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소아 필수의료 위기는 진료할 의사가 부족하다는 문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어렵게 병원을 찾아 입원한 아이의 상태가 갑자기 나빠졌을 때 이를 얼마나 빨리 발견하고 대응할 수 있느냐도 중요하다. 특히 소아는 상태가 빠르게 악화할 수 있어 심정지나 중환자실 치료에 이르기 전 위험신호를 발견하는 병원 내 안전망이 필요하다.
이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 신속대응시스템(RRS)이다. 일반병동 환자에게 이상 징후가 나타나면 신속대응팀이 조기에 개입해 중증 악화를 막는 환자안전 체계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성인과 소아의 RRS 구축 수준에 격차가 있다. 국내 상급종합병원 47곳이 성인 RRS를 운영하지만 소아중환자실(PICU)을 갖춘 15개 센터 중 소아 RRS를 운영하는 곳은 7곳에 불과하다. 그나마 5곳이 서울에 몰려 있고, 서울 외 지역은 2곳에 불과하다.
박성종 대한소아중증환자의학회 회장(서울아산병원 소아중환자과 교수)은 지난 19일 서울 역삼동 조선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소아 환자 안전을 위한 글로벌 심포지엄 ‘Global Patient Safety Summit in Pediatrics’에서 “소아에는 급성 악화가 성인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될 수 있고 조기 발견과 신속 중재가 임상 경과 및 예후 향상에 더욱 결정적임에도 여전히 소아 신속대응팀 도입 및 지원은 열악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1990년대부터 소아 RRS가 운영됐지만 국내에서는 성인보다 확산이 더딘 상황이다.

심정지 이후 구조보다 악화 전 발견이 중요
RRS의 핵심은 이미 위중해진 환자를 치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위험신호를 앞당겨 발견해 의료진이 개입할 시간을 확보하는 데 있다.
문제는 병동의 많은 아이 가운데 누구의 상태가 나빠지고 있는지를 찾아내는 일이다. 특히 소아는 연령과 성장 단계에 따라 정상적인 활력징후의 범위가 달라 위험 환자 선별이 복잡하다. RRS 인력을 갖추는 것과 함께 어떤 환자에게 언제 신속대응팀을 투입할지를 결정하는 감지 체계가 중요한 이유다.
크리스토퍼 파슈람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가 1만 5000명 이상의 소아 중환자 입원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입원 중 발생한 심정지 사례 중 약 85%가 예방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병동 감시체계를 강화함으로써 중증 악화를 줄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전 세계 패혈증 10건 중 4건 5세 미만…AI로 위험환자 조기 선별
조기발견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질환이 패혈증이다. 패혈증은 감염에 대한 비정상적인 전신 반응으로 장기 기능에 이상이 생기는 위중한 상태다. 문제는 초기에는 발열 등 자연적으로 호전되는 바이러스 감염과 증상이 비슷해 위험 환자를 가려내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상태가 악화하면 쇼크나 장기부전으로 이어질 수 있어 환자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조기에 개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소아에서 패혈증 부담은 크다. WHO(세계보건기구)가 인용하는 GBD(세계질병부담연구)에 따르면 2017년 세계에서 약 4890만 건의 패혈증이 발생했고 1100만 명이 패혈증과 관련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됐다. 전체 패혈증 발생의 41%인 약 2000만 건은 5세 미만 소아에서 발생했다.
해외에서는 디지털·AI 기술을 RRS에 접목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호바트 미국 피츠버그대 교수에 따르면 피츠버그소아병원은 AI 기반 위험환자 선별 등을 포함한 통합 패혈증 대응체계를 구축했다. AI가 활력징후와 검사 결과, 간호 기록 등 48개 변수를 분석해 위험도를 계산하고 고위험 환자는 집중 관찰 대상으로 분류돼 의료진에게 알림이 전달된다. AI가 패혈증을 확진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진이 먼저 살펴봐야 할 환자를 골라 실제 개입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호바트 교수는 이러한 통합 패혈증 대응체계를 도입한 이후 병원에서 발생한 중증 패혈증이 약 50% 감소했고 연간 100만 달러 이상의 의료비 절감 효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심정지 예측 넘어 호흡 악화까지…소아 위험신호 앞당겨 포착
국내에서도 AI를 소아 RRS에 활용하고 있다. 현재 소아 RRS 운영기관 가운데 서울아산병원과 세브란스 어린이병원이 AI 기반 심정지 예측 의료기기 ‘뷰노메드 딥카스(VUNO Med-DeepCARS)’를 사용하고 있다.
뷰노는 심정지보다 앞선 단계의 중증 악화를 포착하는 방향으로 기술을 확대하고 있다. 회사에 따르면 딥카스는 현재 소아를 포함한 전 연령에서 사용할 수 있으며, 패혈증과 호흡부전 등 심정지 선행질환별 후속 예측모델의 임상을 진행 중이다. 패혈증 분야에서는 성인 중환자실 환자를 대상으로 한 ‘뷰노메드 딥아이셉스(VUNO Med-DeepiSEPS)’가 올해 5월 의료기기 제조인증을 받았다.
소아에서는 호흡 악화를 조기에 발견하는 연구가 진행됐다. 뷰노와 양산부산대병원 연구진은 신생아중환자실 환자의 침습적 기계환기 필요성을 예측하는 AI 모델을 개발한 데 이어 올해 소아중환자실 환자를 대상으로 한 후속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Heart & Lung’에 발표했다.
회사 측에 따르면 소아 모델은 침습적 기계환기 필요성을 최대 8시간 전에 예측했으며, 기계환기가 필요한 환자를 구분하는 예측 성능(AUROC)은 약 0.88이었다. 동일한 민감도에서는 기존 모델보다 경보 횟수를 절반 이하로 줄였다는 설명이다. 불필요한 경보가 반복돼 의료진의 반응이 떨어지는 ‘알람 피로’를 줄이는 것도 RRS에서 중요한 과제다.
뷰노는 양산부산대병원과 한국형 ARPA-H(보건의료 고난도·도전형 연구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해 성인·소아 환자의 중증화 위험을 실시간으로 예측하는 모델도 개발하고 있다.
AI가 위험 환자를 빨리 찾아내는 것만으로 소아 필수의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AI가 위험신호를 포착하더라도 이를 확인하고 환자를 평가해 실제 치료로 연결할 의료진과 대응체계가 없다면 효과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소아 필수의료 분야에서 AI는 의료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의료인력이 지금 먼저 봐야 할 아이를 놓치지 않도록 돕는 역할이 우선이다. 위험신호를 더 일찍 찾아 의료진이 신속히 개입할 수 있도록 병원 내 안전망을 얼마나 촘촘하게 구축하느냐가 관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