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SK하이닉스가 2020년 약 90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계약한 인텔 낸드·SSD 사업을 기반으로 출범한 솔리다임의 미국 기업공개(IPO)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기업가치는 최대 1500억 달러, IPO 조달액은 약 150억 달러가 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로이터는 9월 25일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해 솔리다임이 이르면 2027년 미국 IPO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솔리다임은 투자은행들을 상대로 IPO 주관 업무를 따내기 위한 이른바 ‘베이크오프(bake-off)’를 진행했다. IPO를 통해 약 150억 달러를 조달하고 기업가치는 최대 1500억 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다만 로이터는 거래 규모와 시기가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90억 달러와 1500억 달러를 단순히 ‘인수가격과 현재 기업가치’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90억 달러는 2020년 SK하이닉스가 인텔의 낸드 SSD 사업과 낸드 부품·웨이퍼 사업, 중국 다롄 생산시설 등을 인수하기로 계약한 금액이다. 반면 1500억 달러는 이후 사업재편과 투자, AI 데이터센터용 기업용 SSD(eSSD) 사업 확대 등을 거친 솔리다임에 대해 현재 IPO 과정에서 거론되는 잠재적인 기업가치다.
SK하이닉스도 상장설이 확산되자 지난 1일 공식 입장을 냈다. 회사는 “솔리다임과 관련해 현재까지 확정된 사항은 없다”며 “외부자본이든 자체자금이든 형식 자체뿐 아니라 기존 주주에게 미치는 전체적인 경제적 영향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장기적인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최우선 기준으로 삼겠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입장은 솔리다임 상장이 확정된 경영계획이 아니라 여러 자본조달 방안 가운데 하나로 검토되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SK하이닉스 현금성자산 88조…내부자금·외부자금 모두 검토
SK하이닉스의 재무여력은 충분한 편이다. 올해 2분기 말 SK하이닉스의 현금성자산은 88조 원으로 전분기보다 33조 6000억 원 늘었다. 총차입금은 18조 6000억 원으로 감소했고 순현금은 69조 4000억 원으로 확대됐다. 따라서 솔리다임 투자에 외부자금을 반드시 끌어들여야 하는 재무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실제 SK하이닉스도 자체자금과 외부자금을 모두 선택지로 놓고 있다고 밝혔다.
회사는 공식 입장에서 충분한 재무여력이 있더라도 모든 투자를 내부자금으로 집행하는 것이 반드시 최선인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솔리다임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 필요성과 그룹 전체의 자본배분 효율성을 함께 살피겠다는 것이다.
솔리다임의 투자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솔리다임은 AI 데이터센터용 고용량 eSSD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대표 제품인 D5-P5336은 최대 122.88TB 용량을 제공한다. 기존 61.44TB 제품의 두 배로, AI와 대규모 데이터 처리용 저장장치를 겨냥한 제품이다.
SK하이닉스도 올해 1월 미국 AI 사업조직을 새로 만드는 과정에서 솔리다임 사업을 재편했다. 기존 법인명 SK 하이닉스 낸드 프로덕트 솔루션즈 Corp.(SK hynix NAND Product Solutions Corp.)를 AI 사업을 담당하는 회사로 전환하고, 낸드 SSD 관련 사업은 새로 설립한 솔리다임 Inc.(Solidigm Inc.)로 넘겼다. SK하이닉스는 당시 미국 AI 사업조직에 최대 10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솔리다임 지분 96.86%…상장 구조 따라 희석 여부 달라져
SK하이닉스의 올해 6월 말 연결재무제표를 보면 솔리다임 Inc.는 연결 종속회사로 분류돼 있으며 공시된 지분율은 96.86%다. 솔리다임 사업을 지배하는 SK 하이닉스 낸드 프로덕트 솔루션즈 Corp. 역시 SK하이닉스의 연결 종속회사다.
향후 IPO가 이뤄지더라도 SK하이닉스의 지분이 어느 정도 변할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솔리다임이 신주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면 기존 지분율은 낮아질 수 있다. 반대로 기존 주식을 매각하는 구주매출 비중이나 다른 자본조달 방식을 어떻게 조합하는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로이터가 보도한 150억 달러 조달액도 구체적인 신주 발행 규모를 뜻하는 것으로 확정된 숫자는 아니다. 따라서 현재 단계에서 IPO 이후 SK하이닉스의 지분율을 계산하기는 어렵다. SK하이닉스도 이 부분을 의식해 자본조달 방식 자체보다 기존 주주에게 미치는 경제적 효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솔리다임의 출발점은 인텔의 낸드사업이다. SK하이닉스는 2020년 10월 인텔의 낸드 메모리와 저장장치 사업을 90억 달러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대상에는 낸드 SSD 사업과 낸드 부품·웨이퍼 사업, 중국 다롄 낸드 생산시설이 포함됐다. 인텔의 옵테인 사업은 거래에서 제외됐다. 당시 계약은 두 단계로 거래를 완료하는 구조였다.
SK하이닉스는 2021년 첫 단계 거래를 마치면서 솔리다임(법인명 SK 하이닉스 낸드 프로덕트 솔루션즈 Corp.)을 출범시켰다. 이후 낸드 시장 침체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AI 데이터센터용 고용량 eSSD를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했다. SK하이닉스도 공식 입장에서 솔리다임이 현재 AI 데이터센터용 고용량 eSSD를 중심으로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 환경도 달라졌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의 연산량뿐 아니라 저장해야 하는 데이터 규모도 빠르게 증가하면서 고용량 SSD 수요가 커지고 있다. 솔리다임은 122.88TB 제품을 비롯한 고용량 QLC SSD를 AI와 데이터 집약적인 워크로드를 겨냥해 공급하고 있다.
솔리다임의 미국 생산시설 투자 가능성도 제기됐다. 로이터는 지난달 솔리다임이 미국 뉴욕주 북부를 후보지로 낸드플래시 생산공장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논의는 초기 단계이며 투자 여부나 규모가 결정된 것은 아니다.
소액주주 “주주가치 훼손 우려”…중복상장 논란
솔리다임 IPO 가능성이 알려지면서 국내에서는 중복상장 논란도 불거졌다.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는 지난 2일 솔리다임 상장 추진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솔리다임이 신주 발행 등을 통해 외부투자를 받을 경우 기존 SK하이닉스 주주가 누리던 경제적 가치가 희석될 수 있다는 게 액트 측 주장이다. 한국거래소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방안도 거론했다.
다만 솔리다임 상장을 국내에서 논란이 된 전형적인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 사례와 동일하게 보기도 어렵다. 솔리다임은 SK하이닉스가 기존 사업부를 물적분할해 만든 회사가 아니라 외부 기업인 인텔로부터 낸드·SSD 사업을 인수한 뒤 출범한 회사다. 이후 올해 미국 AI 사업조직 개편 과정에서 사업구조가 다시 조정됐다.
반면 별도 법인이 외부 투자자를 받아 상장할 경우 기존 모회사 주주가 바라보는 경제적 이해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솔리다임이 외부 투자를 받아 성장할 경우 주주가치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SK하이닉스 역시 이를 의식해 “중복상장 여부와 같은 형식보다 기존 주주에게 미치는 전체적인 경제적 영향을 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