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소아청소년병원의 의료인력 부족이 일반적인 소아진료를 넘어 희귀질환 환자의 조기 발견과 상급병원 연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의와 간호사 인건비가 상승하고 있지만 인력 확보는 여전히 어렵고, 젊은 전문의의 신규 유입마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의료계에서는 지역 소아의료기관이 약화되면 희귀질환 환자를 조기에 발견해 전문치료로 연결하는 의료전달체계에도 공백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가 지난 10일 서울 삼성동 웨스틴 서울 파르나스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표한 의료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회원병원 71곳 가운데 53곳(74.6%)이 전문의 부족을 호소했다. 간호사 채용이 어렵다는 병원도 62곳(87.3%)에 달했다. 이미 43곳(60.6%)은 최근 3년간 전문의 부족으로 야간·휴일 진료를 줄이거나 입원 병상을 축소하는 등 진료 규모를 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3년간 지역 소아병원 절반 이상 진료 축소
소아희귀질환의 확진과 전문적인 치료는 주로 상급종합병원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환자가 처음부터 희귀질환 전문기관을 찾는 것은 아니다. 지역 소아청소년과 의료기관에서 이상 증상을 발견하고 필요한 검사를 거쳐 상급병원으로 의뢰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한동균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 부회장(광주 미래아동병원장)은 기자회견 이후 기자와 만나 지역 소아의료기관의 역할을 강조했다.
한 부회장은 “소아 희귀질환 최종 치료는 3차 대학병원의 희귀질환센터가 담당한다”며 “하지만 아이 이상을 1차, 2차 소아청소년병원에서 먼저 진단하고 걸러내어 3차 병원으로 연결해 주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1차, 2차 소아과 의사가 사라지면 초기 진단과 스크리닝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며 “정부는 3차 대형병원에만 ‘핀셋 지원’을 하고 있는데, 아래 밑바탕을 다 무너뜨려 놓고 끝에만 불을 끄겠다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중증·희귀질환 전문치료기관을 지원하는 정책과 별개로 지역 소아의료기관의 진료 역량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지역 소아청소년병원의 진료 기능이 축소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조사 대상 병원 중 이미 야간 진료를 축소하거나 중단한 곳은 33.8%, 휴일 진료를 줄인 곳은 28.2%였으며 입원 병상을 축소한 병원도 23.9%에 이르렀다.
이러한 변화는 희귀질환을 비롯해 지속적인 관찰과 진료가 필요한 소아환자들의 의료 접근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특히 지역에서 초기 진료를 담당할 의료기관이 줄어들면 상급병원으로 환자를 연결하는 과정에도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인건비 30% 상승했지만 채용난 여전
지역 소아의료기관의 인력난은 단순히 낮은 임금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번 조사에서 최근 5년간 전문의 급여가 30% 이상 상승한 병원은 57.7%였다. 그런데도 전문의가 부족하다고 응답한 병원 53곳 중 86.8%는 지원자가 없다고 답했다. 야간·휴일·입원 근무 기피가 71.7%, 요구 급여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응답도 58.5%였다.
간호사 역시 사정이 비슷하다. 간호사 인원에 관한 문항에 응답한 57곳 중 71.9%는 필요한 인원보다 실제 근무 인력이 적다고 밝혔다. 전체 응답 병원의 38.0%는 인근 다른 전문과목 병원보다 높은 임금을 지급하고 있었지만 채용난은 이어졌다.
한 부회장은 소아환자 간호의 특수성과 보호자 응대 부담을 원인으로 설명했다.
그는 “소아환자는 주사 하나를 놓으려 해도 최소 간호사 3명 이상이 붙어야 한다”며 “아이들은 혈관이 작고, 엄청나게 울고 보채고 움직이며, 본인이 어디가 아픈지 설명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보호자의 민원과 감정노동도 부담으로 지목했다. 한 부회장은 일부 보호자의 폭언과 부적절한 요구가 간호사의 이탈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홍준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 부회장(김포제일아이병원 원장)도 젊은 간호사들의 소아청소년병원 근무 기피 현상을 지적했다. 그는 “똑같은 임금을 받는다면 요양병원으로 가려 하고 감정 노동과 육체 노동이 극심한 소아청소년병원으로 오려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인건비 상승은 병원 경영에도 부담이다. 한 부회장은 물가와 직원 인건비 상승이 겹쳐 소아청소년병원의 경영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향후 회원병원들의 비용 증가 현황을 추가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문의 30대보다 60대 이상이 더 많아…의료사고 수사도 부담
장기적인 인력 수급 전망도 밝지 않다. 조사 대상 병원의 상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313명 가운데 30대는 50명(16.0%)으로 60대 이상 56명(17.9%)보다 적었다.
지역별로는 영남권에서 30대 전문의가 4명인 반면 60대 이상은 17명이었다. 호남권도 각각 2명과 15명으로 차이가 컸다. 기존 의료진의 은퇴에 대비한 신규 인력 확보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는 이유다.
한동균 부회장은 “젊은 피가 수혈되지 않으니 3~4년 뒤 고령 의사들이 은퇴하면 진료 유지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용재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 회장(의정부 튼튼어린이병원 원장)도 “현재 남아 있는 의사들은 몸을 갈아 넣어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라며 “사회가 응답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는 소아과 의사가 없는 세상을 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협회는 의료사고에 따른 법적 부담도 젊은 의사들의 소아청소년과 기피를 심화하는 요인으로 보고 있다.
한 부회장은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과 최근 아주대병원 소아응급센터 압수수색을 언급하며 “전공의들이 기피하는 첫 번째 이유는 단연 사법 리스크”라고 주장했다. 이어 “아주대병원 압수수색 사태로 지원율은 더욱 참담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인력 부족이 장기화하면 현재의 진료체계를 유지하기도 어려워질 전망이다. 조사 대상 병원의 52.1%는 현재 인력과 채용 여건이 이어질 경우 4년 이내 기존 진료 수준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협회는 야간·휴일·입원 진료 보상 확대와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안전장치, 소아병동의 간호 필요도를 반영한 인력 기준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다만 정부의 재정 지원 확대가 실제 의료인력 확보로 이어질지는 별개의 문제다. 전문의와 간호사의 신규 유입을 늘리고 기존 의료진의 이탈을 막을 수 있는 근무환경 개선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지역 소아의료의 인력난은 계속될 수 있다.

