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일본 현대 문학에 한 획을 그은 소설가 무라카미 류(村上 龍)가 지난 17일 향년 74세로 별세했다. 무라카미 류 사무소와 일본 출판사 겐토샤는 23일 오후 X를 통해 류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 장례식은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1970년대 등장과 동시에 일본 문단에 거대한 충격을 던졌던 그의 타계 소식에 한일 양국 독자들과 문화계는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다.
무라카미 류는 동시대에 활약한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투 무라카미(더블 무라카미)’로 불리며 일본 대중문학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하루키가 서정적이고 세련되게 상실감을 표현한 반면 류는 사회의 민낯을 폭력적, 파격적으로 그려냈다.

데뷔작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로 문단 발칵
류는 1952년 일본 나가사키현 사세보시에서 교사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청소년 시설 히피 문화에 빠졌고, 고등학생 때 학생운동을 하며 학교 옥상을 점거했다가 정학을 당한 일도 있었다. 이 같은 저항 정신은 그의 초기 문학을 관통하는 핵심 자양분이 되었다.
무사시노미술대학에 재학 중이던 1976년 류는 소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발표해 문단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미군 기지 주변에서 마약과 섹스, 방탕한 일상에 침잠한 젊은이들을 감각적인 문체로 그려낸 이 데뷔작으로 그는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상과 군조 신인 문학상을 동시에 안았다. 기성 문학의 엄숙주의를 깨부순 이 소설로 류는 “일본 근대문학에 사실상의 사망선고를 내린 작가”라는 극단적인 찬사와 함께 단숨에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현대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다
류가 1980년에 발표한 ‘코인로커 베이비스’는 코인 로커에 버려진 아이들이 뒤틀린 사회에서 처절하게 살아남는 과정을 속도감 넘치는 문체로 그려내며 현대사회의 아동 방임과 소외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다.
1987년 작 ‘69(식스티 나인)’은 작가의 고교 시절을 담아낸 자전적 작품이다. 무겁고 퇴폐적인 기존 화풍에서 벗어나 유쾌하고 에너지 넘치는 청춘의 저항을 그려내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그 외에 ‘사랑과 환상의 파시즘’(1987)은 버블경제 붕괴, 탈냉전,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날카롭게 예언한 명작으로 평가받았으며,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안노 히데아키 감독에게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미국인 연쇄 살인마와 일본인 가이드의 이야기를 그린 ‘인 더 미소수프’(1997)로 요미우리문학상을 수상했다.
2003년 내놓은 직업 소개서 ‘13세의 헬로워크’는 대량 실업과 무한 경쟁에 직면한 청소년들에게 대안적 삶을 제시하며 수백만 부가 팔려 사회적 현상이 됐다.
류는 영화감독으로도 활약했다. 자신의 소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래플스 호텔’ ‘교코’ ‘도쿄 데카당스(토파즈)’ 등을 직접 영화로 만들었다.
국내 독자들에게도 큰 사랑
무라카미 류의 소설은 1990년대 일본 대중문화 개방과 맞물려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특히 ‘69’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수십만 부가 판매되며 젊은 층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마약, 성매매, 파격적인 폭력 묘사로 인해 논란이 됐으나 한국의 문단에 답답함을 느끼던 독자들과 청년 작가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1990년대 이후 한국 현대 소설 속 도시 감수성과 파격적인 문체의 형성에도 영향을 주었다.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이 일본의 섬을 점령한 이야기를 담은 2005년 작 ‘반도에서 나가라’는 극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006년부터는 TV 경제 프로그램 ‘캄브리아 궁전’의 진행자로 20년간 기업 경영자들을 만나며 사회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탐구했다. 70세이던 2023년에는 자전적 이야기를 반영한 소설 ‘유튜버’를 출간하는 등 지속적으로 활동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