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삼성 계열 상장사의 자사주 매입·소각 행렬에 멀티캠퍼스까지 합류했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금융 계열사 등에 이어 그룹 내 시가총액이 가장 작은 상장사까지 처음으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시장에서 자사주를 사들이기로 했다. 취득한 주식은 향후 전량 소각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삼성 계열 상장사 가운데 주주가치 제고 목적으로 자사주를 매입한 이력이 없는 회사는 삼성SDS와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에피스홀딩스 등으로 좁혀졌다.

다만 이들 회사가 주주환원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삼성SDS는 배당을 실시하면서 인공지능(AI) 인프라와 인수합병(M&A)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고 있고, 삼성바이오로직스는 3조 원 규모 유상증자까지 추진하며 생산시설과 해외기업 인수에 돈을 쓰고 있다. 삼성에피스홀딩스는 지난해 11월 출범한 신설 지주회사라는 점에서 상황이 다르다.
삼성 계열사 사이에서도 확보한 현금을 자사주 매입·소각에 쓸 것인지, 미래 사업에 재투자할 것인지를 놓고 자본배분 전략이 갈리는 모습이다.
멀티캠퍼스도 40억 자사주 매입, 전량 소각 계획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멀티캠퍼스는 9월 22일 이사회를 열고 자사주 17만 2786주를 장내에서 직접 취득하기로 결정했다. 취득 예정 금액은 약 40억 원이다.
매입 기간은 9월 23일부터 12월 22일까지다. 회사가 밝힌 취득 목적은 ‘주가 안정 및 주주가치 제고’다. 멀티캠퍼스는 이번에 사들이는 주식을 향후 전량 소각할 계획이다.
멀티캠퍼스는 삼성SDS가 지분 62.4%를 보유한 기업교육 전문 계열사로, 삼성 계열사를 비롯한 국내 기업에 직무·IT·AI·리더십 교육과 OPIc 등 외국어 평가 서비스를 제공한다.
멀티캠퍼스가 주주가치 제고 목적으로 장내에서 자사주를 직접 매입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멀티캠퍼스가 과거 자사주를 보유한 적은 있다. 2015년 삼성SDS 교육콘텐츠 사업부문을 영업양수하는 과정에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로 자사주가 발생했고, 2020년 보유하던 3만 6714주를 시간외대량매매 방식으로 처분했다. 이번처럼 회사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시장에서 직접 자사주를 사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삼성이 인수했지만 아직 기업집단 계열사로 편입되지 않은 레인보우로보틱스와 엠로 등을 제외하면 삼성의 상장 계열사는 18곳이다. 이 가운데 리츠인 삼성FN위탁관리부동산투자회사를 제외하고 멀티캠퍼스의 이번 결정까지 감안하면 주주가치 제고 목적으로 자사주를 매입한 이력이 없는 곳은 삼성SDS와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에피스홀딩스 3곳이다.
반대로 삼성전자·삼성전기·삼성물산·삼성SDI·삼성E&A·삼성중공업·삼성생명·삼성증권·삼성카드·삼성화재·에스원·제일기획·호텔신라 등은 과거 주가 안정이나 주주가치 제고 등을 목적으로 자사주를 매입한 이력이 있다.
최근에는 자사주를 사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소각하는 흐름도 강해졌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2025년에 취득한 보통주 7335만 9314주와 우선주 1360만 3461주를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공시상 소각예정금액은 약 5조 3455억 원이다.
삼성전자는 올해에도 90조~110조 원 규모의 주주환원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가운데 3분기 약 30조 원의 현금배당을 먼저 시행하고 나머지 환원 방식과 규모는 내년 1월 이사회에서 결정할 예정이다. 향후 자사주 매입·소각이 추가로 포함될 가능성도 있다.
삼성물산도 2023년 발표한 주주환원정책에 따라 보유 자사주를 단계적으로 없애고 있다. 올해 3월에는 공시상 약 2조 3267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했다.
그룹 전반에서 자사주 매입과 소각이 주요 주주환원 수단으로 자리 잡는 상황에서 아직 같은 방식을 사용하지 않은 계열사들이 눈에 띄는 이유다.
현금 6조 넘는 삼성SDS, 자사주 대신 AI에 10조 투자
삼성SDS가 대표적이다. 삼성SDS는 현재 주주환원 목적의 자사주 매입보다는 AI와 클라우드 사업 확대에 자금을 우선 배분하고 있다. 회사는 지난 3월 발표한 기업가치 제고 계획에서 AI 데이터센터 등 자본적지출(CAPEX)을 확대하고 M&A 등 비유기적 성장에도 현금성 자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중장기적으로 주주환원을 확대하겠다는 방침도 함께 제시했다.
투자 규모는 10조 원에 달한다. 삼성SDS는 2031년까지 AI 인프라에 5조 원, AX·AI 서비스 및 플랫폼·솔루션 사업에 1조 원, 전략적 M&A와 신사업에 4조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회사가 계획을 발표할 당시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약 6조 6000억 원이었다. 여기에 글로벌 투자회사 KKR을 대상으로 약 1조 2200억 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발행해 추가 투자재원도 확보했다.
국가 AI컴퓨팅센터와 구미 AI데이터센터 등이 대표적인 투자사업이다. 삼성SDS는 AI 인프라 규모를 현재 110MW 수준에서 2029년 230MW, 2031년에는 800MW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피지컬 AI와 디지털 자산 등 신규 사업을 위한 M&A도 추진한다.
삼성SDS가 주주환원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회사가 제시한 2025~2027년 배당정책은 배당성향 30% 수준이다. 2025사업연도 주당 배당금은 3190원으로 전년 2900원보다 10% 늘었다. 실제 배당성향은 32.5%였다. 다만 지금까지는 주주환원 목적의 자사주 매입보다 성장투자에 우선순위를 둔 모습이다.
삼성SDS 경영진도 올해 실적발표에서 AI 전환의 중요한 변곡점인 만큼 보유자금을 AI 인프라와 M&A에 먼저 투자해 장기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투자 성과와 현금흐름을 살핀 뒤 향후 자본배분 정책을 다시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당장의 자사주 매입보다는 6조 원이 넘는 현금과 외부에서 추가 조달한 자금을 활용해 기업가치 자체를 키우는 쪽을 택한 셈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오히려 3조 유증…3년 뒤 주주환원 재검토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투자 우선 전략이 선명하다. 회사는 지난 1월 주주환원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당분간 국내 바이오캠퍼스 II·III 확대와 해외 생산거점 확보, 전략적 M&A 등에 자본을 우선 배분하겠다고 밝혔다.
주주환원정책은 향후 3년 뒤 사업환경과 투자 진행 상황, 현금창출 능력, 재무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다시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주주환원 목적의 자사주를 사들이기보다 외부에서 대규모 자금을 추가 조달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8월 약 3조 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정확한 조달 예정액은 3조 9억 원이다. 이 가운데 약 2조 7062억 원은 스위스 펩타이드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 폴리펩타이드그룹 인수에, 2948억 원은 송도 제2바이오캠퍼스 확장에 투입할 계획이다.
폴리펩타이드 인수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사업영역을 기존 항체와 항체·약물접합체(ADC)에서 비만·당뇨 치료제 등에 활용되는 펩타이드 분야로 넓히기 위한 투자다. 인수금액은 약 2조 7000억 원이다.
생산시설 투자도 계속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18만 리터 규모 5공장을 가동했고 제2바이오캠퍼스에 6~8공장을 순차적으로 건설할 계획이다. 2032년 글로벌 총 생산능력을 138만 5000리터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실적이 부진해서 주주환원을 미루는 것도 아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2조 5780억 원, 영업이익은 1조 1672억 원이었다. 전년 동기보다 각각 28%, 29% 늘었다. 1~4공장이 높은 가동률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성장 투자를 동시에 확대하고 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지금 발생한 이익을 자사주 매입에 사용하는 것보다 추가 생산시설과 신규 기술, 해외기업 인수에 투입하는 것이 장기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셈이다.
삼성에피스홀딩스는 상장 1년도 안 된 신생회사
삼성에피스홀딩스는 삼성SDS나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조금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 삼성에피스홀딩스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CDMO 사업과 자회사 투자사업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11월 1일 출범했다. 같은 달 24일 유가증권시장에 재상장했다. 아직 상장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회사다.
삼성바이오에피스를 100% 자회사로 두고 있고 별도로 바이오 기술 플랫폼 개발회사 에피스넥스랩도 신설했다. 에피스넥스랩은 펩타이드 등 차세대 바이오 플랫폼 기술 개발을 맡는다.
현재 삼성에피스홀딩스 역시 주주환원보다는 사업 기반 확장에 집중하는 단계다. 핵심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올해 상반기 매출 8471억 원, 영업이익 2306억 원을 기록했다. 유럽에서 바이오시밀러 직접판매 제품을 늘리는 동시에 신약과 ADC 개발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삼성에피스홀딩스도 중국 글로벌 R&D 허브 구축 등 차세대 성장동력 확보에 나섰다.
삼성에피스홀딩스가 주주가치 제고 목적의 자사주를 매입한 이력이 없다는 사실만 놓고 삼성SDS나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단순 비교하기 어려운 이유다. 기존 회사가 오랫동안 자사주를 사지 않은 것이 아니라 회사 자체의 역사가 아직 1년도 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