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부가 2027년 2월 자본시장전자증권법(토큰증권법) 개정안의 시행을 앞두고 토큰증권 발행(STO·Security Token Offering) 정책안을 내놨다. 토큰증권은 부동산, 미술품, 한우, 지식재산권 같은 자산을 잘게 나눠 투자할 수 있도록 블록체인 기술로 만든 디지털 증권을 말한다. 이번 방안에는 발행·유통 체계와 투자자 보호 기준, 토큰증권 인프라 구축 로드맵 등 제도 기반이 될 세부 사항이 담겼다.
토큰증권 제도화의 핵심은 투자 대상을 넓히는 데 있다. 일반 투자자는 건물·미술품·특허·콘텐츠 수익처럼 통째로 사기 어려운 자산에 소액으로 투자할 수 있고, 사업자는 보유 자산을 증권화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부동산 조각투자는 길 열리고, 미술품 조각투자는 숙제
3일 금융위원회는 민관 합동 토큰증권 협의체 3차 회의를 개최하고 ‘토큰증권 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방안에는 △토큰증권 발행 인프라 로드맵 △조각투자 모범 규준 △장외거래소 유통 체계 △발행인 계좌관리기관 제도 △분산원장 표준 요건 가이드라인 마련 등 주요 쟁점에 관한 세부 기준이 담겼다. 흔히 토큰증권을 조각투자와 같은 의미로 쓰지만, 정확히는 블록체인 같은 분산원장 기술로 발행한 증권 전반을 뜻한다. 조각투자는 그 중 대표적인 활용 사례다.
업계에서는 조각투자 모범 규준에 주목했다. 방안에는 ‘비금전신탁 수익증권’에 관한 모범 규준만 마련됐다. 조각투자 상품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부동산처럼 실물 자산을 신탁회사에 맡기고, 투자자가 그 수익을 나눠 받는 ‘비금전신탁 수익증권’이다. 다른 하나는 미술품·한우처럼 특정 자산이나 사업에 여러 투자자가 함께 돈을 넣고 수익을 나누는 ‘투자계약증권’이다.
비금전 신탁수익증권 업체는 금융당국이 2023년 12월 발표한 신탁수익증권의 기초자산 요건 가이드라인에 따라 개발 예정 토지·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과 같은 불확정 사건과 연계된 자산을 기반으로 증권을 발행하거나, 여러 기초자산을 묶어서 발행(집합화·Pooling)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번 방안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여러 자산을 하나로 묶은 ‘묶음형 조각투자 상품’ 발행이 조건부로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하나의 부동산만 담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성격의 여러 자산을 묶어 투자 상품으로 만들 수 있다. 이 경우 단일 상품에 투자하는 것보다 위험을 분산할 수 있고, 규모가 너무 작거나 가치평가가 어려운 자산도 포함할 수 있다. 금융위는 “동일 종류, 집합화 기준·목적의 명확성, 부실자산 포함 금지, 개별 자산의 정보 제공 등 조건에서 집합화를 허용한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발생할 매출을 받을 권리인 ‘장래매출채권’도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조각투자 상품으로 만들 수 있다. 예컨대 아직 확정되지 않은 미래 수익을 기초자산으로 삼는 구조다. 다만 안정적인 기초 법률에 근거하고, 가까운 시일 내에 발생해야 하며, 투자자 보호 장치가 있는 경우 등 조건을 충족한 경우에만 가능하다.
반면 투자계약증권의 경우 현행 체계를 유지한다. 당국은 대신 ‘공유지분형 투자계약증권’의 유통과 ‘사업형 투자계약증권’의 발행 관련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연구 용역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공유지분형은 실물 자산에 투자자가 공동으로 소유권을 갖는 형태를 의미하는데, 증권을 양도할 때 민법에 따라 공유지분도 변경해야 하는 문제로 인해 유통에 한계가 있다. 반면 사업형 투자계약증권은 발행사가 부도나거나 파산했을 때 투자자의 권리를 어떻게 보호할지가 쟁점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발행사 위험과 투자자 자산을 분리하는 ‘도산절연’ 문제라고 부른다.

제도화 앞뒀지만 법 개정은 아직
조각투자뿐만 아니라 펀드·채권·주식 등 정형 증권의 토큰화도 함께 추진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금융위는 토큰증권 인프라 구축을 위한 단계별 로드맵을 제시했다. 로드맵은 정형·비정형 증권별로 나눠 3단계로 진행하며 1단계는 토큰증권법을 시행하는 2027년 2월부터 추진한다. 금융위는 먼저 조각투자 상품처럼 비교적 구조가 단순한 상품부터 토큰화를 허용하고, 이후 펀드·채권·주식처럼 권리관계가 복잡한 기존 금융상품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조각투자의 경우 정형 증권에 비해 토큰화가 쉽다는 점을 감안해 1단계부터 ‘공모’ 방식으로 토큰화를 허용한다. 즉 일반 투자자도 토큰증권 제도 시행과 함께 조각투자 상품에 바로 투자할 수 있다.
반면 권리관계가 복잡한 정형 증권의 경우 1단계에서 펀드·채권은 기관투자자 전용 사모 방식으로, 주식은 비상장주식을 신탁 방식으로 토큰화하는 방안으로 추진한다. 정형 증권은 1단계 시행 후 안정성, 효율성, 시장 수요 등에 따라 공모 증권 토큰화 등 2단계를 추진한다. 3단계에서는 스테이블코인 등을 활용해 증권 거래 대금 결제까지 블록체인 위에서 처리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이를 ‘온체인 결제’라고 한다.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3일 토큰증권 협의체 회의에서 “토큰증권을 조각투자에만 머물게 하지 않겠다. 전략적이고 단계적인 접근을 통해 주식, 채권, 펀드 등 기존 금융상품도 토큰 방식으로 발행하고 거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것”이라며 “증권의 발행, 거래, 청산 등 자본시장 전체 가치사슬을 하나의 디지털 자본시장이라는 관점에서 연결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구체적인 정책이 나오자 조각투자 업계에서는 규준에 따라 대비에 나서고 있다. 토큰증권 플랫폼 ‘피스(PIECE)’ 운영사인 바이셀스탠다드는 지식재산권(IP) 로열티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상품을 준비 중으로, 같은 기술 분야의 특허를 묶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위험을 분산하는 방식을 구상하고 있다.
투자계약증권을 취급하는 조각투자사는 고민이 깊어졌다. 미술품·태양광 조각투자 업체 테사의 김형준 대표는 “연구 용역을 실시한다고 했으나 공유지분형 상품의 경우 민법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지 의문”이라며 “테사는 도산절연 문제를 보완하는 사업형 투자계약증권 상품을 준비하고 있지만, 정작 투자계약증권을 유통할 플랫폼이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비금전 신탁수익증권도 발행 관련 법안이 필요하지만 국회에 묶인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투자계약증권의 유통은 지난 1월 관련 법 개정으로 근거가 마련됐지만, 비금전 신탁수익증권은 자본시장법이 아닌 자산유동화법을 통해 우회적으로 발행하고 있다”며 “발행 근거를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데 심사까지 이르지 못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