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위고비와 마운자로가 주도하는 국내 비만치료제 시장에 국산 신약이 본격적으로 가세하게 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한미약품의 비만치료제를 승인했기 때문이다. 국내 생산을 기반으로 한 가격과 공급 경쟁력이 강점으로 꼽히지만 체중감량 효과와 시장 선점에서는 넘어야 할 벽도 분명하다.

식약처는 7일 한미약품의 ‘에페오토인젝터주2·4·6·8·10밀리그램(에페글레나타이드)’을 국내 45번째 신약으로 허가했다. 당뇨를 동반하지 않은 성인 비만 및 과체중 환자의 만성 체중 관리를 위해 저열량 식이요법 및 운동요법의 보조제로 사용하는 주 1회 주사제다.
에페는 한미약품이 자체 개발한 지속형 플랫폼 기술 ‘랩스커버리’가 적용된 비만치료제다. GLP-1 수용체에 작용해 식욕을 억제하고 위 배출을 지연시켜 포만감을 지속시키는 방식으로 체중 감소를 돕는다..
위고비·마운자로가 키운 시장…1년 만에 8000억 원대로
에페가 진입하는 국내 비만치료제 시장은 글로벌 제약사의 GLP-1 계열 치료제가 들어오면서 최근 2년 사이 급격하게 커졌다.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국내 비만치료제 시장은 2024년 2426억 원에서 지난해 8195억 원으로 1년 만에 3배 이상 확대됐다.
시장 확대를 주도한 것은 바로 위고비와 마운자로다. 지난해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 판매액은 4833억 원,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는 2209억 원으로 추산된다. 두 제품의 판매액만 7042억 원으로 전체 시장의 약 86%에 해당한다.
한미약품 입장에서는 위고비와 마운자로가 시장을 키웠다는 점에서는 기회지만 이들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는 점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에페에 앞서 많은 처방 경험과 브랜드 인지도를 쌓은 글로벌 제품이기 때문에 국내 시장을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가격이나 공급 안정성, 국내 환자에 최적화된 치료전략 등 기존 제품과 차별화된 선택지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한미약품이 내세울 수 있는 카드 중 하나는 국내 생산이다. 에페는 한미약품 평택 바이오플랜트에서 생산할 예정이다. 해외에서 완제품을 들여오는 위고비, 마운자로와 달리 생산부터 공급까지 국내에서 관리할 수 있어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가격도 시장 안착을 좌우할 변수다. 국내 비만치료제는 환자가 비용을 부담하는 비급여 시장인 만큼 장기간 투약할수록 가격 부담이 커진다. 한미약품은 아직 에페의 최종 공급가격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증권가에서는 위고비, 마운자로보다 저렴한 수준으로 책정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DS투자증권은 에페의 4주분 공급가격을 10만원 중반대에서 형성될 것으로 예상했다. 시장에서 거론되는 15만원 안팎의 가격이 현실화될 경우 시작용량 기준으로도 위고비와 마운자로보다 가격 부담을 낮출 수 있다.
에페가 출시하게 되면 가격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국내에 먼저 상륙한 위고비도 마운자로의 국내 진입을 앞두고 시작용량 공급가를 기존 37만 2000원에서 21만 6000원으로 낮춘 바 있다. 마운자로 시작용량 공급가는 27만 8000원 수준이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최종 가격은 허가 이후 시장 환경과 유통 구조, 제품의 임상적 가치와 지속 가능한 공급 여건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결정할 것”이라면서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의 비용 부담을 낮출 수 있도록 보다 경제적인 약가를 통해 비만 치료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치료 접근성을 높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가격·공급만으론 부족…체중감량 효과·시장 선점은 과제
에페는 ‘한국인 맞춤형 비만치료제’를 표방한다. 서구권 임상에서 고도비만 환자가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기존 GLP-1 계열 치료제와 달리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높은 과체중·1단계 비만 환자까지 주요 치료 대상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임상 3상시험도 한국인 448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한미약품이 공개한 국내 임상 3상 40주 결과에서 에페 투여군의 평균 체중감소율은 9.75%였다. 체중이 5% 이상 감소한 환자는 79.42%, 10% 이상은 49.46%, 15% 이상은 19.86%였다. BMI(체질량지수) 30㎏/㎡ 미만 여성에서는 평균 12.20% 감소했고 개별 환자의 최대 체중감소율은 30.14%였다.
시험기간과 대상 환자, 임상 설계가 달라 서로 다른 임상의 수치를 직접 비교해 약물 간 우열을 판단하는 데 한계는 있지만 수치만 놓고 보면 에페의 체중감량 효과는 위고비와 마운자로에 비해 뒤처진다. 위고비는 68주 평균 14.9%의 체중감소를 보였고 마운자로는 SURMOUNT-1 임상에서 72주 투여 후 5㎎군 15.0%, 10㎎군 19.5%, 15㎎군 20.9%의 평균 체중감소율을 기록했다.
약에서 비만관리로…디지털융합의약품까지 확장
한미약품은 에페 출시를 시작으로 H.O.P 전략을 본격 실행할 계획이다. H.O.P(Hanmi Obesity Pipeline)는 비만 치료부터 관리·예방까지 아우르는 한미약품의 비만 신약 개발 프로젝트다. 에페를 시작으로 차세대 비만치료제와 경구용 치료제, 디지털치료기기 등을 연결해 비만 관리 전주기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한미약품은 에페의 적응증을 비만에 이어 당뇨병으로 넓히는 한편 디지털융합의약품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약물치료에 디지털치료기기를 결합해 투약뿐 아니라 식이와 운동 등 생활습관 관리까지 제공하는 방식이다. 환자의 복약순응도를 높이고 개인별 비만 관리까지 하나의 치료체계로 묶겠다는 전략이다.
비만은 약물 투여를 중단한 이후 체중 유지와 생활습관 관리가 중요한 만성질환이라는 점에서 디지털 기술과 결합할 여지가 크다. 한미약품이 계획대로 디지털융합의약품까지 개발할 경우 경쟁의 기준을 개별 치료제의 체중감량 효과와 가격에서 장기적인 환자 관리 영역으로 넓힐 수 있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빠르면 이달 말 시장에 에페를 공급할 수 있도록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