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부가 단일 법률로는 역대 최대 규모의 규제 완화를 담은 ‘초광역특구법’ 입법을 본격화했다. 로봇·반도체·인공지능 데이터센터로 대표되는 ‘3대 메가프로젝트’의 가동을 지원하고 지방 주도의 국가 균형성장을 이끌겠다는 것이다. 경제계는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대규모 투자 유치와 기술 혁신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표명했다. 반면 노동계와 농민, 환경, 인권 등 134개 시민사회단체는 즉각적인 법안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노동기본권 후퇴와 환경·생태계 파괴, 대기업 특혜를 위한 ‘초광역파괴법’이라고 반발하면서 정부와 정면충돌하고 있다.

지난 10월 20일에는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 21일에는 최기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방주도성장을 위한 초광역권전략산업특구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초광역특구법)을 각각 대표 발의했다. 종전에 ‘메가특구’로 통칭되던 개념을 법정 용어화한 것으로, 260여 개 안팎의 방대한 조항으로 구성된 대형 특별법안이다.
이 법안이 추진되는 근본적인 배경에는 수도권으로의 인구 및 첨단산업 집중 심화와 비수도권의 급격한 산업 기반 약화, 그리고 이로 인한 지방소멸 위기가 자리한다. 기존에 운영되던 연구개발(R&D)특구, 기회발전특구, 규제자유특구 등은 개별 부처별·목적별로 쪼개져 분절적으로 운영된 탓에 대규모 투자를 결심한 기업의 복합적인 수요와 빠른 기술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것이 정부와 여당의 진단이다. 이에 따라 지역과 기업이 한 팀을 이루어 초광역 단위의 성장 엔진을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정부가 총력 지원하는 ‘상향식’ 제도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취지다.
초광역특구법의 핵심 내용은 크게 세 가지 방식의 규제 완화와 종합 정책 패키지로 나뉜다. 첫째는 ‘메뉴판식 규제특례’다. 토지 이용과 인허가, 환경 규제 완화, 에너지 인프라, 재정·부담금 면제 등 단일 법안으로는 역대 최대 수준인 320여 개의 규제 면제·완화 카드가 담겼다. 둘째는 국내에 최초로 도입되는 ‘수요응답형 규제유예’다. 법안에 미리 열거된 320개 메뉴판에 포함되지 않은 규제라 할지라도 기업과 지자체가 신청하면 심의를 거쳐 일정 기간 규제의 효력을 정지하거나 완화해주는 방식이다. 셋째는 심의 기간을 대폭 줄이고 실증 기간을 유연하게 부여하는 ‘업그레이드 규제 샌드박스’다. 여기에 대규모 투자 시 교부되는 성장엔진 특별보조금 신설, 국민성장펀드 확대, 브랜드 단과대 설치, 각종 조세 및 부담금 감면 등 범정부 지원책이 묶음으로 투입된다.
정부 “과감한 규제 혁신”, 경제계 “속도와 유연성이 핵심”
정부는 초광역특구법을 계기로 지방에 첨단산업 생태계를 조기 안착시키겠다는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월 2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통령 소속 규제합리화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에서 “새로운 기술과 신산업 발전을 가로막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불편한 규제는 신속하고 과감하게 개선해가야 한다”며 “과거처럼 부족한 자본과 기회를 수도권에 몰아주는 방식이 아니라 분산과 공평한 배분이 효율성을 높이는 시대가 됐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우리 지역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이 일자리 때문에 수도권으로 떠나지 않고 지역에서 일하고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국회의 신속한 입법 심사를 당부했다. 정부는 법 통과 시 2027년 상반기 전국 권역별로 최소 1곳 이상의 초광역특구를 지정한다는 목표 아래 시행령 제정 등 행정 준비를 병행하고 있다.
경제계는 환영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비롯한 경제6단체는 성명을 통해 “지역균형성장과 국가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초광역특구법 발의를 환영하며, 동법 취지에 따라 지역에 대한 기업들의 투자와 고용을 늘리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으로는 “법안에 포함된 연구개발 업무 등 근로시간에 대한 특례,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확대,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 연장 등 노동특례는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산업경쟁에서 경쟁력 제고를 위한 필수요소”라면서 “노동특례를 제외한 법안이 함께 발표된 것은 초광역특구법의 입법 목적 달성을 어렵게 할 수 있어 유감스럽다”고 언급했다.
특히 경총은 “초광역특구의 성공은 ‘속도’와 ‘유연성’에 달려 있는 만큼, 경영계는 고소득 R&D 인력 근로시간 특례, 반도체 인허가 패스트트랙 도입, 로봇 실증·상용화 기반 조성, 자율주행·바이오 핵심 규제 완화 등 정부의 규제합리화 방안을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필수 조치로서 적극 환영한다”며 국회와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협조를 요청했다.
시민사회 강력 반발 “모든 걸 먹어치우는 자본을 위한 법”

반면 노동·농민·환경·인권 단체로 구성된 시민사회의 반발은 거세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등 134개 단체가 결성한 ‘메가특구특별법 저지와 3대메가프로젝트 규탄을 위한 공동행동’(메가규탄행동)은 10월 27일 국회 정문 앞에서 대규모 기자회견을 열고 법안의 전면 백지화를 요구했다.
이들은 초광역특구법안 조항 260여 개 대다수가 ‘~법에도 불구하고’라는 규정을 달고 우리 사회가 오랜 시간 구축해온 기본권과 안전장치를 한순간에 무력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조발언에 나선 정록 기후정의동맹 활동가는 “재벌들이 수백, 수천 조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를 짓겠다고 나섰고, 여기에 필요한 전력과 물, 땅, 노동력까지 정부가 앞장서 공급하겠다는 계획이 바로 이 초광역특구법”이라며 “누구나 누리고 싶은 존엄하고 평등한 삶을 위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오직 모든 걸 먹어치우는 탐욕스러운 자본을 위한 법이자 비수도권을 자본을 위한 무법지대로 만드는 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단체들은 개발 이익은 대기업과 민간 투자자가 독점하면서, 개발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과 부작용은 고스란히 지역사회와 공공에 떠넘겨진다는 구조적 모순을 지적했다. 기업이 특구 계획을 제안하면 지자체가 특별한 사유 없이 이를 수용하도록 해 주민 결정권을 배제하고, 국공유재산을 최장 50년 동안 수의계약으로 장기 임대해 공공자산을 사유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박상혁 의원의 발의안 제104조 등에 외국인이 설립한 법인의 의료기관 개설 특례가 포함된 것을 두고 ‘영리병원 허용을 통한 의료민영화의 신호탄’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AI 학습을 이유로 불특정 다수의 위치·영상 정보를 별도 심의 없이 수집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은 심각한 정보인권 침해라는 지적도 터져 나왔다.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점은 박상혁 의원안 제132조부터 제134조에 규정된 ‘노동특례’ 조항이다. 노동계는 이 조항들이 사실상 ‘과로사와 공짜 노동의 합법화’라고 규정한다.
박 의원안은 R&D 및 상위 3%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에 대해 근로기준법상 주 52시간 상한제와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적용을 제외하고, 근로시간 기록 의무마저 없애는 예외를 허용한다. 이른바 ‘한국형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이다. 제133조는 현행 최대 3개월인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기간을 6개월로 늘리는 내용으로, 노동계 분석에 따르면 특정 기간에 최대 16주 연속으로 ‘주 80시간’에 달하는 초장시간 노동이 가능해진다. 이는 현행 뇌심혈관계 질환 산업재해 인정 기준(주 평균 60시간 초과)을 훌쩍 넘어서는 수치다. 여기에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 기간을 기존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특례까지 포함됐다. 비정규직을 고착화하고 일괄 해고 관행을 부추길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함재규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한국형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으로 노동시간 기록 의무를 없애 과로사 증명조차 막으려 하고, 선택근로제 확대로 살인적인 노동을 합법화하고 있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규제 완화 경쟁이 아니라 안전한 일자리, 노동시간 단축, 직접고용 확대와 원청의 책임 강화다. 규제완화가 아니라 상시·지속 업무의 직접고용 원칙과 지역과 청년 고용 목표를 의무화하는 ‘좋은 일자리 특구’를 만들길 바란다”고 힘주었다.
류제강 한국노총 정책2본부장 역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노동특례를 포함한 법안을 발의한 것은 사전에 확인한 원칙을 어기고 사회적 대화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라고 꼬집으며 “기업 투자와 산업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노동기준을 낮추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으며, 노동기본권을 후퇴시켜 얻는 성장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초광역특구법안 노동특례와 관련해 노사와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를 실무협의체 차원에서 다섯 차례 진행했다”며 “정부는 도입 여부나 구체적인 방식을 미리 정해놓지 않았으며, 일방적인 시행령 개정 추진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해명했다.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관계부처 역시 국회 병합심사 과정에서 노사정 사회적 대화의 숙의 결과를 충실히 반영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경제6단체는 근로자와 사용자의 협의를 통해 임금체계 개편 등 합당한 보상 시스템을 마련하고, 근로자 건강권을 보장할 방안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생태 보전과 기후위기 대응의 측면에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법안에는 개발 사업에 속도를 내기 위해 환경영향평가 협의 기간을 전략환경영향평가는 30일, 환경영향평가는 45일로 대폭 단축하고, 평가서 보완 요청도 1회로 제한하는 규정이 담겼다. 또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내 행위 제한 완화, 산지전용 기준 완화, 생태계보전부담금과 대체산림자원조성비, 환경개선부담금 등 각종 환경 비용 감면 혜택이 일괄 적용된다.
정규석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환경영향평가는 개발로 발생하는 환경 피해를 사전에 검증하고 원인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인데, 정부와 국회는 평가의 충실성보다 협의를 얼마나 빨리 끝낼 것인지에만 매몰됐다”고 꼬집었다.
에너지 분야에서도 반도체 클러스터와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의 막대한 전력 소비를 공공이 떠받치는 불평등 구조가 지적됐다. 대기업에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을 감면해주고, 직접 전력거래(PPA)를 허용해 저렴한 전력의 단물만 취하게 하는 반면, 송전망 과부하와 계통 안정화 비용은 공기업인 한국전력과 일반 국민에게 전가한다는 것이다.
이영경 에너지정의행동 사무국장은 “가장 심각한 것은 에너지 공공성 파괴로, 어마어마한 전력 수요를 전제로 하면서도 온실가스 감축 의무는 기업에 단 하나도 묻지 않았다. 오히려 대기업에는 전력산업기반기금을 감면해주고 민간 전용 전기공급사업자 특혜를 주어 이익을 독점하게 만든다”며 “전력망 과부하와 블랙아웃의 위험이나 백업 전력과 계통 안정화 비용은 전부 공기업인 한전과 국민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이익은 기업이 쏙 빼먹고, 위험은 공공에게 넘기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