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과제 앞에서 풍력발전은 탄소중립을 달성할 핵심 전력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정부는 9월 2일 제1회 해상풍력발전위원회를 열고 2031년까지 25GW 규모의 예비지구를 지정해 오는 2040년까지 누적 45GW의 해상풍력을 보급하겠다는 대규모 계획입지 청사진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풍력발전기의 날개가 새의 이동 통로를 가로막으며 충돌하는 ‘버드 스트라이크’의 위험도 함께 수면 위로 올랐다. 전력 생산과 생태계 보호를 양립할 현실적 해법에 대한 논의가 시급해지고 있다.

최우선 원칙은 ‘사전 입지 회피’…올해 처음 계획입지 시행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등 국제사회가 권고하는 생태 영향 완화의 대원칙은 ‘순차적 저감(Mitigation Hierarchy)’이다. 이는 개발 사업을 진행할 때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회피(Avoidance)’, ‘최소화(Minimisation)’, ‘복원(Restoration)’, ‘상쇄(Offset)’라는 4단계를 거쳐 순차적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규범이다. 이 계층 구조에서 생태적으로 확실한 조치는 애초에 생태계가 민감한 지역을 건드리지 않고 비껴가는 ‘회피’다.
이미 입지가 정해진 발전단지는 매몰비용 탓에 설계를 변경하거나 위치를 옮기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서식지 파괴나 조류 충돌이라는 환경 리스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해법은 초기 입지 선정 단계에서 위험 지역을 배제하는 것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해상풍력법을 기반으로 한 정부 주도 계획입지는 사전 회피를 제도화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기존에는 사업자가 자체적으로 입지를 선정하고 승인을 신청하는 구조였기에 사전 회피를 실현하기 어려운 사후적 절차라는 한계점이 있었다. 반면 해양공간정보와 규제를 아우른 해상풍력 입지정보망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예비지구를 직접 발굴하는 계획입지 방식은 생태 민감 해역을 미리 걸러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예비지구 선정에서 생태적인 고려를 얼마나 할지다.
장다울 오션에너지패스웨이 한국 대표는 “올해 처음 시행되는 해상풍력법상 예비지구 지정은 계획입지 단계에서 생태 민감 지역을 사전에 회피하는 등 생태적 고려가 얼마나 충실히 반영되는지 검증하는 첫 시금석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날개와 조명 색깔만 바꿔도 충돌 줄어
이미 발전사업 허가를 취득했거나 가동 중인 발전단지에서는 앞서 설명한 ‘최소화’ 기술의 도입이 불가피하다. 이에 글로벌 풍력 업계와 연구기관들은 충돌 위험을 줄일 여러 공학적·생태학적 방식을 적용 및 고려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방식은 관측 장비와 예측 모델을 연계해 조류 이동 시기에 터빈 날개를 늦추거나 멈춰 세우는 ‘터빈 가동 일시 제한’이다. 유럽 북해 연안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이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암스테르담대학교가 개발한 조류 이동 예측 모델과 해상 레이더, 기상 자료를 종합해 최대 48시간 전에 대규모 야간 조류 이동을 사전 예측하는 시스템을 운용한다. 2023년 5월 대규모 야간 이동이 예보되자 네덜란드 경제기후부는 보르셀레와 에그몬트 안 제(Egmond aan Zee) 해상풍력단지의 터빈을 약 4시간 동안 전격 감속 및 정지시켰다. 이는 정부 결정으로 풍력 발전을 일시 중단한 세계 최초의 공식 사례였다.
독일 역시 와덴해 인근의 노르더그룬데(Nordergründe) 단지에서 환경단체와의 합의를 통해 4년간 조류 이동 연구를 거쳐 가동 제한 절차를 제도화했으며, 발트해 단지에서는 특정 이동 강도 임계값을 초과할 때 터빈을 멈추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프랑스는 그랑 라르(Grand Large) 부유식 단지의 허가 조건으로 4월과 9월 주요 철새 이동기에 맞춘 계획적 가동 제한을 명시했다.

또 다른 방식은 풍력발전기 날개(블레이드) 세 개 중 하나를 검은색으로 칠해 조류의 시각적 인지력을 높이는 ‘블레이드 도색’이다. 조류는 사람보다 정면 시야각이 좁고 측면 시각이 발달해 비행 중 정면의 장애물을 입체적으로 인지하는 데 취약하다. 특히 흰색 날개 세 개가 고속 회전하면 시각적 잔상이 겹쳐 투명한 창문처럼 흩뿌려 보이는 ‘모션 스미어(Motion Smear)’ 현상이 발생해 새들이 회전체를 허공으로 오인하고 돌진하게 된다.
노르웨이 자연연구소(NINA)의 로엘 마이 박사 연구팀이 노르웨이 스뫼라 풍력발전단지에서 10년에 걸쳐 수행한 실증 연구에 따르면, 블레이드 하나를 검게 도색한 것만으로도 연간 조류 충돌 사망률이 70% 이상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행 고도가 터빈 회전 반경과 겹쳐 피해가 컸던 대형 맹금류 흰꼬리수리의 경우 도색 이후 단 한 마리의 사체도 발견되지 않았다. 대규모 설비 개조 없이 제조 및 설치 단계에서 날개 한쪽에 시각적 대비를 주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충돌 완화 효과를 거둘 수 있음을 입증한 결과다.
야간 비행 조류를 보호하기 위해 풍력 타워 상단에 설치되는 항공장애표시등의 발광 방식과 색상을 바꾸는 방식도 제시된다. 밤길을 날아가는 야간 이동 조류들은 어둠 속에서 상시 켜져 있는 붉은색 지속광에 이끌려 타워 주변을 선회하다 블레이드에 부딪히는 ‘빛 유인 함정(Trap Effect)’에 취약하다. 스코틀랜드 자연유산청은 지속적으로 붉은빛을 내는 대신 순간적으로 깜빡이는 백색 점멸등이나 조류의 시각 및 자기장 교란을 덜 일으키는 녹색 조명을 설치할 경우 야간 유인 현상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멈추는 건 기술 아닌 거버넌스…‘유럽 OCEaN’에서 찾는 해법
기술이 발전해도 지금 한국에서는 기술을 실제로 작동하게 만들 ‘제도’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이에 사업자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와 입찰 평가 개선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터빈 가동 중단 등은 발전 사업자의 매출 손실로 이어지기에 정책적으로 유인할 방안이 필요하다. 현재 검토되는 대안은 정부의 차액계약제도(CFD)를 활용하는 방안이다. 차액계약제도는 정부와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가 사전에 계약한 가격과 실제 전력 시장가격(도매가격)의 차액을 상호 정산하는 제도인데, 기준가격 산정 시 생태계 보호를 위한 가동 중단 손실을 반영하자는 것이다. 조류 이동기 터빈 일시 정지로 불가피하게 발전을 멈춘 시간과 손실분을 계산식 내 ‘가중치’ 형태로 녹여내어 매입 단가나 정산금에 보전해주는 방식이다.
아울러 사업 초기 발전 사업자를 선정하는 ‘해상풍력 경쟁입찰’ 체계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국내 경쟁입찰 평가는 가격 지표와 함께 산업·경제·안보 기여도 위주의 비가격 지표로 구성되어 생태계 보전 항목이 사실상 비어 있다. 네덜란드처럼 비가격 평가 항목에 생태적 설계나 계획을 포함하고 가점을 부여한다면, 사업자들은 수주 경쟁력 차원에서 선제적인 조류 보호 대책을 단지 설계에 반영하게 된다. 결국 확실한 정책 신호와 제도가 마련되어야만 재생에너지와 생태계 보호가 실질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

이러한 이해관계 충돌과 제도적 공백을 산업계와 환경단체가 함께 풀어낸 대표적 모델이 유럽의 민관 거버넌스 연합체인 ‘오션(OCEaN: Offshore Coalition for Energy and Nature)’이다. 유럽 해상풍력 확대 과정에서 불거진 환경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출범한 OCEaN은 오스테드(Ørsted), 바텐팔(Vattenfall), 지멘스 가메사(Siemens Gamesa) 같은 대형 발전사와 송전망 운영사, 그리고 세계자연기금(WWF), 버드라이프 인터내셔널(BirdLife International) 등 글로벌 환경단체 30여 곳이 파트너로 참여해 구축되었다.
OCEaN의 참여자들은 공동 연구 기금을 조성해 해양 생태계 데이터를 장기적으로 축적하고, ‘해상풍력 및 전력망 인프라의 환경 영향 회피 및 최소화’ 보고서를 통해 80가지 회피·최소화 조치를 정리했다. 또한 EU 및 각국 정부에 해양공간계획 개선, 해양보호구역(MPA)과 해상풍력 입지의 조화, ‘순차적 저감(Mitigation Hierarchy)’의 제도화, 데이터 공개를 촉구하고 있다.
정윤호 풀씨행동연구소 캠페이너는 “국내에는 현장에서 철새가 다가올 때 가동 중단을 결정할 주체나 그에 따른 전력 판매 손실을 보전해줄 거버넌스가 갖춰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 캠페이너는 “정부가 명확하고 일관된 생물다양성 목표를 세우는 동시에, 터빈 가동 일시 제한 조치에 대한 인센티브 제도와 의사결정 구조 등 구체적인 제도적 틀거리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