 등이 포함된다. 사진=대한적십자사 ‘개인정보파일 관리대장’ 캡처


#유일한 동의 창구 ‘헌혈기록카드’ 내용 부실, 헌혈자들 “몰랐다”

 

대한적십자사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보건의료시민단체 건강세상네트워크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대한적십자사는 헌혈자와 헌혈부적격자 정보를 ‘혈액관리업무기록’으로 지정해 영구 보유 중이다. 이때 대한적십자사가 동의를 구하는 창구는 헌혈자가 헌혈 전 작성하는 ‘헌혈기록카드’가 유일하다. 대한적십자사는 “헌혈기록카드 외 별도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문제는 헌혈기록카드에 ‘대한적십자사가 개인 민감 정보를 영구적으로 보관한다’는 내용이 제대로 명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헌혈기록카드의 동의서에는 “헌혈자의 민감 정보 및 고유식별정보(주민등록번호 등)의 처리가 가능하며 혈액관리업무 이외의 다른 목적에 사용 또는 공개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를 헌혈자의 민감 정보가 영구 보관된다는 것으로 해석하기는 무리가 있다. “내가 헌혈한 혈액이 최소 10년간 보관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는 문구 또한 마찬가지다.

 

헌혈자들은 본인의 민감 정보가 영구적으로 보관되고 있다는 점을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헌혈을 수십 번 했다는 구 아무개 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헌혈을 23번이나 했는데 내 검사 결과나 직업 같은 개인정보가 영구 보관되는지 몰랐다. 특히 원하지 않는 검사 결과가 나오거나 특정한 이유로 헌혈을 하지 못한 사람은 평생 보유된다는 사실을 알면 정말 찜찜할 듯하다”고 말했다. 헌혈한 적은 없지만 관심이 있다는 김 아무개 씨는 “한동안 특이혈액을 노리는 인신매매가 있다는 괴담이 돌았다. 만약 유출되면 어떡하느냐”며 “내가 그 피를 가진 사람이면 괜히 무서울 것 같다”고 의견을 표했다.

 


대한적십자사가 동의를 구하는 창구는 헌혈자가 헌혈 전 작성하는 ‘헌혈기록카드’가 유일하다. 문제는 헌혈기록카드에는 ‘대한적십자사가 개인 민감 정보를 영구적으로 보관한다’는 내용이 제대로 명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진=헌혈기록카드 캡처


이동찬 법무법인 오현 변호사는 “개인의 어떤 정보가 몇 년간 어떻게 보관되는지 제대로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헌혈기록카드에는 그러한 내용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혈액관리법 제12조와 시행규칙에는 ‘혈액 기록 등은 10년 동안 보관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최소 10년이라 해석할 수도 있지만 이것이 영구 보존해야 한다는 법적 근거가 될 수는 없다”며 “관련법이 여러 개 있을 때는 최소주의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개인정보보호법에도 보유기간이 지난 정보는 파기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고 설명했다.

 

#개인 민감 정보 영구 보존, 타당한 근거 있을까

 

이처럼 대한적십자사가 헌혈자와 헌혈부적격자의 민감 정보를 영구 보존하는 것을 두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정보가 유출될 경우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5월과 2016년 싱가포르와 호주 적십자의 웹 사이트가 해킹돼 헌혈자들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기본권이 과도하게 침해되고 개인정보가 오·남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러한 이유로 지난 2018년 헌법재판소는 ‘화성연쇄살인사건’에서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었던 실마리가 된 ‘DNA(유전자)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DNA법은 수사기관이 범죄자의 DNA를 채취하고 보관할 수 있게 한 법이다.

 

대한적십자사는 헌혈자나 헌혈부적격자의 제대로 된 동의 없이 정보를 영구 보유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대한적십자사 측은 “헌혈기록카드 외 별도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 업무개선을 위해 보건복지부로 관련 법령 개정 및 검토 요청을 한 상태”라며 “채혈금지대상자 여부 확인, 헌혈증서 사용관련 수혈비용처리 등 원활한 혈액관리업무를 위해 영구 보존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한적십자사는 헌혈자나 헌혈부적격자의 제대로 된 동의 없이 정보를 영구 보유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사진은 헌혈하는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특히 대한적십자사는 혈액관리법 제10조 제2항과 혈액관리법 시행령 제10조의2를 제시하며 헌혈자 및 헌혈부적격자 정보의 영구 보유가 타당하다는 입장을 표했다. 해당 법은 ‘보건복지부장관은 특정수혈부작용이 발생한 경우 실태조사를 해야 하고, 혈액원 등은 실태조사에 협조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수혈 부작용이 발생한 경우 그 원인을 추적하기 위해서라도 헌혈자나 헌혈부적격자의 개인정보를 영구 보관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부작용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개인 정보를 영구 보관한다는 발상은 행정 편의만 우선시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혈액은 대부분 채혈 후 최대 1년까지 보관하게 돼 있다.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채취한 혈액은 ​수혈자에게 ​빠른 시일 내에 공급되고, ​부작용은 대체로 수혈 후 곧바로 발생한다. ​따라서 부작용을 추적 조사하기 위해 개인 민감 정보를 영구 보유하기보다는 혈액을 안전하게 유통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현행 의료법과 개인정보보호법은 10년이 지나면 ​의료기관이 환자의 의무기록을 ​파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재천 건강세상네트워크 운영위원은 “헌혈자의 혈액정보는 민감도가 상당히 높은 건강정보인데 적십자사가 불명확한 법적 근거를 가지고 정보 주체의 동의도 없이 영구 보존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적십자사가 혈액정보 관리에 허술하다는 방증 아니겠나”고 비판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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