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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용 전기요금 차등제, 수도권 할증 빠진 반쪽짜리 정책인가

‘불평등 완화’ 당초 취지 사라져…산업계 “요금 인하 환영" vs 시민사회 “비수도권 발전소 집약 심화·한전 재정 압박”

[비즈한국] 정부가 발전소와의 거리와 송전 혼잡 여건에 따라 전기요금을 다르게 매기는 ‘산업용 지역 전기요금제’의 구체적인 밑그림을 공개했다. 전력 소비가 집중된 수도권 남부는 현행 요금을 사실상 유지하되, 발전소가 밀집한 남부권 등 비수도권 지역은 산업용 전기요금을 최대 10%가량 대폭 깎아주는 것이 핵심이다.

누적된 전기요금 인상으로 원가 부담을 호소해온 산업계와 지역 정치권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전력 과밀 지역에 대한 할증 없이 비수도권 할인만 단행하면서 ‘전력 지산지소(지역 생산·지역 소비)’ 취지가 왜곡되고, 210조 원이 넘는 한국전력의 부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문제도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26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전력공사 남서울본부에서 ‘산업용 지역 전기요금제’ 공청회가 열렸다. 사진=연합뉴스

전국 11개 지역으로 세분화…남부권 kWh당 최대 18원 인하

기후에너지환경부와 한국전력공사는 26일 서울 영등포구 한전 남서울본부에서 공청회를 열고 ‘산업용 지역 전기요금제 설계안’을 발표했다. 지난 2024년 6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 시행된 지 2년 2개월 만에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정부는 공청회 의견 수렴을 거쳐 관련 고시와 전기요금 약관을 개정해 연내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이번 개편안은 기존의 기본요금, 전력량요금, 기후환경요금, 연료비조정요금 체계 위에 ‘지역별 조정요금’ 항목을 신설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적용 대상은 국가 전체 전력 사용량의 51%(2025년 기준 28만 221GWh)를 차지하는 ‘산업용 전력’이다. 일반 주택용 전력과 도서 지역인 제주는 이번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지역 구분은 전력망 여건을 반영한 ‘4개 광역권’과 지역 균형성장을 고려한 ‘4개 권역’을 교차 조합해 총 11개 지역으로 세분화된다. 송전 혼잡도와 전력 흐름을 기준으로 전국을 △수도권 남부 △수도권 북부 △중부권 △남부권으로 나눈 뒤, 행정안전부의 지방우대지수(서울과의 거리, 인구 및 경제·사회 여건 등)와 산업위기지역 지정 여부를 교차 반영한다.

요금 산정에는 전력 공급 여력을 나타내는 ‘전력자급률’(0~8원 인하), ‘균형성장 지표’(0~6원 인하), 광역별 망 이용 정도에 따른 ‘송전비용’(0~5원 인하) 등 3대 요소가 종합적으로 반영된다.

산정 결과 전력 수요가 밀집된 수도권 남부는 요금 변동이 없거나 1원 내외에서 소폭 조정되는 동결 수준에 머문다. 반면 인천 등이 포함된 수도권 북부는 최대 10원, 강원·충청 등 중부권은 최대 15원, 원자력발전소와 재생에너지가 밀집한 남부권은 2025년 산업용 평균 판매단가(kWh당 181.9원)의 약 10%에 달하는 최대 18원까지 요금이 인하된다. 정부는 이를 통해 산업계의 연간 전기요금 부담이 약 2조 8000억 원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산업용 지역 전기요금제’ 설계안 개요. 자료=기후에너지환경부 제공

산업계 “수출 경쟁력 회복” 환영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21개 주요 경제·산업단체는 이날 공동성명을 내고 “산업용 지역 전기요금제 도입과 전반적인 요금 인하 기조를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산업계는 지난 수년간 이어진 가파른 요금 인상으로 누적된 경영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는 반응이다. 2022년부터 2025년까지 산업용 요금은 일곱 차례 인상된 바 있다.  경제계는 이번 인하 조치가 철강, 석유화학, 반도체, 배터리 등 주력 제조업의 생산비 부담을 완화해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등의 저가 공세에 대응할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방 산업단지를 지역구로 둔 정치권에서도 환영의 목소리가 나왔다.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물을 통해 “발전소와 송전선로의 부담을 떠안아온 지방이 수도권과 똑같은 요금을 내던 오래된 불균형을 바로잡은 반갑고 고마운 소식”이라며 “남부권이 최대 18원의 요금 인하 혜택을 받게 된다면 기존 군산 산업단지의 숨통을 틔우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재부흥의 발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 역시 “전력 다소비 산업의 비수도권 투자를 유인해 국가 전체적인 송전망 건설 부담을 근본적으로 덜고 국가 균형발전을 촉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기료 싼 비수도권으로 몰려 ‘악순환’ 발생할 수도

그러나 에너지 정책 전문가와 시민사회에서는 이번 개편안이 분산에너지 활성화라는 본래 목적에서 크게 벗어났다는 비판을 내놨다. 전력 과밀 지역에 비용을 더 물려 수도권 전력 수요를 억제하는 ‘할증’ 장치 없이 비수도권 요금만 깎아주는 구조로는 실질적인 수요 분산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원래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전력 자립도 차이를 좁히고 분산형 에너지를 활성화하기 위해 환경단체들이 제안한 제도”라며 “수도권처럼 전력을 대량 소비하는 지역에 요금을 할증해 수요를 줄이고 불평등을 완화해야 하는데, 수도권 요금은 둔 채 비수도권 요금만 깎아주는 ‘할인’ 정책으로 변질되면서 산업용 요금을 인하해달라는 대기업과 산업계의 오랜 요구를 정부가 들어준 꼴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전력 다소비 기업이 값싼 요금을 찾아 발전소 밀집 지역으로 몰릴 경우 지역의 전력 소비가 급증하고, 늘어난 수요에 맞춰 그 지역에 발전 시설을 추가로 짓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 지역 불평등을 완화하겠다는 제도가 오히려 발전소 밀집지의 환경적·사회적 부담을 고착화하는 모순을 낳는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정상적인 차등제가 작동하려면 전력을 과도하게 소비하는 수도권에 요금을 더 물리고, 이렇게 확보한 재원으로 수도권 내 분산형 발전 시설을 확충하거나 지역 불평등 해소에 투입해야 한다. 그러나 수도권의 정치적·사회적 반발을 의식해 할증을 배제한 채 할인만 적용하면서 재원 마련 방안 자체가 사라져버렸다는 비판이다.

또 영남의 원자력발전소나 충청·강원의 석탄화력발전소 주변 지역의 요금만 낮아지게 됨으로써, 기존의 대형 원전과 화석연료 중심 전원 구조를 고착화하고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을 늦추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우려도 나온다.

연간 2조 8000억 원에 달하는 대규모 전기요금 감면이 한국전력의 재무 구조를 더욱 악화시킨다는 점도 쟁점으로 꼽힌다.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 소장은 “한전 부채가 여전히 210조 원을 넘어서고 향후 송전망 확충 등 에너지 전환에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시점에서 전기요금 인하라는 산업계의 요구를 수용한 잘못된 결정”이라며 “수도권은 비싸게, 초과공급인 비수도권은 싸게 하겠다는 지역별 요금 차등제를 악용해서, 결국 비싼 에너지 요금은 사라지고 산업계를 위한 더 싼 요금으로 역행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발전 도매가격을 차등화하는 ‘지역별 전력도매가격제(LMP)’를 도입해 발전소로부터 전력을 저렴하게 구매하고, 정부 재정지원을 병행해 한전의 손실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비수도권의 전력 도매가격을 낮춰 한전의 전력구입비를 절감하겠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전문가는 도매시장 개편만으로는 매출 감소분을 온전히 벌충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이헌석 정책위원은 “현재 한전의 부채로 인해 전력 인프라와 송전망에 투자할 돈도 부족하다는 소리가 나오는 마당”이라며 “정부가 도매시장 분리나 재정지원을 말하지만 소매 요금 인하에 따른 한전의 재무적 타격을 막기엔 명백한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민호 기자

중화학공업·에너지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사회와 삶에 관심이 많습니다.

goldmino@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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