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9월 8일 ENA 월화드라마 ‘신병4: 사보타주’가 15년 전 강원도 양구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에피소드를 다루면서, 인터넷에는 ‘양구=바가지 도시’라는 낙인이 또 한 번 새겨졌다. 그러나 정작 지금 양구의 상권과 인구가 처한 상황은 그 이미지 논쟁과는 결이 다르다. 병사들의 지갑이 줄어든 정도가 아니라, 병사도 주민도 함께 떠나고 있다는 게 양구의 진짜 문제다.
드라마가 모티브로 삼은 사건은 2011년 3월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외박을 나온 병사 2명이 고등학생 무리와 어깨를 부딪힌 일로 시비가 붙어 집단폭행을 당했고, 한 명은 안면골절로 전치 6주 진단을 받았다. 같은 학생들이 그해 2월에도 다른 병사 4명을 다치게 한 전력이 드러나면서 파장이 커졌다. 격분한 관할 사단은 전 병력의 외출·외박을 전면 금지하는 초강수를 뒀고, 병사들의 지갑에 의존하던 읍내 상권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가해 학생들은 재판에 넘겨졌지만, ‘바가지 도시’라는 이미지는 지금까지 이어졌다.
군인을 대상으로 한 ‘바가지’ 사례도 마찬가지다. 2020년에는 한 중국집이 외박 나온 병사에게 짜장면 값 외에 단무지 값 500원을, 곱빼기에는 1500원을 별도로 받았다는 사연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택시 요금을 편도가 아닌 왕복으로 청구하거나, 이발소나 식당에 병사에게만 적용되는 이른바 ‘군인가’가 사실상 따로 매겨져 있다는 이야기도 꾸준히 돌았다. 위수지역 제도로 병사들이 읍내를 벗어날 수 없던 시절, 일부 업소가 “어차피 여기 말고는 갈 데가 없다”는 식으로 값을 올려 받았다는 게 지역 스스로 내놓은 자체 진단이다.

공교롭게도 드라마가 방영되기 하루 전 9월 7일, 양구군은 접경지역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2차 시설현대화 지원사업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5개 업소 내외에 업소당 최대 1600만 원, 사업비의 80%까지 지원하는 사업이다. 도배·도색부터 노후 설비 교체까지가 대상이고, 군 장병이 많이 찾는 업종과 모범업소·착한가격업소에는 가산점을 준다. 접경지역의 소비 위축과 경기 침체로 경영난을 겪는 소상공인을 돕겠다는 취지다. 드라마가 되살린 옛 오명과, 군청이 이 시점에 내놓은 지원책은 서로 무관해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두 개의 증상이다. 병사 소비에 기댄 상권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군인 잃고 외양간 고쳐도…”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상권
양구는 태생부터 군사도시였다. 6·25전쟁 최대 격전지 중 하나였던 이곳은 휴전 이후에도 최전방 접경지로 남았고, 군부대와 군인 가족이 상주하며 지역 상권의 소비 기반이 됐다. 그 구조에 결정적 타격을 준 것은 2021년 12월 육군 2사단 해체였다. 이때 병력 약 5600명이 지역을 떠났고, 지역이 체감한 연간 경제 손실은 900억 원대로 추산된다.
한 모텔 업주는 주말이면 13개 객실이 꽉 찼는데 지금은 2개 남짓만 찬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100대 규모 PC방을 운영하던 업주는 매출이 반토막 나 아르바이트생을 두 명에서 한 명으로 줄였다. 병사들을 상대하던 식당과 옷가게 상당수가 아예 문을 닫았고, 읍내 유동인구는 예전보다 40%가량 줄었다는 게 상인들의 체감이다.
지금도 양구가 여전히 바가지 물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2019년에는 “양구 PC방이 시간당 2100원”이라는 트위터 글이 확산해 담합 의혹으로까지 번졌지만, 양구군이 지역 PC방협회, 강원물가정보망과 함께 확인한 실제 평균 요금은 시간당 1443원이었다. 전달 대비 8% 오른 것은 맞았지만 소문과는 거리가 멀었다. 실제 상혼 문제와 근거 약한 소문이 뒤섞이며 이미지만 먼저 굳어지는 일이 반복된 셈이다.
지금 양구에 남은 대규모 부대는 양구읍에 사령부를 둔 21사단이 사실상 유일하다. 문제는 남은 병력조차 예전만큼 지역에 돈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수지역 제도가 폐지되면서 병사들은 외출·외박 때 읍내에 머물지 않고 곧장 춘천이나 서울로 나갈 수 있게 됐다. 소비가 지역 안에 남지 않고 곧장 다른 도시로 빠져나가는 셈이다. 장병들이 자유롭게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면회객 자체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양구군은 2020년을 전후해 가격 표시와 모니터링을 강화하며 장병과의 상생을 내세운 대책을 내놨고, 올가을에도 소상공인 시설 개선 지원에 나섰다. 하지만 병력 자체가 줄어들고 남은 병력의 소비마저 지역 밖으로 흐르는 흐름을 지자체 대책만으로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3000명이 빠져나간 8년, 남은 이들의 계산법
상권보다 더 근본적인 지표는 인구다. 양구군 주민등록 인구는 올해 1월 기준 2만 373명으로, 2018년 2만 3408명과 비교하면 8년 사이 3035명이 줄었다. 그중 646명은 최근 2년 사이에 빠져나갔다. 감소 속도가 오히려 빨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2015년 2만 4089명으로 최근 정점을 찍은 뒤 내리막이 이어지는 흐름과도 맞물린다.
군과 의회는 원인을 크게 두 갈래로 짚는다. 하나는 사망자가 출생자보다 많은 자연감소이고, 다른 하나는 청년층이 일자리와 교육을 이유로 지역을 떠나는 사회적 유출이다. 여기에 부대 개편으로 군인과 그 가족이 함께 빠져나가는 흐름까지 겹친다. 20대 인구만 놓고 보면 지난해에만 199명이 줄어 2216명으로 내려앉았다. 지역 상권과 창업의 잠재적 소비층이자 노동력이 함께 얇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 감소를 순전히 군사도시의 숙명으로만 볼 수는 없다. 양구군은 청년 기술창업 공간을 만들어 시제품 제작 장비를 지원하고, 귀농·귀촌인 유치와 정주 여건 개선에도 예산을 쓴다. 다만 이런 정책들은 아직 인구 감소 속도를 늦추는 수준이지, 흐름 자체를 뒤집지는 못한다. 지역 스스로도 “일자리, 주거, 교육, 의료 등 정주 기반을 종합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단기 정책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고 평가한다. 군사도시라는 정체성이 흔들리는 동안, 그 자리를 대신할 다른 산업 기반이 아직 뚜렷하게 자리 잡지 못한 상태라는 뜻이다.

축제 찾아온 22만 명, 머물 이유를 먼저 만들어야
병력에 기댄 경제가 흔들리자 양구군이 택한 대안은 관광이다. 군은 2사단 해체로 줄어든 소비 여력을 정주인구가 아닌 ‘생활인구’로 메우겠다는 방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반도섬과 동수리 일대에 관광 인프라를 확충하고 종합스포츠타운을 조성하는 등 방문객과 체류 인구를 늘리는 쪽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성과가 없지는 않다. 올해 곰취축제(5월)에는 10만 2000명, 배꼽축제(8월)에는 7만 1000명, 펀치볼 시래기사과축제(10월)에는 4만 7000명이 다녀가 3대 축제 모두 역대 최다 방문객을 기록했다. 곰취축제 방문객은 전년 동월 대비 21.8% 늘어 강원도 18개 시·군 가운데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그러나 축제 하루 다녀가는 22만 명과, 이 도시에서 실제로 돈을 쓰고 잠을 자는 인구는 다른 문제다. 병사들이 위수지역 폐지로 소비를 지역 밖에 남기고 떠나듯, 축제 방문객 역시 당일치기로 왔다가 숙박도 소비도 다른 곳에 두고 갈 가능성이 크다. 방문객 수 자체는 지자체의 홍보 성과를 보여줄 수 있어도, 그 돈이 읍내 상권에 얼마나 남는지, 숙박업과 음식점의 매출로 얼마나 이어지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군인 경제가 앓았던 문제, 즉 사람은 스쳐 가고 돈은 남지 않는 구조를 관광이 그대로 반복한다면 축제 역시 대체재가 되기 어렵다.
양구가 마주한 진짜 과제는 병력이든 관광객이든 특정 유동 인구에 기대는 소비 구조 자체를 어떻게 지역 안에 남는 부가가치로 바꾸느냐에 있다. 드라마가 다시 불을 지핀 ‘바가지 도시’라는 이미지는 이 구조적 문제의 원인이라기보다 결과에 가깝다. 병력 감축과 인구 유출, 위수지역 폐지로 손님이 줄어드는 도시에서, 남은 손님마저 이미지 때문에 지갑을 닫는다면 상권은 이중으로 위축된다.
양구·인제·철원·화천 등 접경지역 4개 군의 인구를 모두 합쳐도 10만 2000명 남짓이다. 네 곳 모두 같은 국방정책 변화와 인구 감소 앞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이는 양구만의 특수한 사정이 아니라 접경지역 전체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다. 지금 양구에 필요한 것은 오명을 벗는 홍보가 아니라, 누가 오든 돈이 지역 안에 머무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라는 지적이다. 병사도, 관광객도, 청년도 결국 이 도시에 머물 이유가 있어야 다시 온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