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본문바로가기
비즈한국비즈한국

현장
“환자도 가족도 지쳐간다”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 단축할 방법은?

‘5년 뒤’ 치료제 나온다더니 세 번이나 연기…신속심사·첨단재생의료로 치료 접근 시간 단축 모색

[비즈한국] “15년 전에도 5년 뒤, 10년 전에도 5년 뒤라고 했어요. 벌써 5년이 세 번 정도 지나간 것 같네요.”

소녀시대 멤버 최수영 씨가 담담히 말했다. 그는 망막색소변성증(RP) 환자인 최정남 한국실명퇴치운동본부 회장의 딸로 아버지와 함께 치료제 개발을 기다린 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환자에게 ‘5년 뒤’는 단순한 연구개발 일정이 아니다. 치료제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질환은 진행된다. 시야가 좁아지고 시력은 떨어진다. 반면 연구자와 의료진에게 5년은 새로운 치료법이 사람에게 안전한지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기도 하다.

결국 희귀·난치질환 신약개발의 문제는 단순히 ‘더 빨리 개발해야 한다’는 요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환자가 기다려야 하는 시간 가운데 과학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시간은 무엇이고, 반대로 기술과 제도의 변화로 줄일 수 있는 시간은 무엇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지난 18일 경기 성남시 판교 차바이오컴플렉스에서 열린 ‘오가노이드 디벨로퍼 콘퍼런스 2026’의 ‘치료제를 만드는 환자들’ 세션에서도 이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지난 18일 경기 성남시 판교 차바이오컴플렉스에서 열린 ‘오가노이드 디벨로퍼 콘퍼런스 2026’의 ‘치료제를 만드는 환자들’ 세션에 참석한 패널들이 환자들의 고충을 말하고 있다. 왼쪽부터 소녀시대 멤버 겸 배우 최수영 씨, 최정남 한국실명퇴치운동본부 회장, 방송인 이동우 씨. 사진=최영찬 기자

연구성과는 쌓이는데 치료제는 계속 ‘5년 뒤’

RP는 망막의 시세포가 점차 손상되면서 시야와 시력이 떨어지는 진행성 유전질환이다. 현재 대부분의 환자에게 질환 자체를 근본적으로 치료할 방법은 없다.

이준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안과 교수는 “RP 자체를 근치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은 현재 없다”며 “백내장이나 황반부 부종이 동반되면 이를 치료하거나 저시력 재활 등에 도움을 주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2003년 RP 진단을 받은 방송인 이동우 씨는 “2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연구 성과가 있다고 해도 환자 입장에서는 아직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연구성과와 실제 치료제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다. 세포나 동물실험에서 효과를 확인해도 전임상과 임상시험을 거쳐 사람에게 같은 효과와 안전성이 나타나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준원 교수는 유전성 망막질환 유전자치료제 ‘럭스터나’를 예로 들었다. 럭스터나는 2001년 동물실험에서 치료 가능성을 확인한 뒤 2017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기까지 약 16년이 걸렸다.

이 교수는 “사람에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효능뿐 아니라 안전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세포 연구와 전임상시험, 임상 1·2·3상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환자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 이동우 씨는 “안전성은 환자들이 검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며 “당장 치료받을 수 있는 시기, 골든타임이 가장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의 삶은 짧게 느껴지고 연구의 시간은 반대로 너무 길게 느껴진다”고 토로했다.

이준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안과 교수(왼쪽)와 유종만 오가노이드사이언스 대표가 유전성 망막질환 치료제 개발의 어려움과 개발 동향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최영찬 기자

세포치료·오가노이드 등장해도 시간 문제는 여전

최근 RP를 비롯한 유전성 망막질환 분야에서는 기존 유전자치료제를 넘어 세포치료와 인공망막, 오가노이드(장기모사체) 기반 재생치료 등이 새로운 대안으로 연구되고 있다.

유전자치료제는 특정 원인 유전자를 대상으로 한다. 현재까지 유전성 망막질환과 관련해 344개 이상의 원인 유전자가 발견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럭스터나도 RPE65 변이에 따른 환자만을 타깃으로 한다. 개별 유전자마다 각각의 치료제를 개발하는 방식만으로는 모든 환자에게 치료 기회를 제공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특정 유전자 변이에 구애받지 않는 범용적 치료 전략이 필요한데, 이 교수는 세포치료와 인공망막을 대표적인 대안으로 꼽았다. 세세포치료는 손상된 망막세포를 대체해 기능 회복을 시도하고, 인공망막은 전자장치 등으로 손상된 망막 기능을 보완하는 방식이다.

오가노이드 기술도 손상된 조직을 복구하는 재생치료 접근법 가운데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유종만 오가노이드사이언스 대표는 기존 치료 상당수가 증상을 조절하는 방식이었다면, 오가노이드 기반 재생치료는 손상된 조직 자체를 회복시키는 방향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장 오가노이드 기반 재생치료제 개발을 우선 추진하지만, 망막 역시 미충족 의료 수요가 큰 분야라는 점에서 후속 개발 영역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새로운 기술이 등장한다고 검증에 필요한 시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에게 처음 적용되는 기술인 만큼 예상하지 못한 이상반응이나 장기적인 영향을 확인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검증을 줄이느냐’가 아니라 ‘불필요하게 오래 걸리는 과정이 무엇인지 찾아내느냐’에 가깝다.

이 교수는 첫 치료제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어렵지만 후속 기술에서는 앞선 경험을 토대로 규제나 절차가 단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희귀질환 특성을 고려한 임상시험 설계, 규제기관의 신속한 상담과 심사, 새로운 비임상 평가기술 활용 등이 논의될 수 있는 영역이다.

싱귤래리티바이오텍이 개발 중인 망막 오가노이드 현황. 사진=싱귤래리티바이오텍 제공

실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22년 9월부터 글로벌 혁신제품 신속심사 지원체계(GIFT)를 운영하고 있다. 생명을 위협하거나 중대한 질환의 치료제를 신속심사 대상으로 지정해 허가심사 시간을 줄이는 제도다. 목표는 일반심사기간을 120일에서 90일로 25% 단축하는 것이다. 준비된 자료부터 먼저 심사하는 수시동반심사를 적용하고, 안전성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일부 자료는 근거 규정에 따라 시판 후 제출하도록 지원한다.

결국 환자가 기다리는 전체 시간 가운데 과학적 검증에 필요한 시간과 행정·심사 과정에서 단축할 수 있는 시간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희귀·난치질환 분야에서도 GIFT 활용이 이어지고 있다. 식약처는 척수성 근위축증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오나셈노진아베파르보벡을 2026년 4월 GIFT 제67호 첨단바이오의약품으로 지정하는 등 희귀질환 치료제에도 신속심사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환자가 새로운 치료기술에 접근할 경로 자체도 확대되고 있다. 2025년 2월 21일부터 시행된 개정 첨단재생바이오법은 첨단재생의료 치료제도를 새롭게 도입했다. 기존에는 첨단재생의료가 임상연구 중심으로 이뤄졌지만, 이제는 재생의료기관이 사전에 임상연구 등을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인된 재생의료기술의 치료계획을 제출해 첨단재생바이오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중대·희귀·난치질환 환자 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 품목허가를 받은 의약품만을 기다려야 했던 것과는 다른 치료 접근 경로가 열린 셈이다.

치료 대안이 부족한 희귀·난치질환에서는 신약의 최종 허가를 기다리는 시간과 환자의 치료 접근 시점 간 간극을 줄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 볼 수 있다.

이 교수 역시 환자의 상황을 고려한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빠른 허가’와 ‘검증을 덜 하는 허가’를 같은 의미로 봐서는 안 된다. 필요한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은 유지하면서도 연구개발 과정에서 반복되거나 지연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15년 동안 반복됐던 5년 뒤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새로운 치료기술만큼 연구와 임상, 규제가 연결되는 방식이 달라질 필요가 있다. 최정남 회장은 “이제 나올 기술은 다 나왔고 세포치료제로 눈까지 만드는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안전하게 치료제로 만드는 싸움”이라고 강조했다.

최영찬 기자

제약바이오 분야 출입하고 있습니다. 많이 듣고 많이 공부해 정확하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chan111@bizhankook.com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형광펜 추가
✕ 형광펜 제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