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허블과 제임스 웹의 뒤를 이을 또 하나의 우주망원경이 우주를 향했다. 지난 8월 30일(현지시각) 미국 케네디 우주센터 39번 발사대에서 팰컨 헤비 로켓에 실려 발사된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이다.
로먼은 쉽게 말해 허블과 같은 크기의 눈동자로 허블보다 약 100배 넓은 하늘을 바라보는 망원경이다. 허블로 100년이 걸릴 규모의 관측을 로먼은 한 달 만에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우주를 빠르게 훑는다. 특정 천체 하나를 깊게 들여다보는 기존 우주망원경과는 성격부터 다르다.

허블의 어머니, 낸시 그레이스 로먼
낸시 그레이스 로먼은 우주망원경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직 낯설고 회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1959년 NASA에서 우주천문학 프로그램을 이끌었다. 이후 까다로운 의회의 승인을 얻어내면서 훗날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이어지는 위대한 꿈을 현실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때문에 그는 흔히 ‘허블의 어머니’라고 불린다.
현재 로먼 우주망원경으로 불리는 이 망원경의 원래 이름은 훨씬 평범했다. 넓은 시야로 적외선 우주를 관측한다는 의미에서 WFIRST(Wide Field Infrared Survey Telescope)라고 불렸다. 그러나 2018년 낸시 로먼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망원경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허블을 탄생시키는 데 기여했던 인물이 이제 또 다른 우주망원경의 이름으로 우주를 바라보게 된 셈이다.

허블과 같은 거울로 100배 넓은 하늘을 본다
로먼의 주경 지름은 허블과 정확히 같은 2.4m다. 여러 조각 거울을 이어 붙여 훨씬 거대한 주경을 가진 제임스 웹과 비교하면 작은 망원경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로먼의 핵심은 거울 크기가 아니라 광학계와 관측 방식에 있다.
허블이 좁은 하늘을 깊고 정밀하게 들여다보는 데 특화돼 있다면, 로먼은 한꺼번에 훨씬 넓은 영역을 동일한 수준의 정밀도로 관측하도록 설계됐다.
일반적인 망원경에서는 모은 빛이 시야의 중심부에서 가장 선명하게 맺힌다. 반면 로먼은 매우 넓은 화각을 한꺼번에 확보해야 하므로 중심을 둘러싼 넓은 영역에서도 고른 화질을 유지하도록 광학계가 구성돼 있다. 검출기 역시 망원경 시야 한가운데에 단순히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넓은 초점면을 효율적으로 덮도록 배열돼 있다.
로먼의 광시야 카메라는 약 3억 화소에 달한다. 한 화소가 담당하는 하늘의 크기는 약 0.11초각이며, 한 번의 촬영으로 담을 수 있는 하늘 면적은 보름달보다도 넓다. 허블의 시야와 비교하면 거의 100배에 이른다.
그러나 단순히 시야를 넓힌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좁은 시야라면 화면 중앙의 목표 천체만 선명하게 관측하면 되지만, 시야가 넓어질수록 한 화면에 들어오는 별과 은하의 숫자가 크게 증가한다. 화면 어느 위치에 있는 천체든 비슷한 수준으로 선명하게 보여야 하며, 넓은 초점면 전체에 걸쳐 별빛이 안정적으로 맺혀야 한다. 로먼에는 바로 이를 구현하기 위한 정교한 광학 기술이 집약돼 있다.

로먼은 왜 필요한가
이미 허블과 제임스 웹을 비롯한 여러 우주망원경이 활동하고 있는데도 새로운 로먼이 필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로먼이 담당하는 역할이 기존 망원경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특정 시점에 로먼이 관측할 수 있는 영역은 전체 하늘의 약 59%에 달한다. 로먼은 허블처럼 멀리 떨어진 개별 천체를 오랫동안 깊게 관측하는 망원경이라기보다, 넓은 하늘을 빠르게 훑으면서 초신성, 외계행성, 은하와 같은 다양한 천체와 현상을 찾아내는 탐사 망원경에 가깝다.
로먼이 넓은 하늘을 먼저 살펴보다 특이한 천체를 발견하면, 이후 허블이나 제임스 웹이 그 대상을 더욱 깊고 선명하게 관측할 수 있다. 넓은 영역에서 대상을 발굴하는 로먼과 특정 천체를 정밀하게 들여다보는 허블·제임스 웹 사이에 효율적인 역할 분담이 가능해진다.
이런 점에서 로먼의 임무는 오히려 앞서 우주로 향한 유럽우주국의 유클리드 우주망원경과 비슷하다. 유클리드는 약 1만 5000제곱도의 넓은 하늘을 관측한다. 로먼의 조사 영역은 이보다 작지만 더욱 높은 공간분해능으로 우주를 바라본다.
최근 본격적인 관측을 시작한 칠레의 베라 C. 루빈 천문대도 32억 화소의 거대한 카메라로 가시광선 하늘을 빠르게 훑는다. 루빈 천문대는 로먼보다 시야가 훨씬 넓지만 지상망원경이기 때문에 대기의 방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신 같은 하늘을 루빈은 가시광선으로, 로먼은 근적외선으로 관측한다. 두 데이터를 결합하면 파장에 따라 달라지는 수많은 천체의 특성을 비교할 수 있다.
로먼이 그릴 거대한 우주 지도는 우주 전역에 숨어 있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첫 번째 방법은 중력렌즈다. 우주 곳곳에 존재하는 암흑물질은 시공간을 휘게 만들고, 그 뒤편에서 오는 은하의 모습을 미세하게 뒤틀고 늘인다.
은하 하나만 관측해서는 원래 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관측된 은하가 얼마나 왜곡됐는지를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수억 개 은하의 모양을 한꺼번에 관측하고 통계적으로 비교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은하들의 영상이 평균적으로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휘어지고 늘어나 있는지를 분석함으로써 그 사이에 존재하는 암흑물질의 분포를 역으로 추적할 수 있다 로먼의 넓은 시야는 이러한 약한 중력렌즈 효과를 대규모로 측정하는 데 특히 유리하다.
은하의 분포로 우주 팽창의 역사를 읽는다
두 번째 방법은 우주 공간 속 은하들의 3차원 분포를 그리는 것이다.
로먼에 탑재된 분광기로 개별 은하의 스펙트럼을 측정하고 적색편이를 구하면 은하까지의 거리를 추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하늘에 보이는 2차원 위치뿐 아니라 거리에 따른 깊이 정보까지 포함한 거대한 은하 지도를 만들 수 있다.
여기에는 빅뱅 이후 초기 우주의 물질과 빛이 서로 결합해 있던 시절 만들어진 흔적인 ‘바리온 음향 진동(Baryon Acoustic Oscillation, BAO)’도 남아 있다. 은하들이 평균적으로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분포하는지를 측정하고, 그 간격이 우주의 역사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추적하면 우주 팽창의 역사를 알아낼 수 있다.
이는 결국 우주에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가 얼마나 존재하며, 암흑에너지가 우주 팽창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를 알아내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세 번째 방법은 시간에 따라 변하는 우주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관측하는 것이다.
로먼은 동일한 하늘을 일정한 간격으로 되풀이해 관측한다. 같은 영역을 여러 번 촬영하면 며칠 사이 갑자기 나타났거나 사라진 천체를 발견할 수 있고, 일정한 주기로 밝아졌다 어두워지는 별빛의 변화도 포착할 수 있다.
이러한 시계열 관측을 통해 천문학자들은 2만 개가 넘는 새로운 초신성을 발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초신성은 우주의 진화를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천체다. 워낙 밝기 때문에 매우 먼 거리에서도 관측할 수 있으며, 특정 종류의 초신성은 천문학적 거리를 측정하는 표준 촛불로 활용된다. 암흑에너지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도 초신성을 이용해 먼 은하까지의 거리를 측정하고 우주 팽창의 역사를 조사한 연구에서 비롯됐다.
특히 은하들의 공간 분포와 초신성을 이용한 두 종류의 관측은 최근 우주론에서 더욱 흥미로운 의미를 갖게 됐다. 우주 전역에서 바리온 음향 진동을 측정한 최근 연구들은 암흑에너지가 시간에 따라 변화하며 그 세기가 줄어드는 것처럼 보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한편 초신성의 밝기 자체가 우주의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이 경우 역시 암흑에너지가 항상 일정하지 않을 가능성과 연결될 수 있다.
오랫동안 우주론의 가장 큰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였던 암흑에너지의 본질을 두고 새로운 논쟁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바로 이때 로먼이 수행할 대규모 은하 지도와 초신성 관측은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로먼이 가져올 또 하나의 혁명, 데이터
로먼의 중요한 혁신은 관측 장비만이 아니라 데이터를 다루는 방식에도 있다. 로먼은 하루 평균 약 1.4TB의 관측 데이터를 생산할 예정이다. 5년 동안 쌓이는 전체 데이터 규모는 약 20PB(페타바이트, 10의 15승)에 달한다. 허블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축적한 데이터 전체보다 훨씬 방대한 규모다.
더 중요한 점은 이 데이터가 특정 연구팀에게 오랫동안 독점되는 방식이 아니라, 전처리가 끝나는 대로 전 세계 천문학자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라는 사실이다.

다만 데이터의 규모가 너무 크기 때문에 모든 자료를 개인용 컴퓨터로 직접 내려받아 분석하는 방식은 현실적이지 않다. 대신 거대한 데이터를 한곳에 보관하고 연구자가 클라우드 환경에 접속해 필요한 분석을 수행하는 방식이 중요해진다.
데이터의 양이 인간이 직접 일일이 살펴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만큼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의 역할도 커진다. 실제 관측과 유사한 고정밀 영상을 생성하고, 수많은 은하를 자동으로 분류하며, 갑작스럽게 밝기가 변하는 특이 천체를 찾아내는 머신러닝 도구들이 개발되고 있다.
과거에는 방대한 천문 데이터를 분류하기 위해 전 세계 시민들이 참여하는 시민과학 프로젝트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제는 그렇게 축적된 시민과학의 결과가 다시 훌륭한 학습 데이터가 되어 인공지능을 훈련시키고 있다. 인간이 분류한 우주를 학습한 인공지능이 다시 더 거대한 우주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분석하는 시대가 시작되는 셈이다.
넓고 정밀한 새로운 우주
허블과 제임스 웹이 보여준 우주는 이미 인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로먼은 이들과는 또 다른 차원의 망원경이다. 허블과 제임스 웹이 우주의 특정한 작은 영역을 깊고 정밀하게 파고들었다면, 로먼은 그에 못지않은 정밀한 눈으로 훨씬 넓은 우주를 한꺼번에 바라본다. 로먼이 촬영할 사진 한 장에는 밝은 별 몇 개나 화려한 은하 하나만 담기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별과 은하가 동시에 기록되고, 그 사이를 채운 암흑물질의 분포와 우주 팽창의 역사까지 함께 새겨지게 된다.
우주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 열리면 우리가 알고 있던 우주의 모습 역시 달라질 수 있다.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이 보여줄 다음 우주는, 허블과 제임스 웹이 열어놓은 우주와는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세종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조교수로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천문학자의 쓸모없음에 관하여’, ‘우리는 모두 천문학자로 태어난다’, ‘우주를 보면 떠오르는 이상한 질문들’ 등의 책을 썼으며, ‘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퀀텀 라이프’, ‘UFO’ 등을 번역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