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최근 하나투어의 현지 협력여행사들에 대한 갑질과 이중장부의 존재가 불거지면서 하나투어 대표가 사과문까지 발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김진국 하나투어 대표는 지난 18일 “뉴스에서 제기한 각종 의혹에 대해 조치를 취하고 있다. 투명하고 철저한 조사가 되도록 외부 전문 조사인도 선임했으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과거의 문제를 개선하고 관리 프로세스를 강화하겠다”고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전 세계에 포진해 있는 하나투어 협력사들은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중장부 사태에 가담한 관련자들을 징계한다”는 하나투어의 발표에도 현지 협력사들은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왜일까?
하나투어 이중장부는 하나투어와 현지 여행사(랜드사) 간에 맺은 계약서상의 금액과 실제 지급한 지상비 지급금이 다른 데에서 기인한다. 계약서에는 랜드사에 지상비 100만 원을 지급한다고 명시했지만 실제로는 상황에 따라 70~90%만 지급하고 나머지 금액을 유예하는 것. 이것을 공식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팀별로 월이나 분기별로 ‘적당히’ 랜드사와 거래하는 형태다. 이 ‘거래’의 빌미는 ‘물량’이다. 하나투어 랜드사 관계자는 “랜드사가 지급금을 유예해주지 않으면 하나투어에서 오는 물량이 줄어들거나 없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암묵적인 거래다. 이 관계자는 “IMF 사태 이후 환율이 치솟고 한국 아웃바운드 여행 시장이 급격히 어려워지면서 미지급금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후 2010년대 들어 미지급금은 10여 년간 공공연히 계속돼온 일”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그렇게 유예한 미지급금을 계속 미루고 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단체여행객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미지급금은 계속 쌓이지만 현금이 계속 돌기 때문에 랜드사 입장에서도 이 거래를 쉽게 끊을 수 없다. 현지에서 호텔을 미리 잡아두고 차량과 가이드를 계속 돌리기 위해선 여행객이 끊기면 안된다. 위의 랜드사 관계자는 “수익이 남든 안 남든, 업을 지속하려면 미지급금을 계속 깔고라도 일단 손님을 받아야 랜드사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토로했다.
# 미지급금 조절로 수익 늘리고 줄여, 실적과 주가에 영향
미지급금이 조금씩 지급된다고 해도 다음 회차 여행객의 미지급금이 계속 쌓이는 구조이니 아랫돌 빼서 윗돌 얹는 격이다. 하나투어와 거래하는 랜드사 대표 A 씨는 “비수기에는 미지급금이 더 쌓이고 손님이 많아지는 성수기에는 조금 더 결제해주는 게 보통”이라며 이는 하나투어의 실적과 관계가 깊다고 전했다.
필요에 따라 미지급금을 조절해 수익을 늘리거나 줄인다는 것. 매출은 그대로라도 수익 조작을 통해 실적 조작이 가능하고 주가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유예된 미지급금으로는 비자금도 충분히 조성할 수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유럽 랜드사 대표 B 씨는 “하나투어 물량을 받는 랜드사라면 백이면 백, 똑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하나투어와 랜드사 간 이중장부가 없는 곳은 거의 없다. 다만 지금도 하나투어 물량을 받고 있다면 절대 말하지 못한다. 어떤 식으로든 거래상 보복이 따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하나투어의 이중장부는 지역팀별로 부장 이하 차장, 과장 등이 관여해 부서 전체의 관리하에 이루어진다. 그는 “하나투어에서 대리급 이상이라면 이중장부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자신이 이를 말할 수 있는 이유도 하나투어와의 미지급금 문제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일을 그만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나투어는 공식적으로 이중장부의 존재를 모른다며 조사 후 관련자를 징계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랜드사들은 서류상으로만 윗선의 결제가 필요하지 않도록 조치되고 있었을 뿐, 윗선에서도 이중장부의 존재를 모를 리 없다고 주장한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사내 관행을 그대로 이어간 김진국 대표의 사과로 얼버무릴 것이 아니라 박상환 하나투어 회장이 직접 나서서 통렬히 반성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여행사 관계자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공식적으로 징계한다고 말은 했지만 전부터 내려온 관행인데 누구를 징계할 수 있나. 표면적으로 몇몇 임직원을 징계하는 형식만 취할 게 뻔하다”며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말했다.
하나투어 측은 “회사 차원에서는 미수금을 금지하고, 미수금이 있는지 정기적으로 확인하는 절차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 내부조사를 통해 일부 지역에 미수금이 있는 것을 확인했고 이에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한 외부 조사기관을 선임해 철저히 조사 중이다. 조사 결과가 나오면 그에 대한 조치 및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 모두투어는 랜드사에 “미지급금 없다” 확인 서류 요구
미지급금은 비단 하나투어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두투어와 거래하는 동남아 랜드사 대표 C 씨는 “이중장부 문제가 터지기 전에도 랜드사 미지급금과 관련해 세무조사가 나오면 모두투어는 미지급금이 있는 랜드사에 ‘미지급금이 없다는 서류에 사인해서 보내라’며 서류상으로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애썼다”고 말했다. 이러한 서류를 만들어 사인을 받아놓은 것 자체가 미지급금이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C 씨는 “만약 여기에 사인하지 않으면 ‘더 이상 손님 받을 생각 하지 말라’는 뜻이다”고 전했다.
C 씨는 또 “모두투어의 경우, 기준을 알 수 없는 자사의 고정 환율을 적용해 정산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덧붙였다. “지상비든 미지급금이든 돈을 지급할 때 환율이 오르면 이전의 환율을 적용하고, 환율이 내리면 내린 환율로 정산하는 방식”이라고 전했다.
다른 랜드사 대표 D 씨는 “정산을 하다가 쌓여 있는 미지급금을 보면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회의감이 든다”며 “미지급금을 정산해달라고 하면 그 금액마저 다시 깎는다”고 폭로했다. 이를테면 받을 돈이 100만 원이라면 50만~70만 원을 한 번에 받고 끝낼지, 조금씩 수개월에 나누어 받을지를 선택하라고 한다는 것. 랜드사의 경우 늘 돈에 쪼들리는 상황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깎인 금액이라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혹은 손님을 더 보내주는 조건으로 미지급금의 유예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현지에서 호텔과 식사, 차량, 관광 등의 진행비로 쓰이는 지상비는 애초부터 한참 모자란 금액을 보내주기 때문에 깎인 돈은 그야말로 랜드사가 미리 지불한 비용이나 다름없다. 쇼핑과 옵션으로 지상비의 모자란 금액을 메우는 구조의 저가 패키지여행에서 손님들이 예전처럼 쇼핑을 많이 하지도 않기에 손해를 봤던 팀의 진행비까지 미지급금에 묶여 랜드사가 떠안는 경우도 흔하다.
“협력사와 상생하고 협력사들과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겠다”는 하나투어와 상황을 아직 지켜보고 있는 모두투어. 국내 대표 패키지여행사인 양사의 대응에 따라 향후 패키지 시장의 개선 방향이 결정될 것이다. 업계의 눈이 쏠린 이유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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