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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의 소울푸드
‘조선엘프’ 우용곡 작가의 “서사 담긴 잔치국수”

조선시대 그린 만화에 ‘요정 미소녀’ 등장시켜 화제 “조부모 이해하기 위해 역사 공부”

[비즈한국] 역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 제작이 힘든 이유 중 하나로 고증의 어려움을 꼽는다. 출연진의 의복과 장신구부터 가구 및 집기, 그 밖의 다양한 소품까지 빠듯한 제작비로 챙길 것이 많기 때문이다. 화면 한쪽으로 소화전, 에어컨 실외기 등이 나와도 옥에 티로 웃어넘기던 시절은 이미 지난 지 오래다. 상투나 어여머리, 옷고름 하나만 잘못되어도 시청자들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이 같은 시절에 역사만화 한복판에 ‘엘프(Elf)’를 그려 넣은 대담한 작가가 있다. 지난 2022년 ‘조선 왕실의 신화’를 발표하고, 현재는 인스타툰 ‘조선엘프 다음엇지’를 연재 중인 우용곡 작가를 인사동 한 잔치국숫집에서 만났다.

역사만화 한복판에 ‘엘프(Elf)’를 그려 넣은 우용곡 작가는 잔치국수를 소울푸드로 꼽았다. 사진=필자 제공

지역마다 사람마다 다른 잔치국수

우 작가가 면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다. 작가가 어릴 적 함께 살았던 할머니는 전쟁을 겪은 세대답게 쌀밥을 고봉으로 담아주시던 분이었는데, 식사량이 많지 않은 손자는 끼니때마다 주신 밥을 남기지 않고 다 먹는 게 여간한 곤욕이 아니었다고 한다. 손주를 배불리 먹이고픈 할머니 마음을 모르지 않지만, 밥이 물리면서 자연스레 면을 더 즐기게 되었다.

처음에는 어딜 가나 있고, 어딜 가도 어느 정도 맛이 보장되는 까닭에 잔치국수를 종종 찾았지만, 한여름 충청남도 공주의 한 식당에서 잊을 수 없는 잔치국수를 맛보고 난 다음부터 작가는 답사 여행을 다닐 때마다 잔치국수를 꼭 찾게 되었다. 지역마다 사람마다 고명의 종류와 육수 내는 법 등이 서로 다른데, 그릇마다 국수 삶은 이의 서사가 담긴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잔치국수 한 그릇에 그 사람의 역사가 담긴 것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우용곡 작가의 잔치국수론. 사진=필자 제공

“어떻게 보면, 잔치국수 한 그릇에 그 사람의 역사가 담긴 것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엄마에게 배운 레시피일 수도 있고, 그 지역에서 많이 나는 재료를 넣기도 하고요. 그런 점들이 저한테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어요. 잔치국수가 그 지역을 보여주는 지표가 되었달까요.” 오늘날, 잔치국수는 흔하고 소박한 음식이 되었지만, 작가에게는 그래서 만든 이의 삶과 그 지역의 특성이 궁금해지는 특별한 음식이 되었다.

냉면 또한 작가에게 서사성을 느끼게 하는 음식이다.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이북 음식에도 가닿았는데, 실향민이 문을 연 냉면집들과 탈북자가 운영하는 곳들의 냉면 맛이 서로 달라 주인장을 인터뷰하며 그 유래에 대해서도 파고들게 되었다고 한다. 삼팔선을 넘고 몇 번이나 행색을 바꾸며 살아남은 평양냉면의 면생유전(麵生流轉)만큼 강력한 서사가 또 있을까. 다음에는 냉면집에서 만나 ‘유정천리’ 눈물 어린 사연 보따리를 풀어보기로 했다.

우용곡 작가는 조선시대 역사 이야기에 미소녀 엘프를 등장시켰다. 그림=우용곡 작가 제공

조선시대 이야기에 미소녀 엘프의 등장이라?!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
하늘에서 하느님의 아들 환웅님이 내려오실 적에
온갖 괴이한 놈들이 무리에 섞여 따라왔다더라.
그 중에 사람과 기묘…하게 닮은 ‘귀 긴 놈’들이 있었던 고로,
요즘 말로는 ‘조선엘프’라 하니라”
-‘조선엘프 다음엇지’ 1화, 옛날 옛적에 편(2026.5.6.)

‘엘프’는 북유럽 신화에 기원을 둔 상상 속 종족으로, ‘고우영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보다 큰 귀를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에게는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나 미즈노 료의 ‘로도스도 전기’ 시리즈에 등장했던 캐릭터들로 익숙하다.

우용곡 작가는 조선 왕실에서 모셨던 여러 신적 존재를 지식 만화 형태로 소개한 ‘조선 왕실의 신화’에서 바로 이 엘프를 만화 속 화자로 삼았다. 온갖 밈과 미소녀 엘프 그림이 어우러진 이 작품은 각종 온라인 채널에서 누적 조회수 500만을 달성하며 화제가 되었고, 역사 교양 만화의 신유형을 제시하며 한 획을 그었다.

‘조선 왕실의 신화’는 애초 평범한 학습만화로 기획했으나 화제성을 높이기 위해 엘프를 넣었다고. 사진=필자 제공

그런데 처음부터 엘프를 염두에 두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출판사 PD와 처음 기획한 것은 평범한 학습만화로, 조선 임금들의 이야기나 전쟁사, 왕실의 미스터리, 기담을 소재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화제성이 부족하다는 판단에 조선, 유교, 신화와 전혀 무관한 캐릭터를 넣기로 했고, 작가가 떠올린 것이 바로 엘프였다. 스물일곱 조선 왕의 계보를 줄줄 외는 사람들은 많지만, 왕실의 신화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걸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한 극 중 장치가 바로 엘프인 것이다.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다고 해서 그의 만화가 손쉽게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우 작가는 제례를 비롯해 각종 의례에 직접 참여하고, 동북 3성에 있는 고구려 유적을 비롯해 국내외 유적을 샅샅이 찾아다니며 정보를 모으고 그것들을 온전히 소화해 그려낸다. 우 작가에게 역사는 책 속에 박제된 지식이 아니라 현장과 사람들을 만나며 재구성되는 대상이다.

우용곡 작가의 조선 왕실의 신화, 고려 왕실의 신화와 그가 제작한 태껸 포즈집. 우 작가는 태껸 수련자이자 홍보대사다. 

“말이 엘프지, 하는 짓은 그냥 옛날 선비들이죠”

처음에는 관심을 끌기 위해 설정한 캐릭터였던 엘프는 시간이 지날수록 작가의 스토리텔링에서 매우 중요한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작가가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와 올해 첫선을 보인 인스타툰 ‘조선엘프 다음엇지’(다음엇지는 ‘만화’라는 한자식 표현이 정착하기 전 만화를 가리키던 우리말 표현으로 ‘다음 장면이 어찌 될 것인가’라는 뜻에서 유래했다)에서 엘프는 지식 전달의 매개체를 넘어 인간과 어울려 살아가는 인물들이 된다. ‘귀쟁이’라 불리는 엘프 캐릭터들은 인간보다 오래 살면서 정권과 왕조의 흥망성쇠를 모두 지켜본 장생종이면서 한편으로는 조선시대부터 21세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간들과 어울려 지지고 볶고 살아가며 시대의 장면들을 증명한다.

왜색 그림체 시비, 이미지보다는 메시지

과거에 한국에서 엘프 캐릭터 붐을 주도했던 작품이 미즈노 료의 ‘로도스도 전기’이고, 작가 또한 일본에서 유행하던 미소녀 그림체로 그리다 보니, 정작 엘프에 대한 기본 설정은 톨킨의 것에 많이 의지하였음에도 한동안 “일본 판타지를 모방하면서 조선 역사를 다루냐”는 시비에 종종 말렸던 모양이다.

일본 만화가 광범위하게 유입된 환경에서 자라며 그 영향을 받은 우 작가는 일본풍을 벗어난 우리 그림체를 찾아야 한다는-“망가는 벗어버려”로 대표되는-만화계의 오랜 구호에 공감하면서도 오늘날에는 이미지 너머의 메시지에 천착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단편 작업이나 외주, 박물관 관련 작업에서는 선 굵은 극화체 스타일을 사용하는 우 작가에게 고정된 이미지보다는 그 안에 담는 메시지가 중요하다.

조부모 이해하기 위해 시작한 역사·유교 공부, 이제 고려로

우용곡 작가가 역사에 관심을 두게 된 데에는 유교 전통을 꾸준히 지켜온 조부모의 영향이 컸다. 언뜻 이해되지 않는 일들을 마주치면서 우 작가는 덮어놓고 반발하기보다는 조부모의 삶과 그 기저에 흐르는 관념을 이해하기 위해 유교와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어떤 등장인물이나 캐릭터가 움직일 때 보통 그 시대의 철학이나 자기만의 사상, 어떤 종교관에 따라서 움직이곤 하잖아요. 현실에 있는 사람들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죠. 유교를 공부하니까 다행히 이해가 좀 되더라고요.”

우용곡 작가가 역사에 관심을 두게 된 데에는 유교 전통을 꾸준히 지켜온 조부모의 영향이 컸다. 사진=필자 제공

우 작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아트 슈피겔만이 전쟁 PTSD에 시달리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쥐’를 작업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잔치국수와 냉면에 담긴 사람의 이야기에 시선이 머무는 작가라면 언제고 ‘쥐’만큼 훌륭한 만화를 그려내지 않을까.

우용곡 작가는 현재 ‘조선 왕실의 신화’ 후속작 ‘고려 왕실의 신화’ 출간을 앞두고 있다. 고려는 조선과 또 다르게 불교의 시대다. 커다란 화두를 고려의 엘프들이 또 어떻게 풀어갈지 기대가 된다.

우용곡 작가는
1999년생으로 본관은 단양이다. 호로 삼은 용곡(龍谷)을 필명으로도 쓴다. 본명은 영제, 자는 장재(璋載)다.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재학 중인 2022년 ‘만화로 배우는 조선왕실의 신화’를 발표했다. 한국사, 고고학, 신화, 전통문화 등을 좋아해 전국 각지로 유적 답사를 다니는 발로 뛰는 만화가다. 현재 국가유산수리기능자 자격을 목표로 수련 중이며, 태껸(택견) 수련자로서 2025년 ‘한국전통무예 포즈집: 태껸 편 上/下’의 제작을 맡기도 했다.  2026년 8월 무예 포즈집 제작을 함께했던 윗대태껸협회의 홍보대사에 위촉되었다. 곧 ‘고려 왕실의 신화’를 출간할 예정이다.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joseon_elf/


서찬휘 만화칼럼니스트

필자 서찬휘는 만화 칼럼니스트로 만화와 그 주변 문화들의 흐름과 연결고리를 역사적 맥락에서 탐색하고 정리해왔다. 1998년부터 만화 정보 커뮤니티 ‘만화인’을 운영했고 한겨레신문, 일요신문, 인천일보, 국방일보 등 여러 매체에 글을 썼다.

iam@seochanhwe.com
송하원 대안만화 전문서점 홈통 공동대표

필자 송하원은 공공문화개발센터 유알아트 대표로 대안만화 전문서점 ‘홈통’을 운영하고 있다. 문화기획자이자 만화 연구자이며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금천문화재단 이사 등을 맡고 있다. 두 사람은 ‘만화가의 소울푸드’에서 한국 대표 만화가들이 사랑하는 음식을 통해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함께 들여다보고자 한다.

solchan198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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